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문화유산 순례
[문화유산 순례]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新羅 眞興王 巡狩碑)
대한민국 국보 제3호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北漢山 新羅 眞興王 巡狩碑)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553년 신라가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 지역을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한 후, 555년(또는 568년)에 진흥왕이 이 지역을 직접 돌아보고 이를 기념하여 지금의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비봉(碑峰-)에 세운 비석을 말한다.
  
[신라 진흥왕 순수비.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비봉, 국보 3호. 높이 약 154cm, 폭 약 69cm, 두께 약 1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진흥왕은 37년간 재위하는 동안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완전히 병합하였고, 또한 한강 하류 유역으로 진출해 서해안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동북으로 함경남도 이원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등 정복적 팽창을 이룩하였다. 이 시기에 신라가 함경남도까지 북상할 수 있었던 것은 동해안을 따라가는 해로(海路)의 용이함과 진흥왕 대의 정복적 팽창력과 당시 고구려가 귀족 사이의 내분과 돌궐족(突厥族)의 남하압력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던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영토 확장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확대된 영역을 진흥왕이 직접 순수(巡狩)하면서 민심을 살피고 국가에 충성과 절의를 바친 자에 대해 공로를 포상하고, 군신이 함께 경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碑石)이다. 현재 남아 있는 비는 경상남도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 국보 제33호), 서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北漢山 眞興王 巡狩碑, 국보 제3호), 함경남도 장진군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黃草嶺 眞興王 巡狩碑), 함경남도 이원군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磨雲嶺 眞興王 巡狩碑) 등으로, 당시의 삼국 관계와 신라의 정치상·사회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순수(巡狩)’란 왕이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직접 정치나 민심을 살펴보는 것을 말하며, 순수비란 순수를 기념하여 세운 비를 뜻한다.
 
처음 이 비는 조선 시대에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비석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조선 23대 순조(純祖) 16년(1816년)에 대표적인 서예가이며 금석학자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김경연(金敬淵)과 함께 이 비를 탁본, 연구한 결과 진흥왕 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듬해에는 벗 조인영(趙寅永)과 다시 확인하고 이 사실을 비 측면에 기록해 두었다. 순수비에 쓰여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고, 그 내용은 왕이 지방을 방문한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북한산 순수비는 봉우리 전체가 험준한 암석 덩어리인 비봉 꼭대기에 1400여 년 서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의 풍화 작용으로 아래쪽 귀가 떨어져 나가고 6·25전쟁으로 인한 총탄 자국 등 훼손이 심각한 점을 고려해 이에 대한 보호책으로 1972년 8월 16일 경복궁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당시 비석 아랫부분이 길이 7cm, 두께 3cm의 철심으로 암반에 견고하게 연결되어 작업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이후, 북한산 순수비는 1989년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로 옮겨져 보호를 받게 되고, 순수비가 있던 자리에는 순수비가 있었다는 안내 표지석이 자리 잡았지만, 2006년 10월 19일에는 북한산 순수비의 실물과 동일하게 3D 작업으로 제작된 복제비(複製碑)를 원래 자리인 북한산 비봉 정상에 세웠다.
 
진흥왕 순수비의 내용은 크게 비문의 제목 부분, 왕이 해당 지역을 돌아본 기사 내용, 왕을 따라다닌 신하들의 이름과 관직 등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을 추정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의 도리가 진실에 어긋나고, 그윽한 덕화(德化)가 펴지지 아니하면 사악함이 서로 다툰다. 제왕은 왕위를 계승하고 스스로 삼가며 사방으로 영토를 개척하여 백성과 토지를 널리 획득하니 이웃나라가 신의를 맹세하고 화친을 요청하는 사신이 왔다. 이에 관경(管境)을 순수하며 민심을 살펴서 백성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하며 충성과 신의를 갖추고 재주를 다해 나라에 충절한 공을 세운 자가 있다면 벼슬을 올려주고 공훈을 표창하고자 한다. 이때 왕의 수레를 따른 이는 법장(法藏) 혜인(慧忍)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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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일조
태평양화학, 태평양패션 등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는 '역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또한 여러 단체를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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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재원 12월5일 오후 3:52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의미하는바를 제대로 아는이는 많지않다.
특히나 국보3호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오랜세월 마모되어 잘 알수도 없는 비석의 글씨를
서예와 금속학을 연구한 추사 김정희의 노력으로 역사와 지정학적 근거를 확인해준 좋은 사료가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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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2월5일 오후 5:51
반갑습니다. 진흥왕 순수비에 대해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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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12월5일 오전 11:56
한 동안 비봉을 올라 다녔는데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오르 내리기가 수월치 않은 곳 입니다.

비석에 오르면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와 한강 이남까지 시야가 넓어 시원함을 안겨 주었지요.

그당시에는 내력을 모르면서 보고 다녔는데 상세한 설명으로 이제라도 깨우쳐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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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2월5일 오후 3:49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비봉까지 등반을 하셨군요. 승가사쪽으로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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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12월5일 오전 11:32
진흥왕의 국력팽창 정신이 오늘에 이어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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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 12월5일 오후 3:47
늘상 방문해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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