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책과 영화가 있는 삶
[책과 영화가 있는 삶] 권력의 무상함과 춤의 미학
 
권력은 빛과 같다.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밝히듯 찬란한 빛이 일시에 켜지면 세상은 힘을 얻는다. 빛을 밝히면 세상 속 어둠은 순식간에 몸을 숨기고 어둠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빛 속에선 모든 것이 가능하다. 놀이도, 명령도 장난처럼 아이스크림의 맛과 맞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 빛이 꺼진 후, 광명의 세계와 멀어진 원래의 빛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둠은 길을 잃는다. 빛이 머물던 자리엔 다시 무상한 어둠이 들어찬다. 제2의 어둠이다. 마치 권력을 잃은 인간의 종말이 그렇듯 빛은 쉽게 다시 얻어지지 않는다. 빛은 영원히 빛날 때 그 가치가 있으며 빛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무력하고 우스꽝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어둠 속에서 인간이 추는 춤은 어둠과 섞여 돌아간다. 
 
세계적인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 <어느 독재자(The President, 2017.3 개봉)>는 권력의 무상함을 다룬 영화다. 세상 어디쯤 있을 익명의 나라를 향해 호령하고 자신의 뜻대로 쥐고 흔들던 절대 권력의 한 독재자의 말로에 카메라 렌즈를 맞춘다. 영화는 처음에 권력의 막강한 힘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저항했던 이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독재자에게 손자는 계속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조른다.
 
 
독재자는 그런 손자에게 "이 자리의 가치를 보여주마"라며 발아래 펼쳐진 도시의 눈부신 야경을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도시의 불을 당장 끄라고 한다. 그러자 마법처럼 순식간에 도시가 암흑으로 돌변한다. 그 광경으로 손자는 권력의 힘을 알게 되고 매혹된다. 독재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 손자의 명령이 곧 자신의 명령이라 말하며 손자에게 수화기를 건네주고 이번엔 그에게 명령해 보라고 한다.
 
손자가 불을 켜라고 명령하니 도시가 다시 눈부시게 변한다. 재미 들린 손자가 다시 끄라고 하자 도시는 이내 어둠에 잠긴다. 손자와 독재자는 웃으며 권력의 힘을 한동안 맛보다가 손자가 다시 불을 켜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불은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 이때 카메라는 방향을 바꿔 손자와 독재자를 담는다. 그들이 아무리 명령해도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도시처럼 이제 그들이 어둠 속에 있게 된다. 수상한 총소리와 폭음이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위협하던 그들이 이제 위협을 받는 자들로 '자리바꿈'이 일어난 것이다.
 
 
갑자기 일어난 시민들의 반란에 독재자는 황급히 손자를 등에 업고 빠져나온다. 이제 그들은 예전의 영화로운 생활에서 멀어져 도피 생활을 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우리는 지금부터 단순한 연극을 하는 거야." 성난 시민들을 피해 거리의 악사로 변장까지 하게 되지만 독재자는 손자에게 진실을 숨긴다. 끝까지 후회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는 도망자 신세의 늙은 독재자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초라하다.
 
그들의 여정은 최고급 리무진에서 시작되어 오토바이, 버스, 트럭, 마차로 그리고 마침내 끝도 없는 길을 쫓기듯 걸으며 점점 더 거칠어진다. 그러나 목적지인 바닷가에 도착해서 나라를 떠날 보트에 올라타지 못한 채, 그들의 여정은 끝이 난다. 독재자는 손자와의 도피 여정을 통해 타락한 정권의 피해자들과 만난다. 폭동 반란이 일어난 세상을 직접 체험하고, 가난에 찌들어 고생하는 시민들을 목격하고, 그렇게 자신이 외면하면서 살았던 참담한 현실을 하나씩 보게 된다. 그렇다고 관객의 기대처럼 자신의 과거 행동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린 손자와의 동행이다. 늙고 타락한 독재자와 순수한 어린아이의 동행을 통해 영화는 과연 우리가 기대한 결말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관객은 스크린 속 손자의 얼굴에서도 왠지 순수함이나 순진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폭군의 후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아이가 지닌 순결한 심성을, 곧 타락할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의도로 보였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던지는 폭군의 만행에 대한 질문에는 순진한 의구심이 담겨있지만 이 질문이 징표가 되어 훗날 아이는 할아버지의 행적을 따르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로드 무비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신분을 확인해가는 모험을 그린 반영웅의 자전적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다. 권좌에서 축출된 후, 주인공은 자신의 폭정이 원인이 된 또 다른 폭력 사건에 관심을 기울인다. 작품 자체로만 보면 영화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교육적이지도 교훈적이지도 않다. 아이의 존재는 사회 현실에 대한 도덕적 표상을 비추는, 그럼으로써 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지만 결말을 보고 난 관객이 이 작품의 교훈을 명징하게 한 문장으로 완성시키기에는 부담스럽다. 따라서 영화의 텍스트가 보여주는 구도에서 우리는 작품을 재해석할 힌트를 찾아야 한다.
 
