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마음으로 읽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 아, 해가 나를 / 황인숙 시집 <자명한 산책>
 
한 꼬마가 아이스케키를 쭉쭉 빨면서
땡볕 속을 걸어온다
두 뺨이 햇볕을 쭉쭉 빨아 먹는다
팔과 종아리가 햇볕을 쭉쭉 빨아 먹는다
송사리 떼처럼 햇볕을 쪼아 먹으려 솟구치는 피톨들
살갗이 탱탱하다
전엔 나도 햇볕을
쭉쭉 빨아먹었지
단내로 터질 듯한 햇볕을
 
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먹네.
 
아이스케키가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아이들 중엔 “그게 뭐야?” 토끼 눈을 뜨고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그런 장난감이 있었어.” 쓱싹 얼버무리면 속아 넘어가 줄까? 그래도 아이스케키 비슷한 얼음과자가 있어 다행이다. 
 
우린 가끔 짧고 간명해 보이는 시 한 편에 서늘한 번뜩임이 숨어 있는 걸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문득 바람이 선뜩해 가을이구나 하면 한낮의 땡볕이 제 손으로 훌훌 웃옷을 벗겨낸다. 이런 날씨를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라 하던가. “아이스케키를 쭉쭉 빨아먹는” ‘한 꼬마’를 “두 뺨이 햇볕을 쭉쭉 빨아 먹는다”고 묘사한 부분은 예사롭지 않은 묘사다.
 
햇볕과 만나 즐거워하는 아이의 '탱탱함'을 이보다 더 어떻게 '감각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을까. 그러나 한편 이렇듯 막 "터질 듯한 햇볕" 속에서 시간의 주름은 야속하게도 보다 선명해진다. 나, 곧 시의 화자(話者)는 그 ‘탱탱함’으로부터 이제 멀리 있다. "전엔 나도 햇볕을 / 쭉쭉 빨아먹었지 / 단내로 터질 듯한 햇볕을" 그리고 이어서 "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 먹네"라고 세월의 흐름에 야속함이 섞인 한마디를 툭 뱉는다.
 
'나'를 빨아먹은 '해'는 눈앞에 있는 시간의 서늘함을 싫어도 알게 한다. "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먹네" 마지막 연이자 마지막 구절이 오래 사람들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터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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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승필
춘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고,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으로 등단(1988)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자문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며, 유어스테이지와는 2007년 부터 인연을 맺고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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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김상연 9월17일 오후 4:43
제가(상연이가) 이 시를 쭉쭉 빨아 먹습니다.
활발해진 팔로 차지게 쓰신 승필님의 감성도 쭉쭉 빨아 먹습니다.
가슴이 탱탱해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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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7일 오후 7:33
'제가 (상연이가) '활발해진 팔로' 쓴 저의 감성을 쭉쭉 빨아 먹나요? 그래서 탱탱진 가슴은 얼마나 행복한가요? 같은 말이라도 참 예쁘게 하는 것, 그것도 타고난 재주라면 감사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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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2일 오후 8:54
저도 유치원때 아이스케키 통을 들고 다니며 파는 아저씨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사실 말이 아저씨지 젊은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그 장면이 아직도 뚜렷이 지워지지 않는지 모르겠네요.ㅎㅎ

이 시는 '쭉쭉 빨아먹는다'는 표현으로 묘한 대비를 주었군요. 워낙 황인숙 시인의 시어는 감각적이어서 참 그다운 발상과 함께 조화를 이룬 시라는 생각이 드네요. 해가 마저 빨아먹기 전에 우리 모두, 열심히 달려야겠습니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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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2일 오후 9:34
ㅎㅎㅎ, 역시 레드님! 시집 낼 생각은 어디 두고 황시인에 마음을 파시나요? 하지만 해에게 마저 빨아먹히기 전에 열심히 달린다'는 대목이 짱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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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옥 9월12일 오후 7:47
빨아먹히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쓰고 버티는 중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 일어나자! 일어나자! 채찍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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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2일 오후 9:30
과연 유종옥님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응원의 박수도 아끼지 않을게요. 'Better late than 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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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9월12일 오후 3:48
세월이 나를 빨아드리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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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2일 오후 9:24
그러고 보면 세월 그 놈만큼 야박하고 몰인정한 건 없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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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9월12일 오후 2:58
그 시절에는 시장에 가면 커다란 아이스케키 기계에서 꺼내 접시에다 수북히 담아 주면 줄줄 녹아내리는 아이스케키를 빨리 먹느라. 먹고 남은 나무꼬챙이는 다시 쓴다고 버리지 말라했지요. 지난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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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2일 오후 9:23
그런 재미있는 추억거리도 있군요. 먹고 남은 나무꼬챙이를 다시 쓴다고 버리지 말라고 한 걸 보면 그 주인은 일찍이 신문에 날 애국자가 맞았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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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9월12일 오후 2:37
지난 8월 시장에서 아이스케키 통을메고 파는 사람이 있어 너무 반가워 하나 달랬더니 요즈음 봉지에 담긴 얼음과자를 팔더라구요. 기가 막혀서... 물건 파는 분에게 시원한 얼음을 팔기위한 것이었습니다. 세월이지나면서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변하여갑니다. 다친 팔이 다나아가신다니 반가운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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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2일 오후 2:44
기억해 주셔서 아픈 데가 이제 거의 나아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지 옛적 아이스케키만큼 썩 시원한 빙수가 없는 것 같지 않나요? 먹는 모습부터 재미있어 보이고... 가을 감기도 만만치 않으니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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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9월12일 오후 12:08
아이스케키를 빨던 꼬마로 부터 해가 나를 빨아 먹는 세월까지 한 생애가 보이네요. 시어 한 구절이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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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2일 오후 2:33
아무렴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 하든 시간에게 앗겨버린 한 세월의 덧없음이 자꾸 마음을 건드려 아프지요.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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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9월12일 오전 9:47
빨아먹다 못해 지금은 떼어먹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세월한테요. 다 떼어먹고 무엇이 남을지 궁금함보다는 불안함이 큽니다. 저도 어렸을 때 우리 동네로 ‘아이스케키’ 라고 외치면서 다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무통이었는데 물이 질질 흐르고 있었지요. 그 안에 얼음을 넣고 아이스케키를 담아 메고 다닌 듯합니다. 우리 집은 고모, 삼촌들, 동생까지 숫자가 많아 한 번도 얻어먹지 못하여 그때의 맛을 알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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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2일 오전 11:14
저런 딱한 사정이라니...우스운 이야기지만 저는 아이스케키를 무지? 좋아했습니다. 언니들과 오빠까지 내기먹기까지 했으니 하긴 그 시절 더위도 참 괜장했다는 생각이 못 말리게도 다시 드네요. 오색 찬란한 요즘 것의 맛과는 아무래도 조금 다르긴 해도 그땐 그것 만큼 시원하고 상큼한 게 없었다고 뒤돌아 보아집니다. 맞아요. 그것도 향수 음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 있
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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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9월12일 오전 8:40
'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 먹네'라는 귀절이 선생님 말씀처럼 가슴에 닿아 옵니다. 저도 60년대 중반에 아이스케키 장사를
해서 이 시는 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렇게 시를 올리시는 걸 보니 선생님의 오른손은 거의 회복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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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2일 오후 9:40
앗 이런 실수를! 60년대 중반이라는 걸 60대 중반으로 잘못 읽고 답글을 단 덕에 다시 한 번 만나게 되었네요. 그러나저러나 아이스케키 통이 무거웠을 거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 연민이 든다면 착오가 용납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염려해주신 덕분에 제 팔은 완치 단계가 맞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도 더 두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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