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아름다운 사막
[아름다운 사막] <2권> 인연의 끝, 그리고 시작-청사초롱(2)
우리는 공항에서 바로 우리 집으로 갔다. 우리 집에는 나를 환영하기 위해 형과 형수, 그리고 돌이 지난 조카와 여동생 가족이 와 있었다. 여동생은 3년 전에 결혼해서 이미 아들만 두 명을 낳았고, 제부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내게는 생각지도 않게 가족이 두 배로 더 늘었고, 귀여운 조카들을 세 명이나 보았지만 나는 형제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들은 내가 살아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전리품으로 꽤 괜찮은 아가씨마저 떡하니 꿰차고 온 것에 대해서 무척 기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더군다나 내 예상대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저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으셔서 웃으시느라고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혜진이와 함께 나란히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신고식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모두 모여서 엄마가 상다리가 부러지게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오늘의 주제는 역시 우리의 결혼이었다. 결혼식까지 별로 남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주말에 바로 양가 부모님끼리 상견례를 하기로 했고, 결혼식은 번잡함을 피하고자 평일 오전에 혜진이 근무하고 있는 S 대학교 채플에서 윤 총장님 주례로 올리기로 했다.
 
그 후로 우리의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이렇게 거추장스럽고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더군다나 하림이 놈이 나보다 일주일 먼저 결혼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 결혼식 준비하랴, 하림이 결혼식 도와주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날마다 거의 저녁 12시까지 붙어 다녔다. 결혼식장과 주례는 결정됐지만, 예복 맞춰야지, 예물 맞춰야지, 침대나 옷장 등 각종 가구에, TV, 냉장고, 에어컨 등 각종 가전제품, 그리고 신혼집 꾸미는 등 정말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물론 혜진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그녀가 하라는 대로만 하는 돌쇠의 역할만을 감당했다. 그 모든 난관을 모두 통과하고 화창한 9월의 어느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신부 옆에 나란히 서는 행운의 남자가 되었다.
 
윤 총장님은 혜진에게는 스승이자, 학교 선배이자, 현재 직장으로 이끌어준 은인이자, 직장 상사이시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결혼을 제일 앞서서 축하해 주는 주례이기도 하다. 은과 결혼을 했다면 당연히 박 교수님이 주례를 서 주셨겠지만 내 옆에 나란히 선 신부는 은이 아니라 혜진이다.
 
박 교수님께도 미리 내 결혼식에 대해 말씀을 드리는 것이 바른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하림으로부터 박 교수님이 본인이 나서서 은을 북산과기대에 보냈고, 그 결과 그녀가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 때문에 아직도 후회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찾아뵙기로 했다. 어차피 박 교수님이 더 이상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다. 비록 은 대신에 혜진이 내 신부가 되었지만 우리는 결혼한 후에 박 교수님 추천을 받아 북산과기대 교수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학과 교수로, 그리고 혜진은 영어과 교수로 앞으로 남은 평생을 그곳에 살면서 은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곳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림이 놈은 숫기도 없는 녀석이 굳이 우리 결혼식 사회를 보겠다고 우겼다. 할 수 없이 하림이에게 사회를 맡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놈이 어리벙벙하게 사회를 봐서 예식장을 온통 웃음의 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결혼식의 하이라이트, 윤 총장님은 우리에게 짧지만 강력한 주례사를 전해 주셨다.
 
