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마음으로 읽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 뿌리의 가문 / 김월수 시집 <서둘러 후회를 하다>
 
꼭꼭 감추고 아래로만 내려갔지
갈라 터진 발바닥에서 소문이 새나가지 않게
냄새도 흘리지 않고
여미고 견디었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발톱 빠지는 줄도 몰랐지
 
흐르는 물처럼 발을 뻗어보면
하늘은 항상 높고
강은 멀었지
 
그래도 뻗어가는 것만이
가문을 지키는 길로 믿었지
 
심근성으로 깊게
천근성으로 넓게 뻗어갔지
 
큰일을 할 때만 뿌리를 보였지 
 
'가문(家門)이라는 어휘는 위엄과 전통이라는 쌍벽에 싸여 있다. 그러므로 절대 함부로 넘볼 곳이 아니라는 걸 경고해 준다. 여기에 '뿌리'라는 말이 없다면 단독으로 살아남기가 난처한 보루(堡壘)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력(來歷)부터 내세우는 걸 당연시한다. 특히 여성의 생애를 한 예로 들어 본다면 '꼭꼭 감추고 아래로만 내려'가는 일. 그리고 '소문이 새나가지 않게/ 냄새도 흘리지 않고/ 여미고 견디었지'라는 구절에서 숙명적 인내의 체취가 맡아진다.
 
'발톱 빠지는 줄도 모'르고 살았지만 볼 때마다 시원하게 올려다보고 싶은 '하늘은 항상 높고/ 편히 흘러가고 싶은 강은 '멀어'만 보였다. 한탄조가 저절로 터져 나왔을 만하다. 그러나 왕왕 가문을 지켜야 할 이들에겐 '뻗어가는 것만'이 종신적인 굴레이기에 오로지 견뎠다. '심근성과 천근성, 그 두 가지라야만 마침내 '큰일을 할 때' 뿌리를 뿌리답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나름대로 키재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뿌리 깊은 가문을 지켜나간다는 일은 보통 사람들에겐 타고난 업보다. 평생 든든하게 땅에 뿌리를 박기 위해 모진 비바람과 눈비에 맞서 인내하는 삶. 비슷한 류의 가문들과 키재기가 얼마나 살벌하고 잔혹스러운지를 우리는 세상 소식을 통해 듣는 일만으로도 버겁다. 보통으로 사는 삶, 보통을 유지하는 생의 평균율에 한층 더 연민이 드는 요즘 세태다.  
 
운명보다 처절한 길에 제 뿌리를 박는 일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게 한 번 박힌 가문의 뿌리를 지켜내는 일이 아니던가. 그 두 가지 명제 앞에서 우리네 평인(平人)은 사뭇 오금이 떨린다. 모순과 자가당착이라는 수십 개 엇갈린 차선 위에서 막 켜질 건널목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는 순간처럼.  
 

<칼럼니스트 이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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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승필
춘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고,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으로 등단(1988)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자문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며, 유어스테이지와는 2007년 부터 인연을 맺고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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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박옥희 12월6일 오후 5:52
발톱이 빠졌다면 얼마나 아팠을 텐데도 모르고 살았다니요. 엄청나게 애쓰며 후회없이 살았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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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2월6일 오후 6:02
하하, 그렇게 모질게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게 '뿌리' 있는 가문을 지키고 유지해 나가는 길이라고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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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5일 오후 9:24
뿌리 가 있는 집,...많이 듣던 말, 뒤 늦은 후회보다 서둘러 후회를 .... 하면 낫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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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2월5일 오후 10:17
요즘은 '뿌리'가 있다는 집안 자식들과 사람들의 일이 더 아리송하게 보여질 경우가 많지 않나요? 저 생긴 그대로 많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며 사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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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12월5일 오후 4:37
저는 웃기는 사람인가봅니다. 사람에게는 뿌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것을 보면 시대에 맞지 않게도 근본을 따지니 말 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3대 독자 시면서도 양자라도 들여서 대를 이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어요.
누구의 어떤 "피 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양자로 한다는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나의 친정은 어른들 말씀대로 "문을 닫게 되였지요.
근본, 피,뿌리,, 무시할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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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2월5일 오후 10:15
신춘몽님, 절대 웃기는 사람 아니거든요. 요즘처럼 세상 일 뒤죽박죽인 때에 부리와 근본을 찾고 따진다는 게 오히려 가소로우니까요. 뿌리도 가문도 실은 사람 생긴 그대로라고 보면 정확할 것 같아요. '문'을 닫고 안 닫고, 그 차이가 과연 그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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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12월5일 오후 4:31
'서둘러 후회를 하다'라는 표현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법상으로는 맞지 않는거지요. 그리고 천근성은 天根性인가요? 글의 끝부분에 矛盾과 自家撞着이라는 말이
글의 끝부분에 있는 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내용 때문인가요?

