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중국 역사기행
[중국 역사기행] 계림산수 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 6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20여 분 만에 금룡교 선착장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반납한 후 다시 차를 몰고 십리화랑(十里畵廊)으로 갔다. 십리화랑은 십리에 걸쳐서 경치가 산수화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작년에 장가계에 갔었을 때도 십리화랑에 들렸었는데, 양삭에도 십리화랑이 있었다. 
 
양삭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3km 쯤 가자 십리화랑의 시작을 알리는 큰문이 나왔다. 십리화랑은 여기서부터 약 십 리에 걸쳐서 호접천(나비 동굴), 대용수, 월량산, 용담고진, 금수동굴 등 명승고적이 쭉 연결되어 있었다. 각 명승지 마다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해서 다른 곳은 그냥 밖에서만 보고 지나가고 인상유삼저 공연에 나오는 유삼저의 고택이 있고, 수령 1,500년 된 대용수가 있다는 대용수 공원에만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장가계의 십리화랑만큼 위용이 있지는 않았지만 카르스트 지형의 동그란 산들이 양옆으로 쭉 늘어서 있는 십리화랑은 산책길로 그만이었다. 군데군데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에서는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다만 보행 거리가 아니라 차들도 많이 다녀서 조금 위험하기도 했고 먼지도 많이 난다는 것이 흠이었다. 
 
대문을 통과하여 1km쯤 걸어가자 호접천(蝴蝶泉)이 나왔다. 호접천은 나비 모양의 종유석이 있고 그 아래에 물이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호접천에 있는 동굴이 볼만하다고 했으나 다시 입장표를 사서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지나치면서 보기로만 했다. 커다란 바위산 중간에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듯이 커다란 나비 형상의 조형물이 달려 있었다.
 
[십리화랑 입구]
 
[십리화랑 표지판]
 
[호접천]
 
호접천을 지나서 다시 1km 여를 더 가니 대용수(大榕樹) 공원이 나왔다. 우리는 표를 사서 대용수 공원으로 들어갔다. 십리화랑의 대용수는 최소한 양삭현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고 하니 그 수령이 물경 1,500여 년이나 된다. 높이 17m, 최대 둘레 7.05m로 역시 내가 본 용수(榕樹) 중 가장 크고 아름다웠다. 가지가 길어져서 땅에 닿으면 지주근(支柱根)이 되어 성장하는 특징이 있다. 마치 받침대처럼 보이는 것들은 받침대가 아니라 대용수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와 땅으로 들어가서 자란 지주근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얀(banyan) 나무(뱅골보리수)라고 부르고 잎, 줄기 껍질, 나무진액은 열을 내려주고 기관지에 좋은 약재로 사용된다. 석가가 득도한 나무도 바로 이 용수(보리수)이고, 우리가 어렸을 때 본 타잔 영화에서 타잔이 나무 사이를 옮기며 잡고 다녔던 것도 바로 이 나무이다. 중국 사람들은 이 용수를 특별하게 여겨서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다.
 
대용수 나무를 두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두 바퀴 돌려고 했으나 아내가 미신이라며 눈총을 주는 바람에 앞에서 사진만 찍고 공원의 다른 곳으로 갔다. 공원 안쪽에는 대나무 배를 타고 건너가는 작은 실개천이 있었는데 건너편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계림의 또 다른 명물 봉미죽(鳳尾竹) 앞에서 이 지역 소수민족의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는 소녀들이 보였다.  
 
봉미죽은 봉황의 꼬리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대나무로 한 뿌리에서 수많은 줄기가 벋어나는 계림 특유의 대나무이다. 대나무 뗏목은 30년 이상이 된 봉미죽을 이용해서 만든다고 한다. 삼국지의 제갈량이 이강을 건널 때 만들었던 대목 또한 봉미죽이었을 것이다.
 
봉미죽 옆에는 인상유삼저에 나오는 여주인공 유삼저가 노래 대결을 했다는 대가대(對歌臺)가 있었고, 그 뒤로 유삼저가 살았다는 옛집이 있었다. 유삼저는 장족의 전설에 나오는 유씨 집안의 셋째 딸로 노래 솜씨가 좋았다고 하며 지주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가난한 소몰이꾼과 사랑을 이루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노래를 잘하는 유삼저가 지주들에게 농락을 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대용수가 사람으로 변해서 그들을 물리쳐 주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대용수 공원의 향취에 취해있다 보니 어느새 양삭의 산하에 황혼이 깃든다. 월량산(月亮山)도 볼만하다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아쉽게도 멀리서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우리는 대용수 공원을 나와서 시지에에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조금 쉰 다음에 각종 네온사인이 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시지에에 가서 쇼핑도 하고, 이것저것 군것질도 하면서 놀았다. 생각 같아서는 밤이 깊도록 시지에를 돌아다니고 싶었으나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할 수 없이 호텔로 다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수령 1,500년 된 대용수]
 
[유삼저 고택]
 
[봉미죽 앞에서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는 소녀들]
 
[대용수 공원에서 바라본 월량산]
 
[십리화랑 끝에 있는 용담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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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장종학 교수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변과학기술대학교 상경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2008년부터 중국 서안에 있는 국립 장안대학교 재무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금융 연구소 및 한국어교육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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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박옥희 6월15일 오후 3:41
맞아요, 장가계에서도 십리화랑이 있었어요. 그 곳의 바위들을 보고 너무나 멋진 풍경에 입이 딱 벌어졌어요...ㅋ 봉미죽 대나무는 키가 엄청나게 자라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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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6월8일 오후 10:23
ㅎㅎㅎㅎ
첫 사진만 보고 무슨 나비가 저리도 큰가 놀랬더랬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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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6월8일 오후 12:48
우와 너무 멋집니다. 월량산이 너무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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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6월8일 오전 10:11
과연 계림은 관광자원의 보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보기는 어려워서 장교수님의 글과 사진으로
대치해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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