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책과 영화가 있는 삶
[책과 영화가 있는 삶] 말을 엮어 인생을 건너다
 
사전은 무겁고 두껍다. 비슷비슷한 자음과 모음 순으로 수많은 낱말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책이다.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디가 끝인지 알 수도 없는 단어들 속에서 표제어로 쓸 단어를 추려내고 각 단어의 해설을 쓰고 용례를 적고 그 용례를 쓰기 위해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예를 직접 수집해야 한다. 이는 드넓은 언어의 망망대해에서 하루하루 꾸준히 엮어나가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 삶의 모습을 닮았다. 매일매일 배를 엮듯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끊임없이 지속해나가야 한다.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2013)>은 제목 그대로 사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러나 사전의 일반적인 의미처럼 부담스럽고 무겁고 고리타분한 전개는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 유쾌하고 예쁜 사랑이 있고 감동이 느껴지는 영화다. 여기서 사전은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도구이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그 많은 말과 사람과 그들과의 관계가 함께 엮어져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건너는 배가 되어준다.
 
 
낡은 옛날 건물에 자리 잡은 출판사의 뒷방 부서. 실용서와 에세이, 소설 부서에 밀려 '오타쿠' 부서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퇴물 취급을 받는 사전 편찬부다. 정년퇴임을 앞둔 아라키로 인해 공석이 생기고 그 자리에 마지메(마츠다 류헤이)라는 직원이 들어온다. 말도 잘 못하고 분위기도 음울하고 어찌 보면 사회 부적응자 같기도 한 어리숙한 청년이다. 장점이라고는 그저 성실한 것뿐. 원래 사전 편찬부에 있던 마사시(오다기리 조)는 그런 그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마사시는 말 그대로 발랄하고 자신감 넘치는 '요즘 청년'이다.
 