제 어머니도 시집살이 호되게 하셨지요. 발톱이 빠지도록 일하셨고, 한겨울엔 내성천에서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시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리고 자식들 잘되라고 매일 새벽에 장독대 위에 정안수 떠놓으시고 천지신명께 빌던
모습이 돌아가신지 11년이 지금도 제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도 서둘러 후회할걸 그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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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2월5일 오후 10:11
사실은 저도 그래요. 후회를 굳이 '서둘러' 해야할 일까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시는 시예요. 장쌤님. 그렇찮아도 따지고 깊고 꼼꼼이 성찰할 것들이 허다하게 숱한 세상사인데...
어머니 위해 위령기도 많이 하실 거라 믿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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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12월5일 오전 10:15
뿌리를 지켜내느라 살아 있는 것들이 몸을 떠는 계절입니다. 그 뿌리를 지켜내지 못한 저는 그 떨림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한탄조의 넋두리를 하면서도 빨간 신호등에 뛰어들지 않고 파란신호등을 기다리는 인생, 모순 속 아름다운 인내입니다.
팔을 자유롭게 쓰시니 자주 뵙게 되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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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2월5일 오후 1:00
뿌리가 대관절 무엇이며, 가문 또한 무엇일까요? 깜빡거리는 네거리 신호등에 한결같이 맞추고 섰는 우리의 시선을 늘 불안 초조로 떨게 할뿐이죠. 멀리, 아주 멀리만 내다보며 우리 살아요. 늘 제 팔에 신경써 주시니 기도해주시는 걸로 이미 와 닿고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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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12월5일 오전 9:59
발톱 빠지는 줄도...모르고.. 우리 부모님들은 한 번씩 경험하신거같아..마음이 아프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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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2월5일 오후 12:55
김은아님은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고 부모님 아픔을 먼저 생각하시니 효녀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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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12월5일 오전 9:11
발톱 빠지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우리 세대의 삶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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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2월5일 오후 12:54
그 시절 '빠진 발톱'들을 어디 가면 다시 찾을 수 있을가요? 아프고 견디기 힘든 시간의 삶이마치 열쇠 구멍 하나를 통해 빠져나간 연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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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호 12월5일 오전 9:02
오늘은 님의 주제만큼,,바깥 날씨도 올 겨울들어 제일 추운 날입니다..자꾸 옷깃을 여며도 추운것은 마음이 허한 때문같습니다,,평생을 인고의 시간으로 그 시절 모든 가난을 운명처럼 체념으로 알고 살았던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신 어머님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생각해봅니다 ..무슨 큰일만 닥치면 가문의 이름을 큰 벼슬처럼 알았던, 차라리 서럽고 서러웠던 민초들의 마지막 지키고 싶었던 자존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안쓰럽고 가만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언제나 탁월한 선택보다는 님 나름대로의 군살이 없는, 글에 대한 주석은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선물합니다...날이 춥습니다,,,항상 건강 유의하시고 하루하루 행복한 날을 꾸며가시길 기원합니다,,멀리 대구에서 풍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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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2월5일 오후 12:51
일기예보대로 정말 조금 추워졌네요. 겨울 초입부터 감기 들면 질색할 일이더군요, 작년에 감기로 남편과 내가 이비인후과에 얼마나 여러 차례 드나들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금직하거든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매번 50명 가가운 대기자들이 이미 와 있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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