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책과 영화가 있는 삶
[책과 영화가 있는 삶] <힐빌리의 노래>를 통해본 미국 백인 빈민층의 현실
 
도널드 트럼프 정권으로 상징되는 미국 극우 세력을 뒷받침하는 이들로 흔히 가난한 남부 백인 노동자 계층이 꼽힌다.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 힐빌리라 불리며 조롱당하는 이들이 처한 실제 상황은 어떨까.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서 힐빌리라 불리며 성장한 J.D. 밴스가 쓴 책이다. 이 책은 그의 어릴 적 기억과 성장 과정, 가족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인생 회고록이자 미국 사회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한다. 그는 현재 놀랍게도 오하이오 주립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실리콘 밸리에서 거부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어 자신의 경험담을 허심탄회하게 술회함으로써 미국 사회의 명암을 드러내 보인다.
 
                               [저자 J.D. 밴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나 그 사회 역시 엄연한 계급이 존재한다. 미국 북동부에 거주하는 주류 지배 계급은 '와스프(WASP: White Anglo Saxon Protestant, 기독교를 믿는 앵글로 색슨계의 백인)'로 불리는 반면,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노동계층은 힐빌리(Hillbilly, 산골 촌뜨기), 레드넥(Rednecks),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것은 그들에게 매우 모욕적인 이름이어서 대놓고 불렀다가는 여지없이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저자 역시 백인이기는 하나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을 타고난 까닭에 열악한 공업 지대에서 수백만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인 힐빌리로 불리며 자랐다. 그는 스스로 그 이름을 책 제목에 넣음으로써 그들의 사회상을 정확히 짚어나가고자 했다. 2016년에 출간된 이후, 이 책은 아마존 1위라는 기록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로부터 뜨겁고 지속적인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백인 노동 계층은 다시 둘로 나뉘는데 첫 번째 부류는 고지식하고 성실하며 독립적인 사람들로 저자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에 속한다. 두 번째 부류는 저자의 어머니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네 주민이 속하는 부류로 땀 흘리는 노동보다 정부가 지급하는 식료품 구매권인 푸드 스탬프에 관심이 더 많고, 남들에게는 근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스스로에게는 부당한 대우 때문에 못해 먹겠다고 합리화하며 핑계 대기 바쁜 부류다. 
 
그들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없고 그들의 조상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해 소작농과 광부 생활을 거쳤으며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아간다. 밴스는 책에서 1인칭 시점에서 겪은 가난과 가정 폭력, 마약 중독 등을 이야기하며 가정해체와 체념의 문화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줌과 함께 복지나 연방정부에 대한 백인 빈곤층의 생각과 문화적 정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쓰고, 또 미국에서 화제가 된 이유다.
 
 
저자의 고향은 켄터키주 남동부 탄광촌에 위치한, 인구 6천 명 정도의 잭슨이다. <분열하는 제국>의 저자 콜린 우다드의 분류에 의하면,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이민자의 후손들이 사는 이 지역은 '타이드 워터' '딥 사우스' 지역과 함께 '꼴통 보수의 3대 아성'으로 꼽히는 그레이터 애팔래치아 지역에 속한다. 이 동네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어린 소녀가 동네 노인에게 강간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재판을 앞둔 어느 날, 그 노인은 등에 총알 16발을 맞은 채 호숫가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사건을 적당히 덮어버렸다. 신문엔 '폭행치사 추정'이란 단신이 실리는 것으로 끝났다. 가난과 무기력, 그리고 약에 찌든 이들이 모인 힐빌리의 세계란 무시무시한 폭력과 그칠 줄 모르는 분노, 끔찍한 보복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그런 세계다. 이런 힐빌리의 세계를 외부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진보 지식집단은 2012년 힐빌리가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비해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에 시달린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밴스는 "그 보고서가 유일하게 증명해낸 사실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근로시간을 부풀려서 말한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힐빌리는 일하지 않는다. 옆집 여자아이를 임신시킨 비상사태 때는 어쩔 수 없이 일하는데 그마저도 약에 취하거나 1시간에 30분은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일한다. 그러다 잘리면 회사가 갑갑해서 때려치웠다고 말한다. 이후 새 일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으면서 "오바마가 탄광을 폐쇄했기 때문이라는 둥,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죄다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댄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힐빌리의 모든 주장을 일종의 '인지 부조화'이자 '문화적 기만행위'라고 본다. 손발을 까딱하기 싫으니 자기 귀에다 대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쏟아붓는다는 얘기다.
 
 
그러니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자면 저자 또한 "통계상 교도소에 들어가 있거나 네 번째 사생아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아빠가 떠난 뒤 엄마는 약에 찌들어 살면서 쉴 새 없이 남자들을 갈아치웠고, 젖병에다 콜라를 채워 먹이거나 마약 검사를 피하기 위해 아들 소변을 받아다 소변 검사에 대신 내는가 하면 사소한 다툼 끝에 10살도 안 된 아이를 차와 총으로 위협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하늘이 내린 새 인생을 살게 된 건 그나마 '할보‘ '할모'라고 불렀던 외할아버지 짐 밴스와 외할머니 보니 블랜턴 덕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쉽지 않다. 마음먹은 대로 지키는 것은 더욱 힘들다. 밴스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잘 되었어도 순간순간 과거에 가졌던 회의적 생각이나 익숙하게 보아온 힐빌리의 생활습관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과거의 장애물을 극복해내는 자신을 축하하기보다는 다음 장애물에 다시 넘어지지 않을까 늘 걱정했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벽장 속 괴물' 또한 늘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그 괴물이란,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를 격한 분노나 폭력 같은 것들이다. 그 뒤엔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는 우리 집안 사람들의 문제가 대를 거쳐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로 인한 격렬한 자괴감까지 몰려든다고.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외할머니와 어린 밴스]
 
