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마음으로 읽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 아내의 등 /고영민 시집 <악어>
 
아내의 등을 민다
그녀의 뒷모습, 한 페이지를
때수건으로 민다
기울게 쌓아올린 척추 마디
피사의 사탑을 생각하며
나는 아내의 등을 민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팔이 닿지 않는 그 가려운 탑신
아내의 등 사각지대엔
빨간 앵초꽃이 피어난다
세월의 한켠
묵념처럼 뒤돌아 앉은 삶
언제쯤 나는 말을 걸어야 하나
언제쯤 나는 말을 놓아야 하나
빈 명찰 같은 사람아
첫선을 보듯 앉아 있는 내 중년의 얼굴이
그녀의 등
볼록거울에 비친다 
 
아내의 등을 밀어본 적이 있는지. 아니 나는 남편의 등을 밀어 본 적이 있었던가. 가물거리는 기억에 매우 안쓰럽고 미안해진다. 때수건으로 아내의 뒷모습 한 페이지를 밀고 있는 시인은 보지 않아도 따뜻한 성품의 사람으로 보인다. 금방 넘어질 듯 기울기가 위태로워 보이는 피사의 사탑까지 떠올리며 아내의 척추가 기울었다는 걸 알아차린 세심한 남편이다. 팔이 닿지 않아서 아내는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지 못했을 거라는 짐작도 그만의 자상한 성격을 말해 준다. 아내의 등 여기저기 생긴 흠집을 '빨간 앵초꽃'에 비유하는 건 애틋함 때문일까.
 
두 사람 사이에서 마모된 시간은 편도밖에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어느새 묵념처럼 뒤만 보이는 세월 속의 삶이 황당해질 뿐이다. 막상 말을 걸기가 망설여지지만 그렇다고 말을 놓기도 쭈뼛거려지는 지금, 아내를 향해 '빈 명찰 같은 사람아'라고밖에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이 애절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글픈 탄식이 터져 나온다. 욕탕 볼록거울에 언뜻 비친 그녀의 등. 그러나 시인은 첫선을 보던 그때처럼 낯설기만 하다. 어차피 인생의 봄은 오는 듯 가는 것. 연민이 쌓이면 그 또한 병이다. 한쪽으로 기운 아내의 등 그 사각지대에 사금파리만한 햇빛이라도 들게 해 예전처럼 반듯하게 세워줄 순 없을까. 시인 혼자 떠안을 사랑의 부채인들 결코 '가려운 탑신(塔身)'만 못하지 않은 것을. 
 
이미 시에서 느꼈겠지만 그의 시는 감성과 윤리의 가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슬픔과 웃음을 한데 버무려 마치 고소하고 윤기가 도는 햅쌀 밥 한 그릇을 짓는 듯한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생의 이면을 다소곳이 성찰하고 응시하게 한다. 그래서 그를 두고 정통 서정시의 문법을 가장 잘 지키는 시인이라 부른다.    
    

