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끝없는 여정
[끝없는 여정] 대륙(大陸)을 향한 집념 8
조선(朝鮮)의 세자(世子)와 세자빈(世子嬪)이 볼모의 신분으로 선양(瀋陽)에 도착할 즈음, 설화는 이미 선양 중심부에 위치한 중가상권(中街商圈) 북쪽의 랴오선(辽沈) 한가(閑家)에 숙소를 정하고, 분주히 중가상권(中街商圈)을 중심으로 시장거래 실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곳 중앙에 위치한 찌엔진 상단(前進商團) 소유의 대형 상가(商街)를 설화가 맡아서 운영해보라는 리찬썬의 권유를 완곡하게 거절한 설화는, 지니고 온 장사밑천을 털어 중가상권 내에 아담한 규모의 점포를 구하고, 이를 정옥과 영훈이 맡아서 운영해나가도록 했다. 물론 설화 일행은 룽징(龍井)이 고향인 중국인으로 신분을 탈바꿈하여 활동을 시작했고, 중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탓에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깐의 휴식마저 물리친 설화는, 리찬썬의 도움을 받아 중국 내의 상품 유통 경로(流通經路)와 가격 체계(價格體系) 등 중국 상권(商圈)의 영업방식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한편, 찌엔진 상단의 대표 상품과 지역별 거래처의 영업특성을 확인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필수 물목(必須物目)이 무엇인지를 순위별로 선별하고 해당 물목의 생산지 분포 등을 분석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실상(實相)을 알아야 현장감 있는 영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빈틈없는 사전준비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준비과정에는 치밀하게 계획(計劃)을 세우고, 예지(叡智)를 통해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영업계획은 성안(成案) 단계에서 수없이 수정되거나 변경되고 혹은 지워지거나 다시 작성하는 등 오랜 산고(産苦)를 거쳐야만 완성본(完成本)이 적출될 수 있을 것이다. 실행 단계(實行段階)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준비 단계(準備段階)라는 뜻이다. 영업활동이 실패하는 것은 바로 준비가 부실한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기에, 설화의 시장(市場) 실태 파악과 준비 과정은 평소의 그녀가 아닌, 냉담하고 혹독한 여인으로 돌변하여 오로지 혼신을 다하여 그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설화의 사전 준비작업은 적어도 6개월 넘게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를 지켜본 리찬썬(李燦森)도 그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설화에 대한 믿음과 정분(情分)은 더욱 깊어만 갔다.
 
설화(雪花)의 계획은, 어떤 개인이나 특정 상단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그런 장사꾼이 되려는 게 아니다. 그녀에겐 찌엔진 상단(前進商團)이나 함흥 상단(咸興商團)에 딸려있는 하수인이나 조력자가 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주도하는 자신만의 거대상단(巨大商團)을 일으켜, 전설적(傳說的)인 여류 거상(女流巨商)으로 입신하겠다는 것이 그녀의 확고부동한 결심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상인의 피를 물려준 어머니의 명령이요 유지(遺志)라고 생각했다. 그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여인이 천대(賤待)받는 조선(朝鮮)을 떠나 미지의 땅 중국에 진출한 것이 아닌가! 
 
할머니 외에 유일한 피붙이로 판명된 함흥 상단(咸興商團)의 김영택(金英澤) 대방, 그리고 어느덧 정인(情人)의 관계에 이른 찌엔진 상단(前進商團)의 리찬썬(李燦森) 사주, 그들은 맨주먹으로 중국 상권에 도전하려는 설화에게 큰 응원군(應援軍)이 될 것이며, 그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탄탄한 배경(背景)이 되어줄 것이다. 조선에서 생산되는 생필품(生必品)을 대량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함흥 상단의 자금(資金)과 생산 체제(生産體制)가 큰 몫을 감당해 줄 것이고, 중국 상권 곳곳에 빠른 속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찌엔진 상단의 위세(威勢)와 유통망(流通網)이 절대적으로 긴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 관계는 설화에게만 유리한 건 아니다. 도움을 받는 대신 그 이상의 이익을 두 상단에 되돌려주는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정신을 착실히 따르겠다는 것이 설화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설화는 몇백 명이 될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대상(大商), 지역상인(地域商人), 중간 상인(中間商人)과 교류를 넓혀가야 한다. 그들과 상거래가 성사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돈독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일 것이다. 그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소통하며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신뢰만으로는 원활한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고객은 왕(王)이라는 의식이 항상 작용하기 때문이다. 
 