빌 게이츠가 이 책을 추천하고 <다빈치 코드>의 론 하워드 감독이 영화화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짐작되었다. 우리나라 소설가 김훈도 "이 책은 가난의 한복판에서 희망을 찾아낸 이야기"라며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하니 제임스 밴스의 노력과 선택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도 가난이라는 말을 제외하곤 생각할 수도 없었던 지난한 시절이 있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이 방패라도 되듯 비슷비슷한 현실을 버겁게 이고 지던 지난날, 우리의 목표는 오직 경제를 살리는 길이었으며 '잘 먹고 잘살기'만을 위해 개미처럼 일했던 시간이었다. 그때 우리는 밖에 나가 무엇 하나라도 들고 들어와야 할 책임과 의무로 살았지만 결코 가난을 죄악시하거나 가난에 그대로 무너져 살지 않았다는 것이 오늘을 만들 수 있었던 가능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빈곤은 물론 상대적인 개념인 만큼 자기 만족도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질 순 있지만 이때 무엇보다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은 체념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통해 본 힐빌리들의 삶은 희망보다는 체념으로 일관되었고 스스로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 현실 안주가 더 그들 자신을 괴롭히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빈곤은 말처럼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손에 쥔 것이 너무 없어도 좌절하고 무릎 꿇게 되는 것이 가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을 함부로 지탄할 생각은 없다. 저자 역시 현재에 자신의 신분이 달라졌다고 그들을 매도하려는 의도가 아닌 만큼 마음이 무거운 채로 책을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이 책을 통해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건 변혁과 변화다.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그 상황에 머무른다는 것은 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현실을 깨닫는 자각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저자의 경우처럼 주변의 도움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 저자의 진심이 느껴져 다행스러웠다.
 
그들은 현재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이 살아온 현실이 과연 그들이 원하는 만큼 변화되었는지, 그들의 보이지 않는 힘을 미국 현 정부가 얼마큼 포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또 저자가 걸어가야 할 길도 제2의 변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무조건 과거를 외면하려는 노력보다 어느 정도 감싸 안고 가는 태도가 그의 미래를 위해 희망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칼럼인 만큼 내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미국의 현실을 걱정하고 싶어지는 오늘이다. 모든 계층은 지배하지 않고 공존할 때 평화로워진다는 사실을 그들의 지도자 도널드 트럼프도 알까.                
 

<칼럼니스트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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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영란
서울 출생으로 가톨릭대학교 가정관리학과(문헌정보학 복수전공)를 졸업했으며, (주)평화신문 신문편집국 교열부 근무, 잡지사/출판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월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2000),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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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김상연 3월12일 오전 11:53
저자의 어두운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합니다.
싸움 중에서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운 법인데 말입니다. 조부모님의 사랑이 아니었어도 오늘날 그의 모습이 가능했겠는가... 인간은 무엇을 통해서든지 한 줄기 햇빛 같은, 한 방울 생명수 같은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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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3월14일 오후 6:28
굉장한 의지력과 사랑을 가슴에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보여요. 사랑을 받기만 하고 가슴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비뚤어지기만 하고 아마 성공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건 지금도 지속적으로 그 노력을 하지 않으면 다시 그 길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더군요. 자기 안에 내재된 속성이 마약에 찌들어 산 어머니와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본데 참 안타까웠어요. 성공해도 그 기억을 떨칠 수 없다는 게 일평생 그를 얼마나 힘들게 할까 싶더군요.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라 권하고 싶었는데 피곤한 내용이었는지 시니어님들의 반응은 그다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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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3월12일 오전 10:52
어떤 환경에서도 탁월한 노력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은 노오력을 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난을 극복한 세대로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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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3월14일 오후 6:22
ㅎㅎ 그러게요. 요즘 아이들은 노력을 해서 얼만큼 잘 살아지느냐고 반문한다지만 노력해야죠. 그것도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력없이 한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인생이 아니라는 걸 적어도 그 삶을 살아본 사람들은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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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3월12일 오전 10:49
우리나라도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던 시절이 있었지요. 1960년에 비해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350배가
늘었으니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모든 계층이 지배하지 않고 공존할 때 평화로워진다"는 말은 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의식
주는 해결해 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국가의 또 하나의 책무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는
것이라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과 차별을 어느 선까지는 허용해야 됩니다. 차별과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는 발전을 이루기가 어려울겁니다. 보편적 복지는 경쟁과 차별을 허용하지 않아서 국가발전에 독이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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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3월14일 오후 6:17
경쟁과 차별이 없는 세계는 공산주의지요. 모두 똑같이 할당되는 배급으로 평등해지는 사회니까요.ㅎㅎ 그런데 아직도 하루에 한끼로 연명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히지요? 상위 5% 계층이 사는 아파트엔 상표도 뜯지 않은 수입운동화가 지천으로 쓰레기통에 나온다는데 말이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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