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끝없는 여정
[끝없는 여정] 여정의 끝은 어디인가 2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힘없는 평민이 정점(頂點)의 자리에 올라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텃세가 심한 터줏대감들이 곳곳에 웅거(雄據)하고 있는 중국 땅에서 신분이 모호한 이주(移住) 여성이 입지(立志)의 대열에 올라선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설화는 특별했다. 그녀에겐 첫눈에 상대를 압도하는 고혹적(蠱惑的)인 아름다움이 있었고, 분위기를 평정(平靜)하는 따뜻한 시선(視線)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단순한 미인이 아니었다. 호감과 믿음을 품게 하는 뛰어난 친화력(親和力)과 담대한 설파(說破) 능력이 있었다. 이런 연유로 설화는 불가능을 뚫고 입신(立身)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러나 설화는 혼자의 힘으로 정상에 올라선 건 아니다. 그녀를 큰 상인으로 이끌어준 사람은 여럿이었지만, 그중 가장 특별한 사람을 들자면 조선의 세자빈 강씨일 것이다. 한동안 찌엔진 상단(前進商團)에 얹혀서 명맥이나 유지하며 전전긍긍하던 설화를, 제법 큰 인물로 탈바꿈시켜준 이는 바로 세자빈 강씨가 분명했다. 사무역(私貿易)을 통해 중국으로 들여온 조선특산물과 조선식 농장에서 일군 곡물 등 세자빈이 관장하던 수많은 물품이 쑤에샨 상점(雪山商店)을 통해 중국 요지로 퍼져나가면서 설화의 사업체는 일약 거상(巨商)의 수준으로 비약할 수 있었고, 설화의 위상 역시 크게 상승할 수 있었다. 물론 세자빈도 자신의 구상(構想)을 실현하는 데 설화의 조력이 큰 힘이 되었을 터이니, 누가 먼저라고 하기 이전에 세자빈과 설화의 우애(友愛)는 특별한 상호부조(相互扶助)의 관계로 묶여 있었고, 이것이 힘이 되어 서로의 과업(課業)을 신속하고 완벽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세자빈 강씨가 조선으로 환국(還國)하던 날, 세자빈과 설화는 중국의 국경지대인 책문(柵門)에서 눈물로 석별의 정을 나누며 안타깝게 헤어져야 했다. 물론 세자빈은 희망 넘치는 포부(抱負)를 품고 귀국하면서 가슴이 터질 듯 기대에 부풀어있었고, 조선에 안착하여 빠르게 안정을 찾게 되면 설화를 조선왕실로 초대하여 회포를 나누기로 굳게 다짐했었다.
 
세자빈이 조선으로 떠나면서 그녀가 이룩해놓은 모든 성과물은 청나라 왕자인 아지거(阿濟格–청나라 태조 누르하치의 열두 번째 아들)에게로 넘어갔다. 세자빈이 경작하던 랴오양(遼陽)과 안샨(鞍山) 근방의 광활한 농장들을 비롯하여 심양관 곳간에 보관 중인 미곡 4천7백석 등 모든 물품이 아지거(阿濟格)에게로 이관된 것이다. 세자빈이 사무역을 벌이고 농장을 개설하는 일을 뒷받침해준 황실 인물이 바로 아지거(阿濟格)였기 때문이다.
 
다만 설화가 일궈놓은 지린(吉林) 농장은 세자빈의 요청으로 쑤에샨 상단이 계속 관장토록 황실의 양해가 떨어져 다행한 일이었고, 세자빈의 농장에서 경작하는 대규모의 미곡도 상당한 물량이 설화의 곡물상을 통해 시장에 공급하기로 결정되어 사업 범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세자빈이 조선으로 환국한 후, 설화는 이러한 여세를 몰아 만주를 포함한 랴이둥(遼東)지역 일대는 물론, 허베이(河北)지역과 산시(山西)지역, 산둥(山東)지역으로 직영 곡물 상점과 대리점을 대폭 늘려나가면서 상단의 위세를 대대적으로 확충해나갈 수 있었다.
 
세자빈 강씨는 여느 왕실 여인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위기상황에서도 대담한 기지(機智)를 발휘했고 실리(實利)를 위해서라면 과감히 체면을 벗어던질 줄 아는 여인이었다. 세자빈 강씨는 새로운 무대 중국에서 세자빈이라는 통념을 깨고 경제활동에 앞장섰고, 조선의 질(質) 좋은 물품과 청나라 지배층의 두둑한 재력을 연결하는 일종의 국제무역(國際貿易)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세자와 세자빈은 잘사는 나라, 실용적인 조선을 만들겠다는 국가개조(國家改造)의 열망을 품고 고국으로 돌아갔고, 그 열망을 풀어내기 위해 밤잠을 지새워야 했다. 
 
