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아름다운 사막
[아름다운 사막] 짧은 해후, 긴 이별-아름다운 사막
4. 아름다운 사막
 
저 하늘 위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어여쁜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내 영혼을 갈라놓을 수 없답니다.
-애너벨 리/에드거 앨런 포-
 
나는 조선족 안내인을 대동한 채 서둘러 노흑산으로 달려갔다. 노흑산의 파출소에서 날밤을 새우고 난 후 새벽에 내게 전해진 소식은 신현민이 은과 함께 자폭했다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그 날 저녁 은은 차가운 시신이 되어 삼 년 만에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제발 은을 살려달라고 박 교수님의 하나님께, 아니 은과 제니퍼의 하나님께 얼마나 애원했던가. 나는 너덜너덜해진 은의 시신을 부둥켜안은 채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야 합니까? 도대체 은이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젊은 나이에 참혹하게 죽어야 합니까? 예, 하나님 제발 말씀 좀 해보세요. 당신은 결코 살아있지 않습니다. 아니, 살아 있다고 해도 그런 엉터리 하나님이라면 나는 결코 당신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에 사랑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왜 운명은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가려는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한 병장과 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목숨 빛을 내 마음속에 묻은 채 살아가야 하는가? 은은 그렇게 다시 내 곁을 떠났다. 그러나 이번의 이별은 생과 사를 갈라놓는 영원한 이별이었다. 사람은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자기가 뭘 가지고 있는 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걸 전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은의 시신처럼 말이다. 난 은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내게 남겨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녀가 이 땅 어느 한 자락에선가 나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와 나누었던 수많은 추억을 함께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은에 관해서 만큼은 나는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은의 장례식은 은이 근무하던 연길한국인학교에서 거행하기로 했다. 아직 북경에 남아있는 제니퍼에게도 은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제니퍼가 울면서 은의 장례식장에 참석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오지 못하게 했다. 평소 은을 따르던 학생들이 소복을 입은 채 빈소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뒤로 한 채 나는 박 교수님을 모시러 공항으로 나갔다. 연길공항은 여전히 환영 나온 인파로 북적거렸다. 불과 보름 전에 한 번 온 적밖에 없었지만, 공항 풍경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예정시각보다 삼십 분 늦게 비행기가 도착했다. 사람들 틈새에 끼어 출입구 안을 들여다보고 있자 말쑥한 정장 차림의 박 교수님이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박 교수님을 뵙고 꾸벅하고 인사를 드렸고 박 교수님은 내게 손을 내미셨다. 그러고 보니 박 교수님을 뵙는 것도 삼년 만의 일이다.
 
"최군, 오랜만이구먼."
 
"예, 교수님. 멀리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박 교수님은 더는 말씀 없이 고개만 몇 번 끄덕거리셨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공항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타기 위해 계단을 걸어내려가며 내가 먼저 말했다.
 
"교수님, 그동안 연락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 벌써 삼 년이나 지났지...."
 
한숨을 푹 쉬신 교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조금 빨리 연락이 됐더라면 좋았을 것을... 자네에겐 미안하구먼. 내가 그때 상은 양을 이곳으로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잠시 아무 말씀 없이 앞서 걸어가시던 박 교수님이 나를 돌아보며 한 말씀 더 하셨다.
 
"우리는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지. 상은 양은 단지 잠시 먼저 우리 곁을 떠났을 뿐이네."
 
"교수님, 은은 편안히 갔을까요? 그동안 제가 은을 괴롭히기만 하다가 이제 결국 나 때문에 은이 죽었다는 자책감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
 
박 교수님께 말씀드리면서 그동안 가까스로 참고 있었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선 채로 흐느끼고 있는 나를 잠시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박 교수님이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싸 안아 주셨다.
 
