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끝없는 여정
[끝없는 여정] 대륙(大陸)을 향한 집념 4
한편, 조선 임금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청군(淸軍)은, ‘포로는 혈전(血戰)을 벌여 취득한 정당한 소유물’이라고 주장하며, 젊고 예쁜 여자라면 무차별적으로 체포하는 포로사냥을 감행했다. 그렇게 잡아들인 포로들이 물경 수십만에 이르고 있었다. 청군은 이들을 선양(瀋陽)으로 연행하기 위해 군영을 비롯한 주둔지 여러 곳에 수용한 채, 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이들이 만주 땅을 향해 끌려가던 시기는 2월 중순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늦은 겨울이었다. 
 
포로들은 수백 명 단위로 열을 지은 채, 엄중한 감시 속에 행군을 시작했는데, 대오(隊伍)를 유지하면서 걷는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하루하루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2천 리가 넘는 동토(凍土)의 광야를 두 달 넘게 걸어가는 동안, 행군이 느리다는 이유로 청군이 내리치는 말채찍에 얻어맞기 일쑤였다. 언 살에 채찍을 맞으면 금세 살갗이 벗겨지고 선혈이 낭자했다. 특히 선양으로 호송되는 시기에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敵)은 추위였다. 
 
노예 신분인 그들 포로에게 식사와 잠자리가 제대로 주어질 리 없었고, 그저 눈과 한풍(寒風)이 뒤덮여 있는 의주로(義州路) 허허벌판에서 노숙하며 끌려가야 했다. 청군에게 포로 신분이란, 사람이 아닌 그저 미물(微物)일 뿐이었기에, 사람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짐승을 끌고 가는 형국이었다. 그들에게 생명의 존엄성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수많은 포로가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채, 긴긴 행군 도중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참상(慘狀)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청군 장수(將帥)들은 사로잡은 조선 여인들을 자신의 첩(妾)으로 삼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혹여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자가 예쁜 여인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강제로 빼앗는 사례가 허다하여, 여인을 둘러싸고 청군 장수들 간에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이렇게 자신을 최초로 사로잡았던 청군 장수로부터 또 다른 장수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여성 포로들이 어떤 수난을 겪었을지는 말로 표현하기가 참담할 뿐이다. 많은 여성은 이러한 청군의 능욕(凌辱)을 피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빈번하게 벌어졌다.
 
머나먼 행로 중에 졸지에 청군(淸軍) 장수의 첩(妾)으로 전락하여 선양(瀋陽)에 도착한 여성 포로들은, 질투심에 눈이 먼 청군 장수의 본처(本妻)들로부터 참혹한 학대를 받아야 했다. 청군 부녀자들은 뜨거운 물을 끼얹거나 혹심한 고문을 자행하며 이들 포로들에게 지속적으로 악행을 저질렀다.
 
청국은 조선에 은전을 베푼다며, 다음 해부터 포로를 풀어주겠다고 생색을 냈다. 그러나 포로 1인당 은(銀)으로 수백 량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사실상 석방은 불가능했다. 인간 시장(人間市場)이 열렸지만, 폭등하는 몸값을 마련할 수 없었던 대부분의 사람은 속환(贖還)의 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세상을 등지거나, 아니면 청국 남성들의 씨받이가 되어 굴욕적인 삶을 이어가야 했다.
 
조선 피로인(被擄人)들 선두에는 볼모로 잡혀 온 조선 왕세자(王世子)와 세자빈(世子嬪)이 있었다. 그들 세자 부부는 긴긴 원행(遠行) 끝에 선양에 도착하여 심양관(瀋陽館)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왕족인지라 다소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청국(淸國) 조정의 감시 하에 이곳에서 8년간의 볼모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청국은 조선과의 친선 도모를 위해 각종 황실 제사와 행사에 조선 세자를 반드시 참석시켰다.
 
