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마음으로 읽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 뻥의 나라에서 / 우대식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초등학교 3학년 막내와 돈키호테를 읽는 밤
11월 바람은 창을 두드리고
키득키득 책을 읽던 놈이
불현듯 묻는다
'아빠 이거 다 뻥이지요'
그와 깊은 가을로 여행하는 중이다
뻥의 마을에서 서성이다가
어린 그와 목로주점에 들어
설탕을 듬뿍 탄 와인을 한 잔 시켜주고 싶은 것이다
독한 술 한 잔을 단숨에 마시면
창을 꼬나들고 달리는 늙은 기사도 만날 것이다
도무지 세상에는 없는
공주들과 긴 늦잠을 자고
풍차 아래서 휘파람을 불고 싶은 것이다
뻥이 없으면 이 세상은 도무지 허무하여
살 수 없음을 아이가 불현듯 깨닫기를
중세의 성당에 앉아 기도하고픈 것이다
 
이 시는 내가 꽤 오래전 마음에 둔 시다. 바람이 창을 두드리는 깊은 겨울밤, 막내아들과 돈키호테를 읽는 장면이 동기부여가 된다. 아이가 불현듯 묻는 "아빠 이거 다 뻥이지요"라는 말에 아빠는 엉뚱하게도 상상의 나라를 여행한다. 가을이 한창인 뻥의 나라. 머리로만 그려온 그곳 어느 목로주점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앉는다. 아이는 아직 어리니 설탕을 듬뿍 탄 와인을 시켜주고 싶은 아빠는 아이와 함께 동화 속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런데 아뿔싸! 눈앞에 상상으로만 그리던 돈키호테, 늙은 기사가 창을 겨누며 다가온 것이다. 부자(父子)는 '뻥'으로 중세 어느 한 도시에 가 있다. 천국에서나 볼까 말까 한 공주들과 늦잠을 늘어지게 잔 뒤, 풍차 아래서 가슴이 후련하도록 휘파람을 한 번쯤 분다면 이 세상 모든 뻥이 사라질까. 
 
'뻥'이란 무언가가 터지거나 뚫릴 때, 무언가를 강하게 찰 때 나오는 소리를 표현한 말로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렇지만 거짓말이 없는 세상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가 없다. 시시콜콜 따져가며 참(眞)과 거짓(僞)만 따지려 들 순 없잖은가. 아버지는 아이에게 그나마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어 아니, 더러 허풍이라도 떨어야만 비로소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일러주고 싶어 고민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중세의 성당에 앉아 기도하고픈' 심정이 된다.    
 
우대식 시인은 보통 시를 쓸 때 단정한 어법 속에 활발한 상상력을 전개하면서 존재의 심연을 서늘할 만큼 예리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진정한 고향이나 집은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현실적 공간은 진실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방랑은 필연적이 돼버렸다. 따라서 그 성향은 사람들의 방랑이 추구하는 자유의 정신과 상응한다고 보인다. 한층 더 결이 고운 언어들을 시에 담아내고 실험과 전위라는 미명 아래 소통 불가능한 언어들이 예사로 확산되고 있는 요즘, 그는 그런 시 정신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뻥의 나라에서'라는 시의 제목 자체가 요즘 우리가 사는 삶의 현주소와 일치 한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어디서 어디까지 그리고 누구의 말과 누구의 행동이 '뻥'이 아닌가를 가려내기 힘든 사리(事理)의 비애가 자고 나면 불어나는 오늘이다. 참으로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오차 없이 가려낼 수 있는 이 시대의 혜안(慧眼)을 어디서 찾을까? 
        