"최군, 이제 그만 슬퍼하게나. 상은 양은 자기 자신에게나 이 세상에 대해 최선을 다해 살았네. 자기의 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은 그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결코 후회함이 없을 것이네. 그리고 상은 양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이네. 나는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은 결코 시간이나 장소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네. 우리 주위에는 항상 함께하면서도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
 
박 교수님과 나는 마지막 가는 은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비행장 앞의 광장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갔다. 은의 시신은 화장이 되어서 그녀가 그렇게 좋아했다던 해란강에 뿌려졌다. 나는 어쩌면 이곳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은이 마지막 생을 보낸 곳, 그리고 은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의 제자들... 나는 장차 은이 마지막 생애를 보냈던 이 땅에 와서 은이 못다 한 일을 대신하며 살 것이다. 은이 언제까지나 내 가슴에 살아 있듯이, 나도 언제까지나 은이 머물렀던 곳에 같이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건너야 할 사막이 있다고 했다. 어쩌면 은은 이미 그녀가 건너야 할 사막을 건너 버렸고, 우리는 아직 건너야 할 사막 한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은과 같은 고귀한 영혼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고난의 바다(苦海). 우리가 제일 힘들 때마다 그 쓴맛을 잊게 해주는 달콤한 순간이 가끔 선물로 주어진다고 한다. 내게도 그런 선물이 갑자기 주어졌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햇볕 틈새를 비집고 어디선가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고,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포근히 감싸주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내 생에 처음으로 겪어 보는 신비한 체험이었고, 나는 더는 은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지 않았다. 그렇게 은은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멀리 떠났다. 어디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사랑은 형상도 없고 색깔도 없으니 눈으로 보아서는 볼 수가 없는 것, 오직 마음으로만 연결되어있다네. 그리고 사랑은 영원한 것, 결코 시공간의 제약 하에 놓여있지 않답니다. 안녕, 내 사랑!"
 
 
 
아농사(我儂詞)/관중희(管仲姬)
 
당신과 나, 너무나 정이 깊어 불 같이 뜨거웠지.
한 줌 진흙으로 당신 하나 빚고 나 하나 만드네.
우리 둘 함께 부숴 물에다 섞어서는
다시 당신을 빚고 나를 만드네.
내 속에 당신 있고 당신 속에 내가 있네.
살아서는 한 이불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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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장유하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변과학기술대학교 상경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2008년부터 중국 서안에 있는 국립 장안대학교 재무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금융 연구소 및 한국어교육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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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박옥희 7월12일 오후 3:28
에효~결국 상은은 그렇게 처참하게 가버렸군요. 다행하게도 하얀비둘기가 날아오르고 그 틈에 상은은 느낄 수 있었네요. 사랑은 아프거나 아름답거나 그렇게 가슴에 남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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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7월14일 오전 1:57
사랑은 별자리 처럼 하늘위에 찬란히 떠서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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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경 7월12일 오후 1:30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처럼 은이 죽지않고 살아서 아름다운 해후가 있기를 바라본 제가 바보였네요.
전편을 읽으며 그런 희망 한가닥 가져보았는데 이제 은은 정말로 이세상에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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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7월14일 오전 1:56
은의 육신은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의 영혼은 훈과 영원히 이어져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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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7월12일 오전 10:10
안타까운 사랑이 이렇게 끝나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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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7월14일 오전 1:55
아름다운 사랑 2부를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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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7월12일 오전 9:25
결국은 참 아픈 사랑으로 남았네요.
마음으로만 연결된 사랑의 기억...은의 마지막은 처절하고 아픈기억만 남았지만
어쩌면 살아가면서 지지고 볶는 과정없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함께해서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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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7월14일 오전 1:54
비극으로 끝나서 너무 잔인한가요?
하지만 배꽃님과 제가 3,000km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마음으로 소통하듯이,
은과 훈은 생과 사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항상 함께 있으리라 믿습니다~!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켜봐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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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12일 오전 9:22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에 남아 우리를 더 나은 세계로 이끄는 것, 최고의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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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7월14일 오전 1:50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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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7월12일 오전 8:38
은의 재는 한줄기 혜란강에 뿌려졌군요. 일송정 푸른솔과 한줄기 혜란강! 독립군의 함성이 들리는듯 합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섭리로 독립을 해서 독립군의 소망은 이뤄졌지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사랑이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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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7월14일 오전 1:50
<아름다운 사막>이 연재되는 긴 세월 동안 한결 같은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봐주신 장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만간 제2부를 가지고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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