이러한 의례적인 행사에는 청국(淸國) 조정을 움직이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이는 기회였으므로, 청국이 세자(世子)를 매우 우대했음을 알 수 있었고, 청의 왕족은 세자 부부를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어주는 등 인간적인 친숙의 기회를 수시로 열기도 했다. 청국은 심양관의 세자를 통해 조선에 대한 대부분 현안을 처리하려 했고, 조선 임금도 청나라와 직접 접촉하는 것을 꺼렸으므로 양국 간 현안은 세자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자와 세자빈은, 오히려 조선의 억제된 유교 풍토에서 벗어나 상당히 자유롭고 다양한 서구 문명(西歐文明)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선양(瀋陽) 생활을 통하여 세자 부부는 무엇보다 청나라의 놀라운 발전에 큰 자극을 받았다. 중국 대륙을 통일한 후 신생 대국으로 거침없이 뻗어가는 청국의 군사적인 발전상과 문화 대국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경이(驚異)의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시 청국은 서양에서 온 천주교 선교사를 통해 화포(火砲), 망원경(望遠鏡) 등 서양의 근대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세자는 선교사를 만나 새로운 서양 문명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조선은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감했다. 볼모 생활을 통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는 조선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를 깨달았고, 조선이 못사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조선은 더 이상 성리학(性理學)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는 서양문물(西洋文物)을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청국의 개방정책에 매료되었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이러한 과학 문명(科學文明)과 새로운 제도(制度)를 적극 수용하고 실천할 것을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조선을 원천적으로 바꿀 개혁 군주(改革君主)를 꿈꿨던 것이다.
 
세자(世子) 부부가 묶고 있는 선양의 심양관(瀋陽館)에는 세자와 세자빈을 배종(陪從)하는 신하를 비롯하여 수행역원(隨行役員), 노비(奴婢) 등 5백여 명의 딸린 수행 인원이 있었다. 세자가 청국에서 새로운 문물을 배우기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교유하고, 딸려있는 수행원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그러나 본국 조선에서는 체류비(滯留費)의 지원이 원활치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에 나선 사람이, 바로 세자빈(世子嬪) 강 씨(姜氏)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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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일조
태평양화학, 태평양패션 등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는 '역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또한 여러 단체를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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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김상연 6월24일 오후 11:04
야비한 청군, 분노를 느끼는 것조차도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 주변 강대국들이 하는 짓을 보아도 그렇구요. 정말 속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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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6월25일 오전 10:06
그렇기에 국력을 키워야 합니다. 약소국의 설음은 예나 지금이나 엇비슷한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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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6월21일 오후 1:07
역사를 알아갈수록 참담한 느낌은 피해 갈 수가 없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설화의 특별한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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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6월21일 오후 2:25
늘 참여하시어 공감과 응원을 보내주시니 제게 글을 이어가게 하는 밑걸음이 되고 있습니다. 거둡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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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6월21일 오전 10:54
늦게 들어 왔습니다.
조선이 근세에 가까워질수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지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도 조선의 운명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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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6월21일 오후 12:37
반갑습니다. 여전히 응원해주시니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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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6월19일 오후 6:29
역사는 반복되는 것!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민은 희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청나라에 그렇게 철저히 당하고 불과 300년도 안되어 다시 일본에게 더 철저히 당하는 불쌍한 조선...
하지만 위정자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떵덩 거리고 잘살고, 불쌍한 백성들만 고초를 겪지요...
그나마 세자와 세자빈이 조금 깨어있다는 그 결과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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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6월20일 오전 5:57
옳은 평가에 공감합니다. 항상 용기를 주시는 것,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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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6월19일 오전 10:50
예전부터 정치인에 부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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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6월20일 오전 5:55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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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6월19일 오전 8:41
세자는 새로운 세계를 보며 조선을 개혁할 생각을 품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옹졸한 임금 인조는
오히려 세자를 의심하고 그를 불러 들여 죽이고 말지요. 조선의 발전은 물건너 간 것을 보며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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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6월20일 오전 5:54
역사가 순항할 수 있는 기회를 막은 안타까운 일이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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