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책과 영화가 있는 삶
[책과 영화가 있는 삶] 대지진, 엄마는 쌍둥이 중 하나만 선택했다
 
'탕산 대지진'은 1976년 7월 28일 중국 탕산에서 발생한 세계 7대 지진 사건 중 하나다. 불과 23초 만에 2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강도 7.5의 대지진. 이 지진으로 당시 중국의 유망 공업 도시였던 탕산은 거의 폐허가 되었으며 그 후 복구하는 데만 해도 10년이 걸렸다. 비공식적으로는 사망자 수가 60~80만, 그 이상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날의 기억은 생지옥 그 자체였다.
 
 
갈수록 지진의 발생이 빈번해지고 특히 불의 고리(Ring of Fire)에 접해 있는 지역에선 지금도 예기치 않은 대규모의 지진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탕산의 7살 쌍둥이인 팡다, 팡덩의 가족도 예외일 수 없었다. 소박하지만 작은 선풍기 바람도 함께 쐬며 행복해하던 그들에게 찾아온 이 끔찍한 천재지변은 그들의 인생도 순식간에 바꿔놓을 만큼 악몽과도 같은 불행을 몰고 왔다. 영화 <대지진(2010, 11 개봉)>은 그들의 이야기다.
 
 
지진이나 기온의 이상 현상이 느껴지면 곤충이나 동물들이 더 빨리 감지해 먼저 대이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일종의 천재지변을 암시하는 전조 현상이다. 그래서였을까. 수천 마리의 잠자리 떼가 탕산시를 뒤덮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던 7월 한여름, 엄마 아빠는 일하러 나가고 곤한 잠을 자고 있던 쌍둥이에게도 불행의 그림자가 닥치고 만 것이다.
 
여기저기 집들이 기우뚱하며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가 싶더니 그들이 사는 도시는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무너져 내린 건물들의 잔해와 길거리에 나뒹구는 시체들, 그리고 통곡소리로 천지를 분간할 수 없는 암흑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들의 엄마 아빠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눈앞의 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고, 엄마를 만류하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건물을 향해 뛰어든 쌍둥이의 아빠도 죽음을 맞았다.
 
"애들 아빠는 이미 저세상에 가고 없어요.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살아갈 수가 없어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내 나머지 인생 당신이 하라는 대로 뭐든지 할게요. 하인이 될 수도 있어요. 제발..." 여기저기 아이들을 찾아 울부짖던 엄마가 아이들의 생존 소식을 듣고 사람들과 함께 달려왔지만 그녀는 신의 시험과도 같은 막다른 선택의 길에 놓이고 만다. 팡다(아들)를 살리기 위해 콘크리트를 치우게 되면 팡덩(딸)이 깔려죽고 팡덩을 살리려면 팡다가 죽게 될 상황, 아들과 딸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두 아이를 의미하는 영화 속 대사처럼 '손바닥이나 손등이나...' 돌무더기에 깔려 처절한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 엄마한테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아이들이 아니던가. 서로 맞붙어 있을 뿐 한 운명을 지닌 쌍둥이의 태생처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조차 나란히 함께 놓인 그들의 운명을 세상 어떤 엄마가 가릴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 엄마는 주저앉아 발만 구를 뿐 선택할 수 없었고 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다른 곳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엄마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 아들을 살려 주세요......."
 
그리고 그 소리를 건물 더미에 깔린 딸이 듣게 된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중국의 남아선호 사상도 우리나라만큼이나 뿌리 깊게 이어져 왔다. 과거 혹독한 통제하에 1가정 1자녀만 낳아야 했던 시절엔 후미진 골목 쓰레기통에 낳자마자 희생된 여아들의 사체가 탯줄이 달린 채로 흔하게 발견됐다던 말이 생각났지만 아이들의 엄마가 내린 결정이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이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누나 팡덩보다 허약했던 아들 팡다에 대한 보호 본능이 끝내 아들을 저버릴 수 없는 선택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아들을 꺼낸 후 남편과 딸의 시체도 밖으로 꺼내져 딸을 마지막으로 품에 안지만 그게 끝이었다. 엄마는 아들을 업고 구조 대열에 섞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운명은 그렇게 끝나나 싶었지만 죽은 줄만 알았던 딸 팡덩은 며칠 후 아버지의 시체 옆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집 더미가 무너져 내리면서 그 충격으로 얼마 동안 쇼크사가 온 것이다. 폐허로 변한 잔해 속에서 우두커니 표정을 잃고 서있던 아이는 왕씨 성을 가진 의료팀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라지만 딸은 자신을 버리고 남동생을 선택한 어머니의 세 마디 말만큼은 잊을 수 없어 엄마를 찾지 않는다. 
 
엄마는 평생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아들 팡다만 보며 살아간다. 이제는 아들만이 유일한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스로 구해낸 아들은 지진으로 인해 왼쪽 팔을 잃은 상태. 그 역시 쌍둥이 누나를 잃었다는 마음에 항조로 옮겨 독자적인 삶을 선택한다. 아들의 삶은 그렇게 32년이 시작되고 죄인의 심정으로 사는 엄마에게도 잔인하도록 길고 어두운 32년의 삶이 시작된다.
 
 
한편, 기적적으로 살아난 딸은 팡덩에서 왕덩으로 성이 바뀌어 살아간다. 좋은 양부모를 만나 항조에서 의과대학엘 들어가지만 왕덩의 삶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다. 거기서 만난 의대생의 아이를 가진 왕덩에게 남자가 낙태를 요구하자 왕덩은 아이를 낳겠다며 그와 이별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왕덩은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또 그렇게 외롭고 무거운 32년을 살아간다.
 