그런 왕세자 소현(昭顯)은 불행하게도 아버지 인조(仁祖)로부터 갖은 핍박을 당한 끝에 조선에 도착한 지 두 달 만에 유명(幽明)을 달리하고 말았다. 소현세자의 죽음은 누가 봐도 의문사였고, 시신(屍身)의 상태는 정상적인 병사(病死)로 보기 어려웠다. 온몸이 검은빛이 나고, 얼굴에 선혈이 낭자했다. 사인(死因)은 분명 독살(毒殺)이었다. 원인은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인조(仁祖)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소현세자가 아버지를 위협하는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인조는 귀국한 아들 소현을 제거해야 할 정적(政敵)으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소현세자를 가계(家系)의 대통(大通)에서 삭탈할 결심을 굳힌 인조의 칼끝은 세자빈 강씨와 그의 아들들을 향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시동생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세자 책봉을 보면서, 강빈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녀의 절규는 시아버지 인조(仁祖)로부터 냉혹하게 외면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는 강빈을 감금시켰다. 그때 강빈은 유복자(遺腹子)를 임신한 상태였다. 갇힌 상태에서 홀로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사산(死産)하고 만다.
 
이런 가운데, 인조(仁祖)가 먹는 수라의 전복에서 독이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조는 이 사건의 배후에 며느리 강빈이 있다고 지목했다. 강빈의 무고함을 증명하던 궁녀들은 고문 속에 죽어갔다. 인조에게 강빈은 이미 역적이었다. 결국, 강빈은 세자빈의 자리에서 폐출되었고, 궁궐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리고는 바로 그날 사약(賜藥)을 받아야 했다. 강빈은 시아버지 인조에 의해 서른여섯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역적이 되어 죽임을 당한 강빈은 사랑하는 남편 소현세자 곁에 잠들지 못하고, 집안 선산에 홀로 묻혀야 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인조는 소현세자와 강빈의 세 아들도 제주도로 귀양을 보내, 큰아들 석철과 둘째 아들 석린 역시 의심쩍은 죽음을 맞게 한다. 강빈이 죽은 지 두 해 후였다. 권력(權力)이란 무엇인가? 인조(仁祖)는 권력욕(權力慾)에 눈이 멀어,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까지 죽이는 반인륜적(反人倫的), 비인간적(非人間的) 임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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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일조
태평양화학, 태평양패션 등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는 '역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또한 여러 단체를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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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유혜경 11월18일 오후 1:19
소현세자와 강빈의 죽음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인조... 애초에 왕이 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일 텐데...
높은 자리에 올라설 자격이 없는 사람을 지도자로 둔 우리 국민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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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1월19일 오전 10:48
오랜만이네요. 방문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역사의 오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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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11월14일 오후 9:26
임금의 용렬함이 자신과 나라전체를 고통으로 몰고가는 조선의 모습..권력의 비정함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예외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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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1월14일 오후 9:38
조선조 역사 중 가장 안타까운 장면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국가 지도자의 품격은 나라의 백년대계를 좌우한다고 역사는 가르치고 있지요. 방문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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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1월14일 오후 2:16
조선의 왕들 중에는 여러 바보같은 인물들이 있지만 그 중에도 인조가 제일 바보같은 인물인 것 같습니다.
영화 <남한산성>에 인조가 삼전도에서 무릎바람으로 청나라 황제에게 알현하는 굴욕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이 모진 일을 겪고 나서 인성이 변했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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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1월14일 오후 3:02
주변국과 복잡한 역학관계를 슬기롭게 풀지 못한 용렬한 임금이지요. 안타까움과 아쉬움의 과정이었습니다. 흥미롭게 공감해주시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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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광호 11월14일 오전 10:42
설화의 지모와 강빈의 웅대한 포부가 이룩한 쑤에샨상단의 앞일이 걱정됩니다.
소현세자와 인조의 악연도 어쩌면 조선이란 나라의 국운이 거기까지 밖에
안되는 아타까운 일 인것 같습니다.
국가나 개인의 영고성쇠도 시운을 벗어날 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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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1월14일 오후 2:59
옳은 말씀입니다. 지극히 안타깝고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역사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좋은 말씀으로 응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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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11월13일 오후 7:15
아이구 ,,화가나서 ㅠ ㅠ 인조 임금은 사람도 아니에요. 좀 있다가 인조의 가계도를 다시 살펴 봐야 겠어요.
오래도록 임금 하겠다고 아들 손자 다 죽인거에요. 그래서 얼마나 장수 했는가 봐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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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1월13일 오후 8:36
며느리 강빈이 사약 받고 죽은지 3년만에 인조 인금도 세상을 떠났지요. 안타깝기 짝이 앖는 부끄러운 우리 역사의 단편이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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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11월13일 오전 11:31
세자빈의 자질이 너무나 아까습니다. 차라리 중국에 더 머물렀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역사지만 새삼 분노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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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1월13일 오후 3:23
안타까운 일이지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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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11월13일 오전 10:01
권력의 비정함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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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1월13일 오후 3:23
선조와 함께 조선 왕조사를 대표하는 용렬한 임금이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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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11월13일 오전 9:28
세자빈 강씨의 죽음은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사악한 임금 인조와 만난 자체가 악연이지요. 소현세자가
집권했다면 조선은 달라졌겠지요. 이 역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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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1월13일 오후 3:20
안타까운 역사의 단면이지요. 끝없는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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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11월13일 오전 9:26
반정으로 빼앗은 인조의 됨됨이가 조선을 망처 놓는군요.
소현세자가 필요했던 현실은 멀어져 갔고.
설화의 운명은 어찌 되려나?....두려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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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1월13일 오후 3:19
여전히 응원해주시니 거듭하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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