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책과 영화가 있는 삶
[책과 영화가 있는 삶] 왼쪽 눈꺼풀만 깜빡, 그러나 그는 비상을 꿈꿨다
 
눈꺼풀 한 번, 그리고 다음엔 눈꺼풀 두 번을 깜빡했다. 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쪽 눈꺼풀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기를 20만 번 반복한 끝에 130페이지짜리 책이 완성되었다. 세상과의 필사적인 소통이었다. 그리고 열흘 후 그는 마침내 몸속에 갇혀 있던 영혼을 자유롭게 풀었다. 나비처럼 훨훨, 하늘로 비상을 시작한 것이다. 그에게 죽음은 자유, 그 이상의 의미였다.
 
43세의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Elle)' 편집장 쟝 도미니크 보비의 실화를 담은 영화 <잠수종과 나비(Le Scaphandre Et Le Papillon, 2008 개봉)>는 당시 전 세계 신문의 칼럼난을 채우며 삶의 의미를 되짚어준 영화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과 마티유 아말릭이 주연을 맡았다. 삶이 나른해지거나 분출구가 필요할 때, 혹은 부족함 없는 일상의 행복한 순간에도 우리를 일깨우는 삶의 자극제가 되는 이 영화를 이 계절에 떠올린 건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때론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타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아도 같은 모습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불혹을 넘긴 남자에게 야망과 욕망은 인생 절정의 도전 과제라도 되는 양, 쟝은 자유로움을 넘어 방종에 가까운 삶으로 최고의 명예를 누린다. 그리고 어느 날 예기치 않게 다가온 뇌졸중으로 전신 마비가 된다. '감금 증후군(Locked-in Syndrome)' 환자가 된 것이다. 의식은 있지만 전신마비로 인해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 인생의 최고가를 누렸던 그에게 이보다 더한 추락은 없다. 오른쪽 눈은 염증이 의심되어 무참하게 꿰매었고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왼쪽 눈꺼풀이 전부다.
 
외향적인 성격에 더 할 수 없이 활동적이었던 쟝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20일 만에 의식을 찾았을 때 처음 맞이한 장면은 초점이 전혀 맞지 않고 눈앞의 사물들이 몹시 흔들리며 뿌연 최악의 풍경이었다. 여러 명의 의사가 그를 둘러싸고 들여다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을 하지만 그에겐 악몽이라 하기에도 불분명한, 정의 내릴 수 없는 혼돈이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의 몸은 잠수정(다이빙 벨)에 갇혀 깊은 바닷속에서 떠오르길 시도하지만 언제나 그 자리다. 맹숭맹숭한 그의 정신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에게 닥친 상황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차츰 자신의 삶이 180도 다른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는 그의 아들 셀레스트와 새로 산 스포츠카를 타고 연극을 보러 가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었으며, 콧등에 앉은 파리조차 스스로 털어낼 수 없고 혼자서는 텔레비전 채널도 돌릴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은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추락해 버린 현실은 믿을 수 없이 가혹했고 소리를 질러 절규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이내 그다운 태도로 현실과의 타협을 시작한다. "왼쪽 눈 말고 멀쩡한 게 두 가지나 있잖아? 내 상상력과 내 기억들. 뭐든, 어디든, 누구든 다 상상할 수 있다. 해변에서 바닷바람에 나를 맡기고 사랑하는 여인을 마음껏 안을 수 있다. 그게 내가 잠수종에서 벗어날 유일한 수단이야."
 
 
그는 그렇게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현실에 적응해 가지만 그것이 과연 적응인지, 무모한 상상력에 의한 현실 부정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그의 모습은 안쓰럽다.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상대방이 말하면 "인간으로서의 나? 말이야 쉽지." 그는 즉시 되받아치기도 하고 "인생을 되돌아보면 온갖 실수투성이다. 한 여자도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했고, 좋은 기회도 잡지 못했고, 행복한 순간은 그대로 놓쳤다"며 지나온 시간에 대한 반성과 자책 또한 통절하다. 하지만 "다신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며 그는 언어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영화는 비극을 다루지만 아름답고 온화하다. 또 그의 상상력이 펼치는 장면들은 그의 불행한 현실을 부정하듯 낭만적이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의 사고 후의 인생까지도 미리 맞춰 계획한 듯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장면에서도 절절한 슬픔이 끓어오르지만 특유의 유머로 그 슬픔의 깊이를 중화시킨다. 그래서 더욱 여운도 깊다.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이 슬픔. 애비라는 놈이... 애들 머리도 쓰다듬지 못하고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하다니... 하지만 녀석들을 보는 게 어딘가. 웃고 떠드는 귀여운 아이들... 그래서 오늘은 행복하다."
 
불의의 사고는, 그래서 불행이라 일컬어지는 인생의 암초들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곳곳에서 우리의 발이 걸려 넘어지기를 기다린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는 그 앞에서 누구도 대범할 수가 없다. 현실을 부정하고 두려움에 떨며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리기도 하고 영영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쟝은 그런 점에서 성숙한 삶을 살았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파악했으며 현명하게 대처할 줄 알았다.     
 