23초 만에 만난 불행으로 영화 속 사람들은 제각각 32년의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재난 영화이지만 지진이라는 사건보다는 그 사건 이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 누구도 평탄하거나 전과 같은 자유로움을 누리는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사람들. 가슴속에 한 가지 이상의 멍에와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외양은 바뀌었지만 32년이 흐르도록 지진의 잔해 속에서 목숨을 거둔 사람들이나 다름없는 어둠의 굴레를 벗지 못한다.
 
 
색싯감을 집으로 데려온 팡다는 엄마에게 함께 항조로 가 살기를 제의하지만 엄마는 남편과 딸의 시체를 묻은 탕산을 지켜야 한다며 거처를 옮기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재해 현장에서 운명처럼 팡덩과 팡다는 서로를 알아보게 되고 팡덩은 팡다를 따라 어머니를 찾는다. 팡덩의 앞에 무릎을 꿇는 어머니의 길고 깊은 한을 확인하면서 팡덩도 진작에 어머니를 찾지 않은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펑 샤오강 감독의 이 영화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진한 감동이 남는다. 피상적인 장면과 배우들의 울음으로 지진 현장을 묘사한 것과는 달리, 그들의 삶에 무게를 둔만큼 초반의 지진 사태는 비교적 짧게 처리하지만 영화 전반에 보이지 않는 지진의 여파는 깊고 아프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한번은 보고 지나가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나라 재난 영화인 '해운대'나 '타워' 등을 떠올리기도 했다.
 
과연 재난 영화라고 너무 과하게 설정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오버액션이 관객에게 얼마나 그 재난의 아픔을 어필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집과 가족을 잃고 생명의 위협에 직면한 사람들은 내면의 고통과 상처가 주는 위협이 더 무겁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계에서도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똑같이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 그만큼 그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고통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재난으로 인한 상실감을 비교적 조용히 암시하면서 교감을 이끌어낸 영화다.
 
그런 만큼 백화장 신인상, 아시안 필름 어워드 여자배우상 등 여러 부문에서 수상도 많았고, 흥행 실적도 좋았다. 엄마 리위엔니 역을 맡은 쉬판부터 팡덩과 왕덩 역의 장징추, 팡다의 장국강, 팡덩의 양아버지 왕덕천 역의 천다오밍, 그리고 귀여운 눈망울로 호소력 깊은 연기를 펼친 어린 팡덩 역의 웬디 장까지 연기 호흡이나 순발력이 뛰어난 연기로 감동을 주었다.
 
2시간이 좀 넘는 긴 시간의 재난 영화를 끝까지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운 느낌이 아닌 그때그때 펼쳐지는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많은 영화 가운데서 이 영화를 꼽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동시에 충무로가 두고두고 연구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장르와 관계없이 영화는 제작비만 쏟아부은 요란한 포장보다 한 컷의 내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교훈처럼 남긴 영화다. 
             

<칼럼니스트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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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영란
서울 출생으로 가톨릭대학교 가정관리학과(문헌정보학 복수전공)를 졸업했으며, (주)평화신문 신문편집국 교열부 근무, 잡지사/출판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월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2000),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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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승필 11월14일 오후 9:32
아이들의 엄마는 쌍둥이 낳은 걸 그때 처음 저주했을 거린 생각이 들어요. 열 손가락 깨물어 파 나지 않으며 아프지 않은 거 없다는 속담이 무색해지고요. 나는 일찌감치 영화 보기를 포기해요. 울지 않을 자신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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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11월14일 오후 6:59
딸이 의식이 없어서 듣지 못했다면...참 처절한 선택에 가슴이 아픕니다.
끝까지 고통스럽고 공포스럽지 않은 재난 영화라는 설명에 언제고 보려고 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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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옥 11월14일 오후 5:42
'손바닥이나 손등'... 저 또한 두 아이 어머니입니다. 이토록 가혹한 선택이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할까요? 두 아이 얼굴이 겹치면서 집중을 방해했습니다. 팡덩이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지만 어머니가 자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오는 트라우마는 지울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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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희 11월14일 오후 2:57
참으로 가슴 영화로군요. 저는 못 본 영화지만 아마도 가슴 절절해서 눈물이 줄줄 흐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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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1월14일 오후 2:03
중국에 20년 가까이 살았고 당산대지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당산에 몇 번 방문했던 저 보다 이 선생님이 낫네요. 저 아직 이 영화 못봤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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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11월14일 오후 1:47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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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11월14일 오전 10:09
한순간에 빛에서 어둠으로 이동하는 삶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비록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출구를 찾아 어둠 속을 헤매는 과정, 그 지난한 삶이야말로 각자의 빛깔을 내뿜는 인생의 열매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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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11월14일 오전 9:40
엄마에게 너무 잔인한 운명이었던거같아요..누구를 택한들..그마음이 편할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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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11월14일 오전 9:15
자식을 선택해야하는 ? 았어서는 안될 최악이내요. 어찌보면 삶은 참으로 짓궂은것 같아요.
그런대도 살아야 하는것이 운명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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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11월14일 오전 8:59
재난시 두 아이중 하나만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누구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잔인한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
처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죠.
영화, 독서, 틈틈이 행사현장 방문 후 글쓰기 등 종횡무진 하시는 영란씨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유어스테이지의
격을 한껏 높여 주시네요. 동시에 저는 글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기쁨이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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