“오늘 이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신랑과 신부, 그리고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 일가친척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귀빈 여러분, 천고마비의 계절, 여러분들을 모시고 여태까지는 각자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둘이서 하나가 되어 이 세파를 헤쳐 나가려는 두 젊은이의 아름다운 결혼식에 주례를 맡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우혜진 양을 지도교수이자 제가 가르치는 학생으로 처음 만난 후 4년 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제가 추천서를 써 주어서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보냈으며, 제가 총장으로 우리 학교 영어과 교수로 초빙했고, 이제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 주는 주례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즉, 저는 혜진 양의 스승이자, 선배이자, 동료로서 혜진 양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또한, 최훈 군은 이들이 졸업한 필라델피아 모교에서 사랑을 나눌 때부터 알고 지냈으며, 공무로 필라를 오가는 길에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딸을 데리고 식장으로 들어오는 아버지의 마음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니 열심히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 두 번째는 사위가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딸이 아깝다는 마음이며, 그리고 마지막은 부족한 내 딸을 아내로 맞아 주어서 고맙다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제가 비록 혜진 양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혜진 양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결혼하기 위해 이 앞에 나란히 선 두 젊은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은 두 사람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니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됨은 서로 단순한 육체적 만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상대방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두 분의 남은 인생을 결코 경제나 권력에 치우쳐 풍요로움을 누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웃과 사회와 함께하는 삶, 남을 도와 더불어 사는 삶에 비중을 두십시오. 그럼으로써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풍요와 행복을 누리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서로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결혼 십계명을 두 분께 드립니다. 이를 꼭 기억하여 평생 실천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두 사람이 동시에 화내지 말라. 던지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부득이 화를 내야 할 경우라면 교대로 하십시오.
둘째, 집에 불이 났을 때 외에는 고함치지 말라. 한 사람이 소프라노로 나오면 또 한 사람은 베이스로 화음을 내고 테너로 나오면 알토로 하모니를 이루십시오.
셋째, 눈이 있어도 흠을 보지 말며, 입이 있어도 실수를 말하지 말라. 사랑의 안경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십시오.
네 번째, 아내나 남편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아픈 곳을 긁지 말라. 서로의 상처는 감싸주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야 합니다.
여섯 번째, 분을 품고 침상에 들지 말라. 모든 분노는 그날 이야기함으로써 모두 풀어버리십시오.
일곱 번째, 처음 사랑을 잊지 말라. 지속적인 사랑을 위해 지난 시절의 사랑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달콤했던 일을 회상하십시오.
여덟 번째, 결코 단념하지 말라.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속담을 실천하며 먼저 웃으며 손을 내미십시오.
아홉 번째, 숨기지 말라. 서로에게 진실하십시오.
열 번째, 두 사람을 짝지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함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영원토록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는 윤 총장님의 주례사를 가슴 깊이 새기며 두 손을 꼭 잡고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날 그렇게 결혼식을 마치고 저녁에 우리의 신혼여행지인 제주도로 왔다. 아직은 가난한 우리 신혼부부에게는 너무나 고맙게도 혜진의 친구가 서귀포에 있는 하얏트 호텔의 4박 5일 무료 숙박 티켓을 주었다.
 
그 친구 회사에서 제주도에 손님을 모시고 가느라 하얏트 호텔을 자주 이용했고, 호텔에서 사은품으로 무료 숙박 티켓을 준 것인데 그것을 우리에게 준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묵은 곳은 그 호텔의 11층 이그제큐티브 플로어에 있는 방이라서 같은 층에 있는 이그제큐티브 바에 가서 아무 때라도 과일, 와인이나 맥주를 포함한 음료, 간단한 먹을거리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이윽고 우리의 신혼 첫날밤이 되었다. 작년에 혜진이 윤 총장님을 모시고 필라델피아에 출장 왔을 때 처음 사랑을 나누었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우리가 살 신혼집에 침대 등 가구가 준비된 후 우리 신혼집에 가서 몇 번 더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는 비록 우리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결합한 사이라도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두 남녀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는 결혼이라는 형식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필라델피아에서야 다만 결혼을 약속한 사이일 뿐이라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기에 우리가 사랑을 나눈 후에도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서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결혼식 날짜까지 받은 후에도 혜진은 내가 그녀를 요구할 때마다 주저하곤 했다.
 
나는 혜진의 그러한 미온적인 태도에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성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비록 곧 결혼할 사이라지만 모든 사람의 축복 하에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는 결혼식이라는 의례를 통과한 다음에 내게 자기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열어서 나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혜진의 바람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혼식까지는 매일 사랑 하고 싶었음에도 내 욕망을 애써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내용적일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완전한 부부가 되었다. 우리가 체크인을 마치고 호텔 방에 들어왔을 때 도저히 뜨거운 내 몸을 저녁이 되기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커튼을 치고 혜진을 안았다. 혜진도 이제 내게 완전히 몸을 열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커튼을 통과해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햇빛 사이로 혜진의 두 눈은 요염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녀의 입에서는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좋은 악기였고 나는 솜씨 좋은 연주자였다. 오랜 시간 쾌감의 바다를 떠돌던 우리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얼싸안고 깊은 잠에 빠졌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9월의 해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게 깊은 사랑을 나눴음에도 혜진은 눈을 떠 나를 바라보았을 때 쑥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나는 가만히 혜진을 안아주었다. 혜진의 작은 몸이 가냘픈 새처럼 내 가슴 안으로 쏙 들어온다. 혜진의 맨살의 감촉은 내가 그동안 경험한 그 어느 비단보다도 부드러웠다.
 
