유어스테이지 칼럼 역사의교훈: 어제와오늘
[역사의교훈: 어제와오늘] 조선 궁궐의 위용과 감상법
서울에는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운궁(慶運宮∙德壽宮), 경희궁(慶熙宮), 다섯 개의 조선 궁궐(朝鮮宮闕)이 있다. 대부분 일제(日帝)에 의해 참혹하게 파괴되어 흔적조차 사라질 뻔했지만 다행히 불씨가 남아 있어 이를 조금씩이나마 되살리고 있다. 캄캄한 터널 속 같은 우리 역사의 진상을 궁궐을 통해 살려볼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그 대표적 궁궐이 법궁(法宮)으로 일컬어지는 경복궁이다.
 
경복궁 12만여 평의 영역은 임금과 왕실 가족, 그리고 임금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관리(官吏), 임금의 신변을 보호하고 궁궐을 방어하는 군사(軍事) 등 수천 명이 상주하고 있었고, 공무와 사무 등 업무를 위해 출입하는 각계각층의 비상주 인구까지 포함하면 하루에도 만여 명 가까운 인원이 이곳 궁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정교(政敎)의 핵심 영역이었다. 경복궁은 국정을 총괄하는 국가 최고 기관으로서 엄중한 권위와 위상을 지니고 있었고, 수도(首都)인 한양(漢陽)을 비롯한 전 국토의 모든 기능은 경복궁에서 시작하여 경복궁에서 끝나는 명실공히 한반도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경복궁의 정문(正門)인 광화문(光化門)을 지나 중문(中門)인 흥례문(興禮門)을 들어서면 서(西)에서 동(東)으로 금천(禁川)이 흐른다. 북악산(北岳山∙白岳山)의 정기를 품은 명당수(明堂水)로 알려진 금천의 동쪽 천변에는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香氣)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여러 그루의 매화(梅花)나무가 에워싸고 있다. 북풍한설(北風寒雪)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설중매(雪中梅)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매화나무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차가운 바람을 이기고 피어나는 세 벗이라 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부르기도 하며,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견디어 낸다는 절개를 강조할 때 매화나무를 비유한다. 충효(忠孝)와 절개(節槪)를 으뜸 덕목으로 치는 선비의 나라 조선의 정신을 가장 잘 상징하는 나무가 바로 매화나무이다. 엄숙한 마음으로 경복궁을 들어갈 때, 처음 맞아주는 매화나무를 통해 조선의 정신(精神)을 먼저 느껴보는 게 방문객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조선의 역사가 살아있는 현장, 궁궐(宮闕)에는 수백 년 전에 지어진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전각(殿閣)들이 한민족 특유의 중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고, 건물과 나무 등 각종 구조물 하나하나에는 선비 정신과 사람이 지켜가야 할 도리(道理)가 깊게 계시되어 있어 교훈을 주고 있다. 따라서 궁궐은 외형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역사적 가치를 보여주는 자랑스럽고 귀중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 그 시절 궁궐에서 머물던 수많은 사람은 과연 어떤 사연(事緣)을 가슴에 안고 삶을 살았는지, 당시의 사람들 이야기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궁궐 건물의 역사는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져 있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역사는 숨겨진 채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궁궐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보다 더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파노라마 같은 인생역정(人生歷程)을 펼치면서 생사고락(生死苦樂)을 나누었던 치열한 삶의 현장이며, 조선의 생활문화(生活文化)가 압축된 살아 있는 역사 현장이다. 궁궐의 주인인 임금은 자신의 절대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한시도 마음 놓을 새 없이 정략(政略)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되었을 테고, 정승(政丞) 판서(判書) 등 고관대작(高官大爵)들 또한 나름대로 숨 가쁜 긴장 속에서 자신의 권세와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계략(計略)을 꾸미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일반 관리들은 관리들대로 더 나은 영달과 안정을 찾기 위해 상대를 비하하며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고, 비빈(妃嬪)과 궁녀(宮女)들 또한 혹여 상전(上典)과 남정네의 마음이 멀어지지나 않을까 애태우며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곳, 그곳이 바로 궁궐이다.
 