<칼럼니스트 이승필>

추천하기9
  • 페이스북 공유 트윗터 공유 Google Plus 공유
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승필
춘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 졸업, 중고등부 영어교사 재직,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으로 등단(1988)하였다. 문학종합지 <인간과 문학> 신인상으로 수필 등단(2017) 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자문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며, 유어스테이지와는 2007년 부터 인연을 맺고 활동중이다.
Copyright ⓒ 시니어파트너즈 & Yourstage.com 저작권은 시니어파트너즈에게 있습니다.
나도 한마디
윤준호 3월14일 오전 7:55
어제는 대학병원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오후시간까지 진료 예약시간에 맞춰 도마위에 얹혀진 생선처럼 파닥거리다 돌아왔습니다..세상을 굳이 더 살아야 할 의무같은 것은 없어도 아직은 남은 시간 추하지 않게 살려고 안깐힘을 쓰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딱해보인 날입니다,,위에 서술하신 시인처럼 "뻥"으로 시작해서 뻥으로 끝나는 세상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아직은 세상이 살만한것은 ,평생을 살면서 마음대로 "뻥" 한번 쳐보지 못하고 진솔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 같습니다..건강하시지요..환절기 더욱 건강에 유의하셨으면 합니다...멀리 대구에서 윤준호 드림
답글쓰기
이승필 3월14일 오전 10:58
윤준호님. 연배가 다른 저에게 병원 얘기. 치아 얘기하시면 저는 어떤 마음일까요? 그리고 옛날 같으면 '세상을 굳이 더 살아야 할 의무같은 것', 그런 투와 식의 말은 천하 불효막심한 사람이나 할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우리가 백번 천번을 죽는다고 ' 뻥'이야 꿈에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안 그런가요? 우린 진실하다는 자부심 내지 자긍심으로 생이라는 절벽의 넘으려 땀과 눈물을 흘리지 않나요? 상처뿐이라도 아픔을 딛고 몸에서 사라진 다리로 빙벽을 뛰어내리는 패럴림픽 선수들을 좀 보시라고 권해요. 늘 창조주 우리 하느님의 현존을 믿기에.
답글쓰기
장현덕 3월13일 오전 10:51
이 시대의 혜안을 참으로 찾기 어려운 세상이지요. 거짓이 판치고 있는 세상, 정의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 진실을
찾기가 어려워서 상상 속에서만 진실을 찾으려 하는가 봅니다.
답글쓰기
이승필 3월14일 오전 11:19
나 한사람만이라도 진실하게 살 수 있길 밤낮으로 기구할 밖에요.
답글쓰기
신보경 3월13일 오전 9:28
시를 읽으면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뻥 투성이 세상에서도 자식에게 아름다운 인생을 보여주고 싶은 게 부모마음이 아닐까요.
답글쓰기
이승필 3월14일 오전 11:17
왜 아니겠어요. '뻥'이 많은 세상을 믿지도 말며 마음을 두지 말라' 그런 식으로 말해주고 싶었겠죠.
답글쓰기
이영란 3월13일 오전 9:23
ㅎㅎ '뻥의 나라에서'... 제목이 우선 눈길을 확 끄네요. 오래전에 본 코미디 프로에서 현대인들은 모두 너나 없이 '뻥쟁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솔직한 심정이, 그러나 모두 다 털어내지 못하고 '중세의 성당에 앉아 기도하고픈' 심정으로만 그치고 말 수밖에 없는 마음에 공감이 갑니다. 답답하지만 적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이름이지만요. 즐거운 하루이시길요!~~^^
답글쓰기
이승필 3월14일 오전 11:04
아~ '중세의 성당에' 들어가서 촛불을 켜고 간절히 마음을 아뢰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마다 확신이 든 일들은 아직 미완의 상태지만요. 아픈 손, 불편한 상황을 달래고 잊기 위해 얼마쯤 글 쓰는 거 쉬어보면 안될까. 조심스레 권해 보그 싶은데...^^*
답글쓰기
신춘몽 3월13일 오전 9:03
요즘은 지하철을 타러갔을때 좋은 글을 읽는 재미도 꽤 큰것 같습니다.
저는 "시 쓰기에는 자신이 없는데 지하철에 적혀진 글 들은 어렵지않고 친근한 내용이 많아서
때로는 전철에 오르지 않고 읽고 또 감상 하게 되요. 뻥 이란 녀석은 어쩌면 친근한 생각까지 들기도 해요. 뻥은 거짓과는 다르게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편안한 여유를 줄것 같은 그런,,,,
답글쓰기
이승필 3월14일 오전 11:14
'전철에 오르지 않고 읽고 또 감상하'신다는 신춘몽님이 바야흐로 시 열공생이 되셨군요. '뻥'은 장난으로라도 칠 게 못된다는 것도 이참에 공부하시길. 지금은 잘 모르지만 '그 여름, 남해에서'라는 제 시도 서울의 서너 군데 지하철역에 있었어요. 컴을 인색하먄 아마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참, '뻥'이란 가능한 장난으로라도 칠 게 아닌 줄 아는데요.
답글쓰기
송영섭 3월13일 오전 8:42
미소를 짓다가 아버지와 아들을 그려봤습니다. 역시 시인의 상상력은 대단합니다.
답글쓰기
이승필 3월13일 오후 5:41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시를 쓰는 이들에겐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답글쓰기
정하선 3월13일 오전 8:32
그 시 참 좋군요. 그렇지요 세상은 뻥이지요.어렸을 적에 술에 삿가리를 탄 단술을 먹고 취하기도 했었지요. 취하면 사람은 동키호테가 되지요. 좋은 시 올려 주심 감사드립니다. 행복한날 되십시요.
답글쓰기
이승필 3월13일 오후 5:39
마음에 드신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갈수록 세상이 하수상하게 돌아가니 끝이 어딜까 궁금해집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뻥'이라고 여기저기 담을 쌓고 살 수도 없는 일이고요. 다만 제 앞에 놓인 일들에만 충실할밖에요. 고맙습니다.
답글쓰기
최고
사랑
기쁨
슬픔
응원
놀람
감사
선택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