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마음으로 읽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 배음(背音) / 김종삼 전집
 
몇 그루의 소나무가
얕이한 언덕엔 
배가 다니지 않는 바다,
구름바다가 언제나 내다보였다
 
나비가 걸어오고 있었다
 
줄여야만 하는 생각들이 다가오는 대낮이 되었다.
어제의 나를 만나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골짜구니 대학(大學) 건물(建物)은
귀가 먼 늙은 석전(石殿)은
언제 보아도 말이 없었다. 
 
어느 위치엔 
누가 그린 지 모를
풍경(風景)의 배음(背音)이 있으므로,
나는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를 가진 아이와
손 쥐고 가고 있었다.
 
눈에 닿는 모든 풍경 하나하나가 배경 음악이라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시 한 편이 그 사실을 깨우쳐 준다. 풍경들이 배경 음악이 되면서 현실을 초월한 어떤 상황들을 연출해 보여주는 시. 다시 말하면 작은 언덕 뒤로 보이는 바다는 헛것이다. 실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 편의 무성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시인은 쉼표 하나를 찍고 '구름바다'라고 써본다. 순간 머리에 '나비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렇듯 수시로 바뀌면서 생기는 갖가지 영상들로 인해 그는 원하는 만큼 말을 줄일 수도 없으며 자신을 만나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된다. 대낮에 본 허상들이 어른거려 그가 '줄여야'할 생각들은 시인의 기억의 일관성을 자주 끊어 놓는다. 때문에 그의 내면은 '어제의 나'를 만날 수 없는 날들이 연속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풍경 뒤에 펼쳐진 배경 음악으로만 지난날의 모든 것들을 듣는다. '골짜구니 대학 건물'도 '늙은 석전(石殿)'도 지난날엔 진리와 박애의 상징인 상아탑이었겠으나 이젠 귀가 먹어버려 잠잠할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시와 음악이라는 두 세계의 공명을 통해 아름다움은 포기할 수 없는 절대 가치라고 주장한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를 가진 아이'라는 식으로 서슴지 않고 말한다.
 
'손 쥐고 가고 있었다'는 표현에서 우리는 안다. 그의 모든 시에 아이가 자주 등장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전후(戰後)의 폐허 시절을 배경 삼은 시인의 예술 옹호가 숙연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시의 말미에 '손잡고' 가는 장면을 확대해 볼 때 더할 수 없이 애틋하다. 우리는 막상 세상의 그 많은 '배음'들을 잊거나 아주 모르고 사는 건 아닌지. 바람개비를 돌리며 꽃 언덕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 세상의 배음이 되는 날을 꿈꾸어 본다.           
    

<칼럼니스트 이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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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승필
춘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 졸업, 중고등부 영어교사 재직,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으로 등단(1988)하였다. 문학종합지 <인간과 문학> 신인상으로 수필 등단(2017) 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자문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며, 유어스테이지와는 2007년 부터 인연을 맺고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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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송식 4월10일 오후 5:31
시인들의 무한한 표현을 우리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헤아리겠어요, 우리들도 글쓴다고는 하나 시인들의 시상이야말로 절로 머리를 숙연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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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10일 오후 7:14
글의 종류가 다양하지요. 애써 시인들의 표현을 헤아릴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됩니다. 각자의 입장과 자리마다에서 쓰고 감상하면 될 뿐, 시인의 시상에 숙연해지신다니 황당해서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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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4월10일 오후 12:11
때론 봄이 사납기도 하지만 오늘은 시 한편으로 솜털 보송한 맑은 세상이 펼쳐집니다. 그런 선물 안겨주심에 고맙습니다. 봄날의 기운을 안부와 함께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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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10일 오후 7:07
한참 뜨막했지요. 여행이라도? 저도 같은 심정으로 안부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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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4월10일 오전 10:16
".....풍경의 배음과 .... 손쉬고 가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참으로 시인의 안목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말을 새삼 되새기게 합니다.
선생님은 시인이라서 아마도 이런 시를 읽으시면 잔잔한 미소를 지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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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10일 오전 11:43
배경음악이 아니라면 이제부터 사라져갈 모든 풍경의 아름다움을 어찌 소화해야 할지 눈앞이 아뜩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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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4월10일 오전 10:09
비우듯 담담한 글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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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10일 오전 11:41
참 좋으셨다니 더 무슨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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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4월10일 오전 9:34
시도 좋지만 선생님의 글은 늘 한 호흡을 쉬어가며 읽게 됩니다. 시를 잊고 살아 온 저희를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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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10일 오전 11:40
'한 호흡 쉬어 가시게' 해 드렸다니 시를 쓰고 생각하고 품고 사는 보람이 일순 반짝이는군요.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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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호 4월10일 오전 8:16
까마득하게 먼 옛날 이야기처럼.. 결코 그렇게 먼 날도 아닌데 ...하루하루 바쁘다는 핑게로 놓아버리고 살았던 지난 시절을 생각나게 만드는 시인의 숨은 노고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또 그러한 마음을 애써 다독거려주고 계시는 선생님의 여리고 애틋한 마음도 보이는 것 같아서 오늘 아침은 행복하게 맞이했습니다,,,언제나 누구나,,나이드신 어르신들을 향해서 식상하게 들리는 인삿말이 될지라도..저는 다시 하렵니다,,항상 건강하시고 하루하루 아름답고 행복한 나날 되시라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멀리 대구에서 ..윤준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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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10일 오전 11:38
어쩐지 4월은 봄과 꽃과 시인만 있는 시간으로 느껴지네요. 꽃이 피어 있는 동안 충분히 슬픔을 만끽하고, 또 떠나고나면 다시 새 감정들로 가슴에 갈아 넣고... 느닷없이 쏟아져내린 이곳의 며칠 전 저녁눈은 또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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