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끝없는 여정
[끝없는 여정] 고난의 여로(旅路) 1
경성(鏡城)으로 가는 길은 더없이 혹독하고 험난하여 재앙(災殃)의 징후를 예감하게 했다. 출발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지만, 하늘이 내려앉을 듯 쏟아져 내리는 폭설 탓에 설화 일행은 그만 길 잃은 나그네 신세가 되고 만다. 가도(街道)의 윤곽은 물론, 길잡이가 되어주던 사계(四界)의 산봉우리들마저 시야(視野)에 들어오지 않으니 도대체 어디로 가는 길이 제 길인지 방향을 잡기가 어려워 막막하기만 했다. 왠지 여정(旅程)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못된 재액(災厄)이 끼어들며 가는 길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화가 가려는 ‘끝없는 여정(旅程)’에 불어 닥친 첫 번째 시련(試鍊)인가?
 
춘삼월(春三月)을 앞에 둔 마지막 남은 겨울이, 먼 동짓달 겨울 시간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던 것인지 사납게 심술을 부리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소나기 눈 폭탄을 잔뜩 머금은 웅풍(雄風)이 여로(旅路)에 올라서있는 이들 길손을 매섭게 몰아치며 살갗을 마구 할퀴고 있었고, 달구지를 끄는 황소조차도 이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우우~움~, 우우~움~’ 하며 괴이한 울음소리를 연거푸 쏟아내고 있다. 가야 할 길이라는 게 무릎 높이로 눈이 쌓여있어 길인지 길섶인지 분간이 어려워 가는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새 길을 만들어 조심조심 어림하며 뚫고 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날카로운 바람 소리마저 귀를 틀어막고, 뇌리를 마비시키며 온몸을 경직시키고 있으니 제아무리 행로(行路)를 급하게 서둘러본 들, 가는 길이 매번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는 황량(荒凉)한 눈길 끝은 하늘인지 땅인지 지평선(地平線)은 파묻혀 보이지 않고 희뿌연 냉기류만 가득하여, 무언가 알 수 없는 소용돌이가 시류(時流)를 되돌리며 이들 연약한 길손을 엄습하려는 건 아닌지, 슬픈 예감이 머리 위를 스친다. 아무래도 험로(險路)를 뚫고 가기엔 날짜를 잘못 잡은 듯싶었으나, 이미 가던 길을 되돌릴 수도 없는 형편이니 혹여 눈더미 속에 갇혀 고립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만큼 눈바람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한참을 헤맸지만 어쩐지 인가(人家)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회색빛 하늘은 어느덧 검회색으로 변해 어둠이 하늘을 가리기 시작하고 있으니, 함경도(咸鏡道) 산악을 여러 차례 왕래해 보았지만, 이런 일을 겪어보기는 난생처음인지라 왈칵 겁이 나기 시작한다. 지금 헤매고 있는 위치가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과 함경산맥(咸鏡山脈)이 서로 만나 분수령을 이루는 두류산(頭流山) 서편의 구릉지대(丘陵地帶)를 지나고 있을 텐데, 오늘 이곳을 넘어 길주(吉州)로 가기엔 이미 때가 늦어 더는 산길로 접어들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하는 수없이 근처 어디엔가에 있을 산막(山幕)이라도 찾아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하기야 백두산(白頭山)에서 동쪽으로 뻗어오는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과 두만강 북변에서 시작하여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이루며 남쪽으로 길게 뻗쳐 있는 함경산맥(咸鏡山脈)은 하늘을 찌를 듯 그 위용이 대단하여, 마치 한반도를 동서로 갈라놓는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산맥(山脈)을 잇는 고산준령(高山峻嶺)에는 높이가 2천 미터가 넘는 관모봉(冠帽峯), 고성산(高城山), 도정산(渡正山), 검덕산(劍德山) 등 고봉(高峯)들이 수없이 솟아 있어 우리나라에서 해발고도(海拔高度)가 가장 높은 산악지대로 평판(評判)이 나 있는 곳이니, 쉽사리 길을 트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산악지대다.
 
사뭇 안심(安心)되지 않아 속을 태우며 입 한번 떼지 못하던 설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달구지를 부리는 천 씨 아저씨에게 매달리듯 물어본다.
 
“아저씨! 날이 저물어 길주로 들어가는 게 어려울 듯싶은데, 근처에 마을이 어디 없을까요? 어디든 찾아가서 요기라도 하고 추위도 피해야 할 텐데요!”
 