분명 궁궐에는 지존(至尊)인 임금을 향한 대신들의 목숨 건 줄타기가 있었을 것이고, 출세를 향한 관리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끊임없이 난무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궁궐의 규방(閨房)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남녀 간의 애증(愛憎)이 불꽃을 튀겼을 것이고, 여인들의 미소 뒤에는 표정 감춘 투기(妬忌)와 간교(奸巧)가 횡행했을 것이다.
 
궁궐 속에는 이러한 사연이 산더미처럼 쌓여 범인(凡人)의 세상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류사회(上流社會)의 온갖 속태(俗態)가 횡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는 어느 순간 모두 침묵으로 감추어져 어디엔가 묻힌 채, 지금은 덩그런 궁궐 전각(殿閣)만이 세월의 때를 덕지덕지 떠안은 채 외롭게 서있을 뿐이다.
 
그러나 궁궐의 참모습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의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을 찾아내어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거동과 음성을 재현시키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실연(實演)을 전개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옛사람들이 다시 깨어나 움직이며 궁궐 속에서 활보하지 않겠는가.
 
물론 궁궐에는 수백 년 전에 구현된 독특한 건축기법(建築技法)을 발견할 수 있고, 아름답게 구성된 전각들의 미학적(美學的) 구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의 산수화(山水畵)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산수경관(山水景觀)을 감상할 수 있고, 실용적 용도와 동선(動線)에 맞춘 편리한 건물 배치를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궁궐에는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 솜씨와 예인(藝人) 감각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궁궐에서 바라본 조선 왕실의 사랑과 미움, 그리고 당시 궁궐에서 생활하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벌였던 정쟁과 삶의 애환을 파고들고, 이와 함께 궁궐 건축의 과학적 지혜와 전각의 실용적 아름다움, 건축물에 새겨진 각종 정신적 염원의 표현을 그들의 삶과 연계시켜 살펴보는 것, 그것이 진정 궁궐을 바르게 감상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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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일조
태평양화학, 태평양패션 등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는 '역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또한 여러 단체를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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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정용길 3월22일 오전 7:21
궁궐을 거닐면서 역사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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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3일 오전 10:30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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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3월21일 오후 3:38
ㅎㅎ 저는요 혼자서 궁궐에 자주 가는대요. 그건 아마도 제 전생이 궁궐에서 왕비님이 어머니로 태여 났나 봅니다. 그래서 공주님이라고 우겼더니 공주가 아니고 무수리 였다고 친구들이 약올렸어요. 못된 친구하고 놀지 말라구요? ㅋㅋㅋ
중국 자금성은 정말 넓다고 하던데 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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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3일 오전 10:30
하하, 재미있는 과거를 지니셨네요. 중국 자금성은 거대하지만, 사람의 체취는 별로 느껴지지 않지요. 대신 우리 궁궐은 아기자기한 인향이 느껴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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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3월21일 오후 2:56
궁궐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조선 말기에 집권층이 제대로 정신을 차렸더라면 궁궐이 훼손되지 않았겠지요.
이제라도 그 때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다시는 외국의 침탈 당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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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3일 오전 10:27
일제의 강점을 통해 궁궐은 참담한 역사를 보여주었지요. 강한 민족이 되어야 하는 이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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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3월21일 오전 10:56
궁궐은 왕의 정무와 생활 그리고 휴식을 위한 정원공간으로 구성되나 왕비나 세자같은 가족, 후궁과 궁녀, 왕을 보좌하는 환관과 경비병력, 건강과 생활을 돕는 인력을 포함하면 많은 인원이 거주하던 전통건축을 지닌 귀중한 문화유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궁궐감상법의 글을 읽으며 궁궐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정리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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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3일 오전 10:25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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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3월21일 오전 9:20
궁에 가면 전 왠지 쓸쓸해집니다. 궁안에 세월들이 슬픈 이야기가 많아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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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3일 오전 10:24
궁 안이나 궁 밖에는 같은 비율의 희로애락의 사연이 존재하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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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주 3월21일 오전 8:50
전에 영국의 햄튼코트인가 하는 궁에 가니 중세 시대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직원들이 있더라구요. 우리 민속촌에도 그렇긴 합니다만~~~ 하여튼 훨씬 생동감있고 멋지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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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3일 오전 10:23
궁궐에 활기를 찾게 하는 좋은 사례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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