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마음으로 읽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 울라브 H . 하우게 <세계 시인선 1 >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바람 아니면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ㅡ 
바람과의 어울림도
짜릿한 놀이일 뿐이다 
열매를 맺어본 나무들은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혹시 경험해 보신 적이 있는지? 저녁 정원을 걷다가 눈을 맞고 서 있는 어린 나무가 마음에 걸려서 머뭇거린 일이. 그래서 이 시인처럼 서툰 솜씨가 아니라면 창이라도 겨눠볼 걸, 하며 애를 태워 본 순간이. 살기 바빠서 눈 같은 것엔 전혀 마음을 쓴 적이 없다고 해도 크게 마음 쓸 일은 아니다.
 
노르웨이의 시인 울라브 H. 하우게의 시를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우리가 만난 건 큰 행운이다. 정원사이기도 한 그가 나무들과 나누는 대화가 사람과의 그것보다 따뜻하고 정겹다는 생각에 나는 잠시 생각과 말을 잊고 멈춰 서 있어야 했다.   
 
정원에서 일하면서 시인이 나무들과 나눌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자신의 시도 들려줬을 테니 나무들은 얼마나 행복한 그의 독자일까? 눈 오는 날, 시인은 일을 멈추고 눈을 맞는 어린 나무들을 오래 보다 못해 행동에 나선다. 자신이 어린 나무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다만 눈을 털어내 주는 그 한 가지일 뿐이라고. 어린 나무에 대한 시인의 사랑은 애틋하기만 하다. 눈을 맞는 어린 나무가 안쓰러워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미해서 보통 사람에겐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일수록 먼저 보고 느끼는 까닭에 아픔도 연민도 유달리 많은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나 어린 나무는 시인의 걱정과 달리 바람 앞에서만 몸을 굽힐 뿐 당당하다. 바람과의 어울림도 어린 나무에겐 짜릿한 놀이일 뿐이니 시인의 심성은 과민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유난히 차갑고 조용한 북구(北歐)의 겨울 정원에서 마음에 어린 나무를 품은 채 시를 쓰는 그를 문득 만나고 싶어진다.   
 

<칼럼니스트 이승필>

추천하기7
  • 페이스북 공유 트윗터 공유 Google Plus 공유
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승필
춘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 졸업, 중고등부 영어교사 재직,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으로 등단(1988)하였다. 문학종합지 <인간과 문학> 신인상으로 수필 등단(2017) 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자문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며, 유어스테이지와는 2007년 부터 인연을 맺고 활동중이다.
Copyright ⓒ 시니어파트너즈 & Yourstage.com 저작권은 시니어파트너즈에게 있습니다.
나도 한마디
장현덕 2월13일 오후 9:02
어젯 밤 조깅을 하는 중 눈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Hauge시인이었다면 멋진 시가 나왔을텐데 저는 그저 좋다는 생각만
했지 詩感은 오지 않았지요. 시인은 사물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 생각난 노래는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
였지요.제가 벨기에에 살 때 브뤼셀의 테르브렌이란 호수에서 가족과 뱃놀이를 하고 있을 때 아다모는 혼자 배를 타고 있었지요.
간단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그 이후론 눈만 오면 그 때가 생각납니다.
답글쓰기
이승필 2월13일 오후 9:53
와아! 혼자 배를 탄 아다모가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요? 브르셀의 테르브랜이란 호수는또 얼마나 장 샘의 기억 속에 사무치게 남았을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참으로 좋았던, 그래서 영원히 가슴이라는 서랍에서 지워지지 않겠죠.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 저도 좋아하는 노래죠.
답글쓰기
김상연 2월13일 오전 10:56
이 시와 마주하면서 헤르만 헤세를 생각했어요.
가위를 들고 정원을 가꾸면서 나무와 마음을 나누고 일상을 엮어가는 풍경을요.
답글쓰기
이승필 2월13일 오후 1:57
나도 그 시인처럼 살고 싶은 꿈을 잠깐씩 꾸곤 한답니다.
답글쓰기
조동성 2월13일 오전 10:28
저는 ‘하우게’ 시인의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요. 초겨울에 추위에 약한 화분은 안으로 들여놓았는데 영하에도 강한 노란색 낮달맞이와 방풍과 쪽파는 마당에 두었거든요. 그래도 사람은 난방이 되는 방에서도 춥다고 하는데 마당 화분이 안 된 거예요. 은박지 돗자리로 푹 덮어놓았어요. 얼어 죽었나 어제 열어보았더니 새파란 잎이 보이는데 얼마나 반가운지요. 하우게 시인은 정원사이기에 식물 사랑이 더 대단하겠지요.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시인은 어떤 사물과도 대화할 수 있으니 외롭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올겨울은 유난히 추워서그런지 더 빨리 지나간 듯합니다. 이 선생님의 시는 춥지 않았겠지요?
답글쓰기
이승필 2월13일 오전 10:42
오래 격조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는데 말이죠. 늘 궁금했지만 한참 보이지 않으면 '또 아픈가 보다' 그렇게 념기고 안심하게 되는 게 나이 먹은 이의 습관적, 소극적인 생활 철학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은 분이니 제 차지가 되길바라기도 그렇고요.눈이 많이 온 겨울도 저 끝이 보이지 않나요? 시는 추울수록 '쫄깃'해진다는 게 저 나름의 소회이지요. 고마워요.
답글쓰기
이영란 2월13일 오전 10:16
올해는 눈이 정말 자주 내려서 시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될 것 같네요. 눈 내린 날 다시한번 이 시를 읽어보려고 해요. 정원사와 시인,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무를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이 따스하게 전해지는 시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답글쓰기
이승필 2월13일 오후 6:52
올해 눈이 많이 내린 덕에 올라브 하우게의 시와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문득 간절해집니다. 옛적 마당이 넓은 집에 지금도 살고 있다면 어린나무 위의 눈을 털어주고 싶어질 거라고요. 레드님도 그럴텐데...*
답글쓰기
윤준호 2월13일 오전 9:17
그냥 가슴이 훈훈하게 따뜻한 시인님의 마음이 전해옵니다...며칠 후면 설명절인데 건강하시고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저는 임진각이라도 다녀와야 할것 같습니다,,,항상 명절이 다가오면 저는 몸도 마음도 추워집니다..남한 땅에는 친척이라곤 한사람도 없다보니 늘상 그렇습니다...대구지방은 날씨가 춥습니다,,건강하십시요..멀리 대구에서 윤준호 드림
답글쓰기
이승필 2월13일 오후 6:48
가슴이 훈훈해지셨다니 그 시를 올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에 임진각에 다녀가신다고요? 북녘이 고향이면 그렇겠습니다. 조심해서 춥고 먼 길 잘 다녀가시기 바랍니다.
답글쓰기
이동호 2월13일 오전 8:53
이 아침 아름다운 시로 눈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쓰기
이승필 2월13일 오후 6:43
올해따라 눈이 잦았으니 지치실만 합니다. 위로가 되셨다니 고맙습니다.
답글쓰기
최고
사랑
기쁨
슬픔
응원
놀람
감사
선택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