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책과 영화가 있는 삶
[책과 영화가 있는 삶] 토리노의 말
 
허무의 밑바닥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벨라 타르 감독은 5년에 한 작품씩 기나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를 내놓는 헝가리의 거장(巨匠)이다. 나는 이제 겨우 이름을 익혔을 뿐인데 그는 이제 자신의 할 말을 다 한 듯 마지막 영화라고 선언했다. 이제 그의 나이 예순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 정말 세상에 더할 말이 없어진 걸까. 더구나 이번 영화의 주제는 '허무'다. 그의 마지막 영화이자 열 번째 장편영화인 ‘토리노의 말(A Torinoi lo, The Turin Horse, 2012 개봉)’은 무한한, 그러나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인생의 무게를 담았다.  
 
영화는 묵직한 음성의 남자가 허무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작한다. 그것은 내레이션이라기보다 읊조림으로 들렸다. 게다가 다큐멘터리 영화도 아닌데 요즘 보기 드문 흑백영화다. 
 
“1889년 1월 3일 토리노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문밖으로 나선다. 니체는 화가 나 미쳐 날뛰는 마부의 채찍질을 말리고 꿈쩍하지 않는 말에게 달려가 목에 팔을 두르더니 흐느낀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간 니체는 침대에서 꼬박 이틀을 조용히 누워 있다가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는 말을 웅얼거리고 10년간 식물인간에 가까운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대체 이 소박한 듯 거창한 영화의 도입부는 뭘 의미하는 걸까. 예상했던 것보다 대단히 심상찮은 느낌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는 질문한다. 그때 그 말과 마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어느 시골 마을, 마부(야노스 데르지)와 그의 딸(에리카 보크) 그리고 늙은 말(릭시)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남녀는 부녀지간으로 보이지만 사실 영화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러닝타임 2시간 26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부녀는 단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나는 이쯤에서 이 영화를 줄거리로 요약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센 폭풍이 한시도 쉬지 않고 불어 닥치는 황무지의 오두막.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소박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그렇게 영화는 그들이 살아가는 총 6일간의 모습을 그린다. 창조의 7일 중 6일 그리고 유에서 무로 가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거나 물을 길어오고 감자 한 알로 식사를 대신하는 이들의 모습은 초라하지만, 그 속에 인생의 보이지 않는 모든 희로애락을 담은 것 같아서 경건한 의식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6일 사이에는 작은 변주가 있다. 첫째 날엔 힘겹게라도 마차를 끌던 말이 둘째 날부터는 움직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마부가 평생 들어왔던, 나무가 좀먹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술을 빌리러 온 이웃집 남자(미할리 코모스)는 세상과 인간의 근본에 대한 비관적인 말을 늘어놓지만, 이야기의 맥락을 찾을 수 없다. 근처를 지나가던 집시들이 몰려와 부녀를 위협하며 행패를 부리고 가는 것이 이 영화가 맞는 최대 위기이자 사건이다. 결국 힘겹게 길어 올리던 우물물이 바짝 마르더니 마지막 날엔 기름 가득 든 램프에 불이 붙지 않는다.  
 
부녀는 손수레에 간단한 가재도구를 싣고 집을 떠나려 하지만 곧 돌아온다. 집안을 희미하게 비추던 불빛마저 조금씩 사그라져 암흑의 정적 속에 갇힌다. 물도 불도 없는 캄캄함 돌집에서 부녀는 평소처럼 감자 한 알씩 놓고 마주 앉는다. 대사라곤 거의 없던 아버지가 딸에게 말한다. “먹어. 먹어야 해” 그리고 생감자를 한 입 베어 문다. ‘꽈드득’하고 감자 깨무는 소리가 천둥처럼 공기의 입자들을 흩어놓는다. 마부가 카메라를 쏘아보며 영화가 끝나는데 그의 식탁에 함께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섬뜩하다.  
 
‘토리노의 말’은 압도적인 절망과 허무의 분위기에 차츰 잠식돼간다. 인간과 동물은 힘겹게 지상의 삶을 이어왔지만, 이 삶이 계속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토리노의 말’이 보여주는 절망과 허무는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 조건에 맞닿아 있어 그 뿌리가 깊다.
 
 
여기서 니체를 다시 떠올려 보면, 니체는 단순히 '삶'에 도태된 자의 탄식 같은 ‘다 부질없다’ 식의 피상적 허무를 말한 것이 아니다. 기존의 가치로 촘촘히 구축된 건물을 허물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하길 원한 만큼 품격 있는 허무를 말한다. 사실 개인의 허무는 철학적 담론으로는 해소할 수 없다. 그러나 허무가 단순히 한 개인을 무력화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 스스로 허무에 대한 이해를 통해 허무를 승화시키고자 한다면 인생의 한고비를 넘길 수 있는 허무의 긍정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치열하게 맞서 싸운 자만이 허무를 말할 자격이 있다.
 
장장 2시간 26분의 영화는 황량한 들판과 거친 바람 속에서 다소 어깨를 누르는 중압감을 느끼게도 하지만 일상에서 만나지 못한 ‘토리노의 말’만의 차별화된 형식을 통해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고 끝내는 그 무한한 감동에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그 거친 바람과 황량한 자연을 만들기 위해 무려 헬리콥터 8대를 동원했다고 한다. 그 역시 치열한 삶이다.
 
시야를 확보할 수 없을 만큼의 거친 모래바람과 생감자를 깨무는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영화에 동참한 기분이고 허무의 끝을 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인생은 운명도 허무도 아닌 섭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왠지 오늘은 허무를 생각해야 할 것만 같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허무의 끝에선 단 하나밖에 없다. 그 허무의 끝을 잡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 벨라 타르 감독의 거대한 열한 번째 영화를 기대하면서.      
 

<칼럼니스트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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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영란
서울 출생으로 가톨릭대학교 가정관리학과(문헌정보학 복수전공)를 졸업했으며, (주)평화신문 신문편집국 교열부 근무, 잡지사/출판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월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2000),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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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박영백 7월13일 오전 8:57
허무의밑바닥 에서도 지울수 없는 것
그것은 그리움! 입니다
혹시 영화 다 보시고 푸른 하늘 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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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7월9일 오후 10:33
생감자를 깨물다 밷는 사람을 보았거든요. 허무...오늘은 어렵고 무거운 영화를 다루었네요. 그래서 저는 해피앤딩을 좋아한다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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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7월9일 오후 9:17
매우 어려운 영화네요. 시야를 확보할 수 없을 만큼의 거친 바람과 생감자를 깨무는 장면이야말로 치열한 생애를 표현하는 것 같네요. 허무함을 넘어 비장한 느낌까지 드는 이 영화를 단연 수작으로 뽑은 레드님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며 어서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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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희 7월9일 오후 3:35
절망과 허무...흑백영화...니체...결코 밝은 얘기는 아닐 듯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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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7월9일 오전 11:15
이 영화평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영란씨만큼 이해를 했을까요? 아마도 어려울 겁니다.
김형석 교수가 "인생은 운명도 허무도 아닌 섭리"라고 한 말이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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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7월9일 오전 9:35
흑백영화에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영화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겠어요. 언젠가부터 저는 일부러 가볍고 즐거운 영화만을 골라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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