상인은 반드시 구매자를 자신의 눈높이보다 한 치 위의 자리에 공손히 앉혀야 하고, 그를 귀하게 대접해야 할 의무가 있다. 흔히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믿을 수 없는 부류가 장사꾼이라고 단정 짓지 않던가! 신뢰를 잃으면 상거래 자체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이득만을 노리는 수전노(守錢奴)의 오명(汚名)까지 뒤집어쓰게 마련이다. 장사는 이익을 얻기보다는 사람을 얻어야 하고, 사람을 얻으면 이익은 스스로 굴러들어오는 법이라는 할머니 창분(彰芬)의 이야기를 설화는 이미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설화는 아직 젊고 미력하지만, 상인의 도(道)에 통달한 야무진 여인이었다.
 
창고(倉庫)가 넘치도록 상품을 채워 넣는 일, 진열 매대(賣臺)에 상품을 신선하고 돋보이게 진열하여 매장(賣場)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일, 그리고 고객(顧客)과 치열하게 흥정을 벌이며 아귀다툼을 하면서도 막판에 가서는 고객을 승리자(勝利者)로 만드는 일. 그런 일, 그런 순간을 최상의 즐거움이요, 더없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여인이 설화다. 머릿속으로는 이문(利文)이 남는지 손해(損害)를 보는 건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계산(計算)이 재빠르게 돌아가지만, 얼굴은 언제나 구름 한 점 없이 활짝 핀 웃음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여인. 이것이 여성인 설화의 감성(感性)이요, 그녀만이 누릴 수 있는 독특한 친화력이다. 누구에게나 호감(好感)을 받을 수 있는 부드러운 태도와 언변(言辯), 그리고 미모(美貌)를 지니고 있다는 게 그녀의 큰 장점이다. 설화는 천생(天生)의 장사꾼이요, 대성(大成)할 수밖에 없는 내면적(內面的) 외향적(外向的) 자질을 고루 갖춘 그런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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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일조
태평양화학, 태평양패션 등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는 '역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또한 여러 단체를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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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신춘몽 7월22일 오전 9:11
아~? 비운의 세자 내외하고 한 공간에 두신 이유가 세자빈 강씨가 장사로 돈을 모았다는 것을 어디선가 보았는데 이젠
설화하고 손잡는거에요? 최 하급에서 태여난 설화가 이제는 왕족하고 어울린다니 역사 신데릴라가 따로 없내요
제가 너무 앞서 갔나요? 서두에 세자 내외를 그냥 언급하신게 아닐껄요? 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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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7월22일 오전 11:44
바른 지적이시네요. 아무래도 다소의 연관은 있어보입니다만, 그러나 줄거리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조선역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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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7월18일 오후 2:54
조각을 다듬 듯 완벽한 여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런지 매우 궁금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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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7월18일 오후 4:02
인물 묘사가 여러모로 어렵게 느껴지는군요. 재주도 많이 부족하고요. 공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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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애 7월17일 오후 4:08
장사군으로서 대성할 설화가 부럽네요... 활약상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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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7월17일 오후 9:01
어서 오십시요. 반갑습니다. 지켜보고 계시니 더욱 노력하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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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17일 오전 11:32
과연 대륙을 향한 집념이 대단한 여인입니다. 그 계획이 실현되는 과정을 염려하고 응원하며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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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7월17일 오후 9:00
조선반도 보다는 대륙에서의 활략이 더욱 힘들고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 격려해주시니 잘 펼쳐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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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7월17일 오전 9:14
혈통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상인의 기질이겠지요

월요일 아침이면 기다려집니다 궁금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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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7월17일 오후 8:58
반갑습니다. 상인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차이는 바로 기질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응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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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7월17일 오전 8:40
설화같이 아름답고 당차고 철저한 여인을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녀가 상단의 거물로 성장하는 것은
만세 전부터 정해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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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7월17일 오후 8:56
그러길 바라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항상 공감해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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