<칼럼니스트 이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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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승필
춘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 졸업, 중고등부 영어교사 재직,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으로 등단(1988)하였다. 문학종합지 <인간과 문학> 신인상으로 수필 등단(2017) 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자문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며, 유어스테이지와는 2007년 부터 인연을 맺고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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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김호집 9월23일 오후 7:07
아름다운시이군요,
저도 가끔 아내의 등을 밀어 주곤 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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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23일 오후 8:43
시를 아름답다고 감상하신 걸 보니 알겠어요. 아내의 등을 가금 밀어주시는 분이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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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채린 9월23일 오전 2:09
너무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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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23일 오후 8:41
이름이 낯을 가리네요. 오랜만이라고 푸푸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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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미승 9월22일 오후 4:52
상대방 얼굴을 서로 볼 수가 없는.... 마음으로만 느껴가며 내 마음을 정리해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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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미승 9월22일 오후 4:52
상대방 얼굴을 서로 볼 수가 없는.... 마음으로만 느껴가며 내 마음을 정리해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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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23일 오전 9:33
헷갈릴 뻔 했어요. 오랫만이라 이름이 깜빡거렸죠. 손녀도 그대도 잘 계셨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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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9월22일 오전 10:34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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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23일 오전 9:30
무슨 추억인지, 어떤 사연인지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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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희 9월14일 오전 11:19
이선생님은 연세에 비해 너무 젊게 사셔요, 혹 비결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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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4일 오후 9:46
궁금했습니다. 안녕하셨군요. 제가 젊게 사는 걸로 보이나요? 글을 쓰는데다 제 전공이 시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가능한 책과 음아과 음식 만드는 일, 한 가지 더 있군요. 바느질도 하죠. 재킷 정도는 예사로 만들거든요. 모두 받은 은총과 사랑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넘치게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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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4일 오후 9:57
안영희님께서 젊게 사는 비결에 대해 물으셨는데 조금 핀트가 아굿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사실 저의 전공은 영문학이죠. 소원인 영시집을 내지 못함 채 시는 50년 넘었고 수필에도 지난 해 이름을 올렸습니다. 물론 살람도 도맡아하고 있으니 그것이 젊게 살게 하는 지름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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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호 9월12일 오전 8:06
고영민 시인의 글,,읽었다기 보다는 홀로서기 하는 중년을 훨씬 넘긴 남자가 가끔은 요즘 대세라고 하는 혼밥,혼술,혼잠,,하면서 기억하던 글이라서 반갑게 다시 감상합니다...굳이 세련되지 않아서, 도시스럽지 않아서도 좋은,,그냥 부담없이 가슴으로 읽어도 좋은 시인의 글이라고 기억합니다..아내의 등을 밀어보았느냐는 시인의 물음에 신혼시절 몇번인가 어루 만지듯이 밀었던 기억이 있는것도 같습니다..그 사람 지금은 빈명찰은 커녕 그림자도 본적이 너무 오래되어서 무심한 세월 탓만 합니다..조석으로 찬바람이 붑니다..선생님 환절기 건강유의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빕니다,,멀리 대구에서 윤준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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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2일 오후 1:55
그래요. 우리가 모두 너무 많은 세월을 살아왔으니 그 모두가 신기할 리도 없으며 우선 회오라고할까, 쓰디쓴 감정의 넋두리부터 솟아나오는 걸 어찌 말리나요. 남아있는 나날을 덜 아프고 덜 고단하게 보내고 싶은 것이 바람이니... 댓글 늘 고맙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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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9월11일 오후 9:57
아내의 등을 민다는 의미가 엄청 크게 느껴집니다 역시 시인의 마음의 깊이는 끝이 없나봅니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 부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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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1일 오후 10:04
그런 것 같아요. 언제, 얼마나, 왜 서로 등을 밀어주었는지 새삼 돌아보며 생각하게 되지요. 뭐 꼭 시인의 마음만 그렇게 끝없이 깊겠어요. 이참에 카메라 잠깐 내려놓고 부부의 사랑에 대해 묵상해 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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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9월11일 오후 7:49
나이 들어 부부가 서로의 등을 닦아준다는 건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에 이상이 있는지를 살피는 게 되더라고요. 남편 등에 낭종이 생긴 것도 그래서 발견했고 간단하지만 올여름에 수술을 했답니다. 그 이유로 실밥을 뺄 때까지 일주일 이상 등을 닦아주어야 했지만요. 나이 들어 부부가 각방을 쓰더라도 숨소리, 하다못해 코고는 소리가 들릴 지척에서 자야한다는 게 어떤 이유인지도 알게 되었지요.

아내의 등을 보면서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따스할까요. 이런 시인이 많으면 이 세상 아내들이 많이 행복해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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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1일 오후 9:43
어머나, 어떻게 나루님네 올여름 사정을 마치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이 시를 골랐을까요. 그나저나 고생이 겹쳤으니 어쩌죠? 듣기론 가볍게 치룬 것 같아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겐 큰 우환이 분명했을 텐데요. 그 경황에 일주일 이상 부군의 드을 닦어주었군요. 쯧쯧. 나이들고서 별 걸 다 배우죠. '방을 따로 써도 지척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이래저래 나루님은 금년 여름을 눈감을 때까지 못 잊겠어요.

시가 참 따뜻하게 느껴지죠? 그래선가 봐요. 미래의 지구를 버틸 세 가지 기둥을 '도서관, 자전거, 시' 라고 한다네요. 사람의 행복이야 각자 느끼는 한순간인 걸요.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아요. 이렇게 우리가 마음을 주고받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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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9월11일 오전 10:29
이 시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저를 돌아보게 하네요. 저도 사랑의 부채를 많이
안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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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9월11일 오후 5:54
ㅎㅎㅎ 몰랐군요. 알았더라면 혹시 이 시를 고르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하지만 세상에 사랑의 빚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요? 그건 너무 무미하죠. 안심하고 우리 시 감상이나 분위기 있게 하시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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