"나는 점점 멀어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항해 중인 선원이 자신이 방금 떠나온 해안선이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예전의 삶은 아직도 나의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점차 추억의 재가 되어버린다." "내 창에 걸려있는 해진 커튼 사이로 흘러나온 창백한 섬광은 그날의 절망스러움을 설명해준다. 내 발꿈치는 따끔거리고, 머리는 1톤 마냥 무겁다. 그리고 뭔가 안 보이지만 거대한 잠수종 같은 것이 내 몸을 죄수마냥 죄어온다. 어둠 속에서 내 방은 그렇게 천천히 부상한다." (그의 책, '잠수종과 나비' 중에서)
 
 
왼쪽 눈꺼풀만을 깜빡거림으로써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알파벳을 찾아 대필 작가가 받아 적는 방법으로 글을 쓴 시간은 1년 3개월. 총 20만 번의 깜빡거림으로 마침내 130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 그의 분투는 참으로 눈물겹다. 그리고 그는 책이 완성된 지 열흘 만에 마치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처럼 죽음을 맞는다.
 
"이번엔 달리기 선수를 주제로 글을 써볼까? 혹시 알아? 그럼 내가 달리게 될지도 모르잖아?" 사망 이틀 전 그의 책을 대필해준 클로드에게 그가 남긴 농담처럼 비상을 꿈꾸던 쟝은 지금쯤 달리기를, 아니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를 하고 있을까. 그의 절박한 농담 한마디가 이렇게 오랜 후에도 가슴을 적시듯, 그는 인생에 올바로 대처하는 법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다. 그의 유려한 문장과 유머처럼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라면서. 그런 점에서 삶은 잔인하지만 황홀하다.  
 

<칼럼니스트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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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영란
서울 출생으로 가톨릭대학교 가정관리학과(문헌정보학 복수전공)를 졸업했으며, (주)평화신문 신문편집국 교열부 근무, 잡지사/출판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월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2000),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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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용훈 9월13일 오후 11:12
<혼불>을 쓴 최명희가 수년에 걸쳐 소설을 마치고 나자, 병마가 찾아 와 결국 쓰러지고 만 안타까운 일이 떠오르네요. 무언엔가 진을 다 빼고 나면 그럴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혼불을 몇 번씩 읽으며, 이렇게 완벽하게 쓰자면 취재도 엄정했을거고 스트레스도 엄청났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까운 작가 한 분을 너무나도 일찍 잃은 이 땅 문학계의 손실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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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4일 오후 2:31
아, 그러네요. <혼불>, 우리 문학사에 남을 대단한 작품이었지요. 오죽하면 제목이 '혼불'이어서 그랬다는 말까지 돌았을까요? 글을 쓴다는 게... 쓰는 사람들은 실로 체감하는 일이지만 보통 에너지와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수없이 느끼게 되죠. 더구나 수없이 수정하면서 완벽에 완벽을 더하는 일이 얼마나 생을 재촉하는 일인지도요...^^
선생님도 무리하지 마시면서 몰입하시기를요. 언제나 긍정적인 삶에 열의를 가지신 분으로 느껴져 그 에너지가 부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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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9월13일 오후 7:24
20만 번의 눈 깜빡거림을 받아 적은 대필 작가도 대단합니다. 구체적인 글로 보지 않았어도 그 눈물겨움이 전해집니다. 두 눈을 뜨고도 책 한 권 낼 때 수년 동안 퇴고하고도 후회가 남는데 저분의 집념과 열정을 감히 짐작하지 못하겠어요. 저 책을 내느라 진을 다 빼고 나서 긴장이 풀려 일찍 떠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는 1톤 마냥 무겁다.’ 저 한 줄로도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전해집니다. 감동과 슬픔을 엮어 만든 영화였겠군요. 우리 불의의 사고 범접하지 못하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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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4일 오후 2:23
환자와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같이 한 공동체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옛 어른들은 글을 많이 써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비워져 단명하게 된다고 한꺼번에 많은 글을 쓰지 말라고 했다지요? 저도 며칠밤을 새우며 계속 원고를 쓰고나면 핑~하고 온몸의 에너지가 좌악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말이 생각나곤 하더군요. 이러다 아주 가면 어쩌지...? 하고요.ㅎㅎ 한쪽 눈만 깜빡이는 환자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을 겁니다. 목숨을 내놓아야만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고맙습니다, 조 선생님도 늘 건강 살피시고 특히 넘어지지 마시기를요. 향긋한 가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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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옥 9월13일 오후 2:46
'인생은 곳곳이 지뢰밭'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언제 무엇을 밟게 될 지도 모르는 앞날에 대해 초연해지는 것도 세월이 가르쳐줍니다. 우리 삶은 어떤 경우에도 '창' 하나는 마련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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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4일 오후 2:11
그러게 말입니다. 그저 아무 것도 모르고 앞으로 썩썩 나서던 젊은 시절이 편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 아름다운 말씀이네요. '우리 삶은 어떤 경우에도 '창' 하나는 마련된다는 믿음'... 오늘 새로이 새기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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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9월13일 오후 12:07
아주 많이 누리는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걸 생각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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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4일 오후 2:09
아주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저 한쪽 눈이라도 뜨게 해주었으면 조금이라도 덜 답답하지 않았을까 괜히 죄지은 것 같은 마음이 들더군요. 이제는 편안한 휴식을 누리고 있겠지만요. 잘 지내셨지요? 궁금했는데 반갑습니다, 김은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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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9월13일 오전 8:39
인간승리를 여기서 봅니다.
'삶은 잔인하지만 황홀하다'고 하신 말 가슴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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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4일 오후 2:05
네... 진정한 인간승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대단한 의지가 어디서 나왔을까 싶어요.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애써 참았던 눈물이 울컥, 쏟아지더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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