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마음으로 읽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 그 골목은 세상을 모두 둥글게 잠재운다 / 김영남 시집 <모슬포 사랑>
 
깎아주고 덤이 있는 골목.
그 골목은 좌판 사과가 둥글고,
리어카의 손잡이가 둥글고,
그리고 그 흥정이 둥그네.
거기에서 소리를 지르면
순이, 철이, 용호네 아줌마들이
골목에서 둥글게 모여드네.
구불구불 세상을 돌아서 골목이
하늘로 올라가고, 밤이 되면
둥근 동산을 연탄처럼 굴러서
달이 떠오르네.
그러나 보게나!
둥글지 못해 한 동네를 이룰 수 없는 것들,
둥근 것을 깔아뭉개고 뻣뻣하게 서 있는 저 아파트들.
이곳에선 둥글지 않으면 모두가 낯설어한다네.
나도 허리를 둥글게 말아 방문을 여네.
 
연일 40도 가까이 대지를 달구는 폭염 탓이라고 해야 하나. 집 밖에만 나가면 좌판 사과가 둥글고 리어카의 손잡이도, 흥정에 따라서 둥글던 골목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소리 한번 지르면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모여드는 동네 사람들로 인해 둥글게 모여 하늘로 올라가는 골목들.
 
구불구불 세상을 돌고 돌아서 골목이 하늘로 올라가는 밤이면, 달이 동산 하나를 연탄처럼 굴러서 떠오르는 걸 볼 수 있었던 시인의 서민적 의식이 돋보인다. 그런 동네에 살던 내 어린 시절 또한 손때 묻은 책상 서랍에서 꿈을 꾸고 있다.
 
둥근 동산을 씩씩하게 구를 힘이 있었던 달이라니! 그때 그 신비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견디지 못할 슬픔이며 오류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겐 아파트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불만 같은 게 있어 보인다. '둥글지 못해 한 동네를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절규다. 밖으로 표출하지 않은 대신, 상흔을 안에서 삭이고 있다.
 
그러나 둥근 것은 둥근 것이다. '깎아주고 덤이 있는 골목'이라야 사람들에겐 낯설지 않다. 시인이 마치 허리를 둥글게 말아 낮은 방문을 열듯이. 골목은 모든 것을 둥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칼럼니스트 이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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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승필
춘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 졸업, 중고등부 영어교사 재직,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으로 등단(1988)하였다. 문학종합지 <인간과 문학> 신인상으로 수필 등단(2017) 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자문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며, 유어스테이지와는 2007년 부터 인연을 맺고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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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윤준호 8월1일 오전 7:27
선생님께서 선택해 주신 작가의 이름이 낯설지만,,요즘 서점에 가면 한쪽 모서리 서가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문학서적 코너를 발견하게 됩니다,,내 마음에 먼지가 쌓인것처럼 얼마나 속상하던지..괜이 서점주인에게 목소리 높여 서가에 먼지나 털어내고 장사하라고 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시골풍경하곤 다소 다르지만,,서울 달동네 풍경을 둥그런 마음으로 펴 놓은것 같아서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좋은 글 같습니다..선생님의 넓은 식견과 글을 선택하시는 안목에 다시 한번 존경하는 마음이 듭니다,,무덥다는 말도 식상해서 하지 않고,,그냥 선생님의 건강만 물색없는 그리움으로 빌어봅니다,,멀리 대구에서 윤준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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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8월1일 오전 10:19
김영남 시인이 좀 낯설군요. 유명하기가 꽤 널리 알려진 걸로 압니다만. 무덥다는 말도 윤쥰호님 말씀처럼 식상해진 지금, 8월이 왔네요. 아마도 열흘 남짓이면 말복을 넘어 견딜 만큼 사그러들기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움에 물색없는 것도 있나요? 사람 사는 일이 늘 혼자 같고 외로움 그 자체라서 그리움은 이유를 물을 것 없이 훈훈하고 값진 것이거늘. 건강에만 유의해야 할 지금이라는 사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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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7월31일 오후 6:12
어릴적 골목은 꼬마들 놀이터였는데...요즈믕ㄴ 아파트가 많아져 골목이 점점 사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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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7월31일 오후 6:39
점점 골목이 사라질수록 점점 우리네 정도 사라져간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더 각박해 보이고
'나 혼자'라는 고립감이 심해질 테니 쓸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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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7월31일 오후 4:01
수많은 골목 안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많았죠. 사람 냄새가 물씬 느껴지던 그 골목에서 인간의 역사도 이뤄졌다고 생각하니까요. 골목이 품어주던 둥근 힘 속에 사각형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공존을 선언한 셈이지만 우리들 안엔 아직도 둥근 힘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문득, 아직도 남아 있는 어느 골목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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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7월31일 오후 6:36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골목에서 골목을 돌아가며 울리던 아이 적 놀이에 취했던 음성이 저 높고 각져서 가파른 아파트로 인해 모두 사라졌지요. 문명과 발전이라는 이름과 형식으로요. 그래서 그 속에선 서로 낯설 수밖에 없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정주기를 꺼리며 살아가고 있지요.'옛날이 좋았다'는 말을 그저 하겠어요? '아~ 그리운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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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7월31일 오전 9:52
둥근 것은 아름답지요. 그런데 모난 것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니 둥근 것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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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7월31일 오후 6:29
이싱한 일도 있군요. 몇 시간 전에 댓글을 달았는데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네요. 미안하단 생각에 부지런히 키보드 앞에 앉았건만 맥이 풀린 기분이라 좀 그렇네요. 맞아요. 둥근 것은 아름다워요. 강강수월래라는 춤을 보고 있으면 그 틈에 끼고 싶어지지만 쉽게 그 유연한 물결을 끊고 들어가지지 않을 것 같아서 빙빙 둘레를 따라 돌기만 한 기억도 있어요. 모난 것은 찌르고 상처를 내지 않나요? 모쪼록 사람은 둥글게 살아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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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7월31일 오전 9:17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골목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둥글게 살아가는 힘은 골목에서 나왔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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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7월31일 오전 10:03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해가 지도록 뛰놀던 골목 안의 유년을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지 않나요? 둥근 것의 이미지라면 강강수월레라는 춤이 아닐까요. 아무도 쉽게 그 도도한 물결을 끊고 들어갈 수 없는. 요즘은 아파트로 들어가는 골목도 사실 편히 걸을 수 있지만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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