그 좋은 예가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숨어드는 '배수로'다. 늙은 독재자가 배수로에 숨어드는 장면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숨어들었던 하수구의 작은 구멍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불행히도 튀니지를 제외한 다른 국가에선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다. 사라진 독재자의 자리를 진정한 평화가 아닌 무장조직 파벌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조지아 영화다. 나쁜 정권이 붕괴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보호받지 못한 채 머무는 결과에 대해 영화는 독재자의 척결만으로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갑작스럽고 엉뚱해 보이는 영화의 결말은 어느 정도 수긍되는 면이 있다. '폐하'에서 '할아버지', 마침내 '살인자'라 불리게 된 노인이 교수형과 화형, 참형의 위기를 모두 거치며 마침내 기이한 형벌을 제안받는다. "춤을 추게 만들자"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 때문이다. 이상주의적이다 못해 허망한 남자의 제안을 거치며 영화는 마침내 한마디를 내뱉는다. 춤을 추는 아이의 이미지를 통해, 훗날 손자가 자신이 겪은 이 거칠기 짝이 없는 연극(?)의 결말을 단지 '바닷가에서의 춤' 정도로 기억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증오가 증오를,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폭력의 확산에 대해 순진한 희망을 말하는 영화는 그 때문에 가치가 있다. 일종의 아름다운 화해다. 영화라서 말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바람을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 속 독재자의 춤과 노래는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일종의 지표를 제시할 것이다. 아 참, 2014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2017년 3월에서야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다.                         

 

<칼럼니스트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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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영란
서울 출생으로 가톨릭대학교 가정관리학과(문헌정보학 복수전공)를 졸업했으며, (주)평화신문 신문편집국 교열부 근무, 잡지사/출판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월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2000),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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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조원자 10월12일 오후 9:28
영화는 잘 되었으나 사실이라면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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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0월12일 오후 6:30
문득 보고싶다는, 보아야 될 것 같은 의욕과 충동이 가슴 가득 차오르네요. 레드님의 글솜씨가 플러스된 것도 있지 싶어요. 아무튼 꼭 볼 시간을 만들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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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10월12일 오후 5:23
재미있는 영화같군요 , 몰락 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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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준 10월12일 오후 12:17
못 봤는데 매우 잘된 영화 같네요. 서둘러 찾아 감상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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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준 10월12일 오후 12:16
못 봤는데 매우 잘된 영화 같네요. 서둘러 찾아 감상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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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10월12일 오전 10:11
아~ 개봉된 영화였내요. 저는 사람이 게을러서 영화관에 잘 못가요. 더구나 티비에서 종종 보여 주니까 편안하게 누워서 본답니다.ㅋㅋ 그런데 영화관에서 보면 정말 실감나기에 몃배 더 실감할수 있어서 좋기는 하던대요.
선생님이 얼마나 맛깔나게 설명을 해 주셨는지 마치 내가 영화를 본것 같아서 만족입니다. 이샘,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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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10월12일 오전 8:47
조지아 영화도 있었군요. 러시아에선 그루지아로 부른다고 하더군요.
권력이란 아마도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을 봅니다. 권력의 무상함을 수많은 사람들이
얘기해도 권력을 잡으면 사람들은 그걸 잊어버리고 마는 것 같아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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