"혜진아, 사랑해!"
 
"응, 훈아 나도 사랑해!"
 
"이 사람아, '훈'이 뭐야. 이제 서방님이라든지 여보라고 불러야지."
 
"아이, 어떻게 벌써 그렇게 불러. 익숙해질 때까지 그냥 훈이라고 부르게 해줘."
 
"알았어, 하지만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때는 훈이라고 불렀다가는 야단맞을 테니까 여보라고 깍듯이 불러야 해."
 
"알았어요!"
 
혜진이 애교를 부리며 내게 안겨 온다. 새삼 행복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나는 내 이런 행복한 마음을 혜진에게 전해 주었다.
 
"혜진아, 사랑은 100%의 정신적인 결합과 100%의 육체적인 결합으로 완성되는 것 같아."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던 혜진이 묻는다.
 
"어떻게 100%의 정신과 100%의 육체야? 50%의 정신과 50%의 육체가 합쳐져서 100%가 되는 것이겠지."
 
"아니 100%의 육체와 100%의 정신이 맞아. 100%의 육체와 100%의 정신이 합쳐져 100%의 사랑이 되지. 그래서 사랑을 신비라고 그러잖아. 그리고 그 신비는 새 생명을 잉태하고. 빨리 우리를 닮은 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나는 그 말을 하며 혜진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내가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에 처음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던 혜진 막상 우리의 아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힘주어 안는다.
 
"자기는 딸이 좋아? 아니면 아들이 좋아?"
 
"당연히 널 똑 닮은 딸이 좋지. 날 똑 닮아서 지지리도 말 안 듣는 놈이 나오면 어떻게 하라고."
 
‘하하하, 호호호’ 사랑하는 신혼부부는 이렇게 행복한 웃음을 마음껏 웃었다. 우리는 떨어지기가 싫어서 꼭 안고 있다가 다시 한 번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 후 조금 늦은 저녁을 먹고 밤이 이슥하도록 이그제큐티브 바에 앉아서 저 멀리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와인을 즐겼다. 우리의 신혼 첫날밤은 그렇게 아름답고 풍요롭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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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장유하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변과학기술대학교 상경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2008년부터 중국 서안에 있는 국립 장안대학교 재무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금융 연구소 및 한국어교육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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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조규옥 12월6일 오후 8:51
혼자 웃습니다. 사랑해 사랑해가 언제쯤 못살아 못살아 할지
괜히 못 된 생각을 하더라구요 내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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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2월6일 오후 10:13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못살아, 못살아, 못살아...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겠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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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희 12월6일 오후 5:11
~~~~~ㅎㅎㅎ. 하림이 놈이...ㅋㅋㅋ 일주일 먼저 결혼식 올리고 또 결혼식 사회까지 봐주는 친구 하림이 놈...ㅎ 좋은 친구입니다. 주례사가 열가지씩이나 좀 긴듯하지만 말로 하면 짧았겠지요...ㅎ 집에 불이 났을 때 외에는 고함치지 말라~~좋은 주례사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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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2월6일 오후 8:25
야하신 단테누님이 어째서 야한 장면에 대한 품평이 없으실꼬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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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12월6일 오전 11:15
먼 길을 돌아 온 두 사람이 아름다운 부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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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2월6일 오후 8:26
예, 이렇게 아름답게 결합한 부부갇 되어 함께 세파를 헤쳐나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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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12월6일 오전 10:22
ㅋㅋㅋ 사랑해, 사 랑 해,,, 하는 말을 아끼지 않던 많은 연인들도 "남 이되여 돌아서면 죽어라, 죽어라,,,하게 되지요.
3달 사랑하고 3년 싸우고 30년 체념하고 사는게 부부라지요? ㅋㅋㅋ 그럼 33년 3개월이 지나도록 함께 살고 있으면
그 다음 시간은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하나요? 네~엣? 어째서 필요없는 계산을 앞세워 심술이냐고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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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2월6일 오후 8:27
훈이랑 혜진이는 절때루 안싸웁니당~!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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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12월6일 오전 8:34
정말 부러운 부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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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학 12월6일 오후 8:27
신혼 부부는 젊어서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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