사전 편찬부는 새 사전 편찬을 준비하고 있다. 사전의 이름은 '대도해(大渡海)'. 언어의 바다를 건넌다는 뜻이다. 편집 방향은 '오늘을 사는 사전'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현재의 삶을 담은 사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 편찬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권을 만드는 데 7년, 10년 혹은 20년 이상 긴 시간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이미 전자사전이 나온 세상에서 아날로그사전을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마지메는 곧 사전에 흥미를 느끼고 그 일에 빠져든다. 그 속에서 마지메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알게 되고,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도무지 통할 것 같지 않던 마사시와도 친구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드디어 '대도해'의 출간일이 잡혔다. 많은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사전의 마지막 확인 작업을 해나가던 출판 편집부는 누락된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전의 출간일이 잡혔으나 이제까지 해온 작업을 다시 이전으로 돌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당신, '오른쪽'이란 단어를 어떻게 설명하겠어?" '오른쪽'이라는 단어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무수한 밤을 꼬박 새우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 일을 오래 하면 손가락의 지문이 없어진다며 '자신의 손끝이 말에 닿아서 세상과 닿는 기쁨을 느끼는 게 사전편찬자의 묘미'라고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온몸의 신경이 한곳으로 몰리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면 과장일까.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이자 그들만의 제조 문화인 '모노 즈쿠리'를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고 철저한 태도를 가지는 그들의 자세에서 우리는 더할 수 없는 프로 정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점은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그들의 장점이다. '설마'와 '빨리빨리'로 일관하며 자신의 일을 스스로 비하하는 우리에 비해 그들은 참으로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대한다. '오른쪽'이라는 단어 앞에서 모두 머리를 모으고 고민하는 모습을 우리는 언제쯤에나 그 가치를 인정하며 따라하게 될는지. 너무나 익숙해서 따로 생각해볼 필요조차 없었던 단어들을 설명해내야 한다는 건 퍽 난감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해답이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회와 조금은 동떨어져 있는 듯 보였던 마지메. 그는 타인과의 의사소통에 문제를 겪고 어떻게 사람과 친해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마치 아이가 말을 처음 배우듯 단어들을 하나하나 수집해 나가고, 그를 통해 삶으로 한 발 더 가깝게 들어가게 됐으니 마지메가 하숙집 할머니의 손녀딸인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를 보고 사랑에 빠지자 편집부의 감수자는 마지메에게 '사랑'이라는 단어의 해설을 쓰도록 맡긴다. 열렬한 사랑에 빠진 그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전을 만들고자 했고, 그렇게 한 권의 사전은 곧 그들의 삶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사랑을 만나고 누군가의 탄생을 맞이했으며 또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기도 한다. 인간사를 아우르며 비로소 사전은 완성된다. 사전이 그들의 삶이었듯, 삶은 다시 한 권의 사전이 된다. 나의 하루하루가 모여 나만의 '대도해'가 되는 것이다. 끝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내 안의 것을 최대한 표현하려 애쓰고, 매끄러운 종이를 세심하게 잘 골라야 하며, 각 단어 모두를 관심 있게 들여다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10대의 말을 취합하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여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시대를 거슬러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의 삶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진지함이야말로 그들의 열정일 것이다. 말이란 인간의 삶 자체다.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는 모두 '언어'를 기본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말은 사람의 삶 속에서 태어나고 소멸한다. 때문에 사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의 삶 속으로 치열하게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은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고서도 한참 훗날에야 받아볼 수 있다. 20년이 걸릴지, 3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삶의 끝 날까지도 작업은 계속된다. 그러나 내가 평생 만든 사전이 그저 쓸모없는 종이 더미로 남지는 않아야 하기에 우리는 오늘을 또 열심히 살아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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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영란
서울 출생으로 가톨릭대학교 가정관리학과(문헌정보학 복수전공)를 졸업했으며, (주)평화신문 신문편집국 교열부 근무, 잡지사/출판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월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2000),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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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박영백 22시간 전
무식한 노인이,한마디 하겠음니다!
참,글을 맵씨있게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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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백 22시간 전
무식한 노인이,한마디 하겠음니다!
참,글을 맵씨있게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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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6월16일 오전 9:55
한 권의 사전이 그들의 삶이 되었군요. 영화도 찜해놓고 언제 볼지 싶으니 책은 더 더욱...돋보기를 쓰고도 눈물이 나고 아파서 책은 자꾸 피하게 되네요. 심야식당 주인 아저씨도 출연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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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6월14일 오후 7:14
ㅠ ㅠ 책 읽기를 돌 같이 하기에 아주 많이 부끄럽습니다. 근대요 변명이 아니고요,아무래도 책 못읽는 병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제 자신이 끔찍해요. 책을 읽어보자 하고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펴고 앉으면 한장을 읽지 못하고 기권한답니다. ㅠ ㅠ 그래서 이렇게 무식한 아줌마로 살아가는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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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6월15일 오전 6:00
음... 습관이지요.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걸 못하거든요? 습관이 안되어 그렇습니다. 어려서부터 앉아있는 것보단 후딱 일어나 뛰기부터 했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잠부터 쏟아지는 거죠. 선생님의 경우도 책읽는 습관이 안잡혀있어서 그런 거지, 절대 병이 아니예요. 생활습관은 사람에 따라 아주 다르고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도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고민이 생기면 책에서 그 해답을 구하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요. 그런 차이예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많은 분들과 이야기하시면서 영화 소재도 찾고 줄거리도 이어나가시잖아요? '무식한 아줌마'는 그런 거 못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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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6월14일 오전 11:11
'오늘을 사는 사전'이라니 몇 번이라도 관심있게 다시 읽어야 하겠어요. 일본이 부러워지는 관심사 중의 하나가 있다면, 사전의 개정판을 빈번히 출간하는 일이죠. 우리나라는 도서관에서 찾아봐도 좀처럼 최신 개정판을 볼 수 없거든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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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6월15일 오전 5:53
네, 올해에도 개정판이 또 나왔다고 들은 것 같은데 대체 그런 열정은 왜 따라하기를 못하는지 말이죠. 물론 개정판 한번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렇게 최선을 쏟는 사전을 대하면 남다른 감동이 느껴질 것 같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일한사전의 설명도 꽤 성의껏 자세히 풀이돼 있는 걸로 기억되네요. 좀 답답할 정도로 진지한 그들의 모노 즈쿠리가 매력으로 발하는 순간이라는 걸 그들도 알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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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6월14일 오전 11:01
나의 하루하루가 쌓여 나만의 '대도해'가 된다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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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6월15일 오전 5:44
정 선생님의 '대도해'도 잘 완성돼가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ㅎㅎ 사실 글을 안올리셔서 느낌만으로 상상할 뿐이지만(물론 때론 그 편이 더 많은 환상(?)을 가져오기도 하고요) 댓글로 다양한 격려를 해주시는 선생님만의 절제된 열정을 또한 느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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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6월14일 오전 10:58
진진한 열정이 중요함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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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6월15일 오전 5:35
우리와는 또다른 열정이라 생각되지요. 끝까지 책임지려는 그들의 프로정신은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되는데 언제나 우리의 '대충대충'과 '빨리빨리' 의식이 없어질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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