천 씨 아저씨도 별다른 방도(方途)가 떠오르지 않는 듯 난감한 표정으로 답을 한다.
 
“하~ 어쩐다! 이 근처에 마을이 있는 건 본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아 참! 산 너머쯤 될 거야! 아마도 이 산길을 올라가면 산채(山寨)인지, 산막(山幕)인지 작은 집이 있는 걸 전에 본 적이 있었어. 흠,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으니 우선 그 집이라도 찾아가 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고 빈집이면 거기서 찬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자, 조금만 더 올라가 보도록 하자!”
 
점점 더 숨이 막혀오는 상황이었으나, 한데보다는 산막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두류산 눈길을 올라간다. 코뚜레 부근에 얼음이 덕지덕지 얼은 채로, 가쁘게 더운 김을 내뿜으며 허덕이고 있는 황소에게 오늘따라 유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천 씨 아저씨가 만일에 대비하여 준비했던 횃불에 불을 붙이더니 달구지에서 내려 앞장을 선다. 좀 전보다는 뜻밖에 경사가 심했으나 눈 더미 위로 사람 다닌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드러나고 있어 아마도 그 길 위에 산채가 있다는 건 분명한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허우적거리며 앞서서 가던 천 씨 아저씨가 뒤를 돌아다보며 큰소리를 친다.
 
“아, 불빛이다! 저 위에 불빛이 보인다. 어서 올라 오거라!”
 
마침내 산채를 발견한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멀찍이 능선 밑에 작은 불빛이 가물가물 보이기 시작했고, 설화와 정옥은 이제야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곳 산채(山寨)에는 개마고원 산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산 속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버섯을 캐어 생활하는 약초꾼 부부가 살고 있었다. 방은 달랑 한 칸뿐이었지만 방이 널따란 대다가 고사(枯死)한 나무를 모아 불을 지펴서 그런지 방바닥이 제법 설설 끓었다. 산채(山菜) 나물로 요기를 마친 설화 일행은 종일 얼었던 몸을 녹이며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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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일조
태평양화학, 태평양패션 등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는 '역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또한 여러 단체를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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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김상연 3월25일 오후 1:47
짐작불허하는 설화의 인생길. 아직은 가슴조리며 따라가 볼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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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5일 오후 2:11
인생길에는 고비가 있게 마련이지요. 공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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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3월25일 오후 1:33
천씨 아저씨라고요? ㅋㅋ 엣날에 소게팅에서 천씨 성 남학생을 만났는대요. 피부가 하얗고 잘생긴 남학생 이였어요.
첫눈에 혹 하는 미남자였는데 그에게는 아픈 상처가 있었어요. 그것은 자신의 조상이 "천 씨라며 위축되여 살고 있는듯 했어요.
천방지축 마 골 피,,, 인가요?지금은 아무도 다른 성씨라고 말하지 않는것 같은데 ? 아닌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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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5일 오후 2:09
일화가 재미 있습니다. 모두 다 옛날 이야기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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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3월20일 오후 12:33
눈속 풍경 표현이 너무나도 사실적이네요.
예전 설악산에서 폭설을 만나 헤메이던 일이 생각나네요.
눈이 내릴때는 지형이 변하여 방향을 잡을수가 없지요.
일조선생님도 직접 경험하여 보신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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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0일 오후 4:51
산길의 폭설은 재앙일 수 있지요. 잘 해쳐나가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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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3월20일 오전 10:35
스르륵 잠이든다? 뭔가 사건이 있는거에요? 그냥 포근한 잠에 빠진다는 것이 아닌것 같은것은 설화의 삶이 워낙 기구해서요.
그냥 안도의 편안함 이였으면 좋겠는데,,, 행복은 어쩌다 찾아와도 한번으로 끝나지만 불행은 꼬리를 주렁주렁 달고 온다지요?
설화의 꼬리에는 많고많은 불행이 달려 있는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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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0일 오후 4:50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설화에게는 하늘과 땅에서 돕는 기운이 가득할 것입니다. 항상 보내주시는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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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3월20일 오전 9:41
그야말로 고산준령 지역이네요. 하지만 더욱 중요한건 마음의 고산준령이겠지요. 설화가 이 고산준령을 잘 넘어가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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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3월20일 오후 4:48
마음의 고산준령, 좋은 표현입니다. 인생행로는 좋은 길 나쁜 길이 교차하겠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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