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중국 역사기행
[중국 역사기행] 광복군 총사령부와 광복군 제2지대 유적지 1
서안에 사는 한국 교민들과 장안대학교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기 위해 왕초 윤태옥 교수께서 2017년 10월 28일 서안에 오셨다. 왕초 윤태옥 교수는 중국 전문 여행가이자, 중국여행에 관한 저서를 6권 집필한 작가이며, 십 수 편의 중국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신 분이다. 
 
 
29일은 한국 교민, 30일은 장안대학생들에게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서 28일은 시간이 남았다. 윤태옥 교수님은 서안에 자주 오셨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뜻밖에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곳과 이범석 장군이 지휘했던 광복군 제2지대 유적지를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요즘 조선인들의 중국에서의 독립전쟁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고 계신데 서안에도 광복군 총사령부와 제2지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번 서안 방문 중에 그 두 곳에 들를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서안은 1940년 11월부터 1942년 10월까지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또한 1942년 4월부터 해방될 때까지 광복군 제2지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동안 서안에 광복군 총사령부와 광복군 제2지대 유적지가 있고, 또 백범 김구께서 서안에서 해방의 기쁜 소식을 들으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광복군 총사령부와 광복군 제2지대 유적지에 가본 적은 없어서 윤교수님을 모시고 물어물어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자리와 광복군 제2지대 유적지에 다녀왔다.
 
호텔방을 체크인 한 후 우리는 먼저 서안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종루(鐘樓)에서 가까운 곳에 잇는 광복군 총사령관이 있던 곳으로 갔다. 총사령관이 있었다는 이부가(二府佳)는 종루에서 북대가(北大街)를 따라 북쪽으로 세 블록 더 올라가니까 나왔다.
 
그러나 이부가에 도착해 보니 아쉽게도 한국광복군의 대일 무장투쟁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중국 광복군 총사령부 부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고, 이부가 4호에 있던 광복군 총사령부 부지에는 ‘이랑(利郞)’이란 옷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총사령부 부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이 일대의 독립운동 사적지도 명맥을 잇기 어렵게 되었다. 현지에서 오래 살았을 것 같이 보이는 노인 한 분에게 물어보니까 ‘이부가’라는 큰 도로 표지판에서부터 안쪽으로 200여m 뻗어 있는 1차선 폭의 작은 도로를 ‘광복군 거리’로 불렀다고 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경(重慶)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대일전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려고 그해 11월 총사령부를 섬서성 시안으로 이전하였다. 시안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화북지역과 최전선을 이루고 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광복군 총사령부는 1942년 8월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일본군 점령지역 내의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초모공작(招募工作, 입대권유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으나, 1942년 9월 중국군사위원회의 명령에 의해 광복군 총사령부는 다시 중경으로 옮겼다.
 
중경으로 이전할 때까지 이부가 4호를 거점으로 광복군은 창설 1년여 만에 수백 여 명에 달하는 병력을 확보했다고 한다. 총사령관 이청천은 중국군사당국과의 협정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중경에 남고,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1기생인 황학수 선생이 총사령관대리를 맡았다. 
 
총사령부 건물은 애초 2층 목조였으나 1995년 도로를 확장하면서 도로에 편입되어 헐렸다고 한다.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옷 가게에서 광복군 거리를 따라 100여m 들어가면 ‘한국청년전지공작대본부’가 있던 자리가 나온다. 지번으로는 이부가 45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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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장종학 교수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변과학기술대학교 상경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2008년부터 중국 서안에 있는 국립 장안대학교 재무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금융 연구소 및 한국어교육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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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정용길 11월9일 오후 4:37
서안은 중국 내륙인데 그곳에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었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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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1월9일 오후 9:58
섬서성(성도 서안)은 당시 하남성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과 국민당군 공산당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곳이랍니다. 그래서 중경에 있던 광복군 총사령부가 서안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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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11월9일 오후 3:11
이제 '서안' 하면 장 선생님부터 떠오를 것 같네요.ㅎㅎ
광복군 거리... 말로만 들었는데 새삼 상상하게 되네요. 이부가라... 이동인구가 많아보이네요.
광복군 총사령부가 옷가게가 되다니 새롭습니다.

어라? 전공이 경영학이셨군요? 그동안 중국어 말씀을 많이 하셔서 역사나 어학 전공이신 줄 알았네요.ㅎㅎ
근데 글이 좀 짧아서 아쉽네요. 마음먹고 읽으려니 끝! 하긴 사람이나 글이나 아쉬울 때 떠나는 게 매력이라지만요. 다음 내용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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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1월9일 오후 9:55
1.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 서안하면 저를 떠올리시고, 서안에 오시면 제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3. 대학에 들어갈 때 역사나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습니다. 부친께서 그런 전공을 택하면 배고프다고 하셔서리... 그래서 전공은 재무관리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소설도 쓰고, 역사 기행문도 쓰고, 중국어도 가르치는 등 외도를 많이 하지요. ㅎㅎ
4. 원고지 6장 분량으로 보내드리고 2회로 나눠서 올려달라고 한 것 같은데...
저희가 무슨 힘이 있나요? 편집부에서 하시는데로 따라가야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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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11월9일 오후 1:27
오랜만에 글을 올리셔서 기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이 헐렸다고 하니 무척 안타깝네요. 정말로 이런 건물은 정부가 나서서 보존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건국이 언제냐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이 많으면서 이런 점에서는 소홀히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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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1월9일 오후 9:50
이부가에 가보니 70여년전 조극의 독립을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하던 독립군들의 숨결이 귀에 닿는듯 했습니다. 이제라도 남은 유적들을 보존하는데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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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11월9일 오후 12:06
너무 일 것에 대한 것을 소흘히 했지요. 그저 아픈 상처는 지우기에만 급급했고 이제 우리도 변했으면 해요. 아픈 것은 아픈대로 좋은 것은 좋은대로 보존하며 반성하며 사는 삶을 살 때도 된 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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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1월9일 오후 9:48
우리의 역사를 지키는데 좀 더 열심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서안만 해도 삼국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의 유물들이 많은데 잘 보존하지를 않아서 사라져 가는 것이 많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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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희 11월9일 오전 11:27
~ㅎ 저 며칠전부터 중국어 한마디에 들어가고 있고요~ㅋ 삼생삼세 십리도화 노래도 잘 들었고요, 서안에서도 광복군의 활동이 많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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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1월9일 오후 9:46
그러니까 단테누님이 빨랑 서안에 오셔야 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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