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스테이지 칼럼 마음으로 읽는 시
[마음으로 읽는 시] 눈 / 윤동주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지난밤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세상에 있을까? 질문을 던진 순간 아차, 이게 아니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살기 힘들다는 푸념과 불평이 첫인사라는 걸 잠시 잊었다. 식솔을 건사하며 하루를 살아내기가 전쟁을 치르는 일 못지않게 치열하다는 걸 통감하는 요즘이다. 
 
시를 쓰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밥 안 먹고 시로만 연명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서울에 첫눈이 8.8cm나 내렸다고 보도하는 사람의 음성이 여느 때와는 달리 들떠 있지 않았나. 눈이 주는 느낌이란 아무래도 설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새벽 서너 시까지만 해도 어른의 큰 주먹만 한 눈송이들이 서로 등을 떠밀듯 쏟아지고 있었다. 잠든 식구들을 깨워 함께 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어디선가 읽은 글귀가 떠오른 것이 그때였다. 눈은 '젖은 발이 시려운 줄도 모르고 아래 세상에 풍년 소식을 전하라고 신이 보낸 흰옷 입은 손님'인 것이다. 눈이라는 손님은 귀빈답게 대체로 밤에 오곤 한다. 때문에 우리를 놀라게 하는 만큼 반가움도 갑절이다.
 
윤동주 시인에게는 눈의 이미지가 '이불'이다. 지붕과 길과 밭이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따스한 '포대기', 그 말 하나로 환유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사뭇 강한 웅변조로 다가오는 시의 마지막 두 행을 보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여린 듯 두드러지는 강세를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다만 내리는 눈과 눈을 내리는 하늘의 뜻을 그 누군들 알겠는가. 단지 겨울이 주는 선물일 뿐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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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스테이지 칼럼니스트 이승필
춘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 졸업, 중고등부 영어교사 재직, 월간 <문학정신> 신인상으로 등단(1988)하였다. 문학종합지 <인간과 문학> 신인상으로 수필 등단(2017) 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및 자문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이며, 유어스테이지와는 2007년 부터 인연을 맺고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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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윤준호 2018년12월26일
선생님 윤동주 시인은 저하고는 먼 친척 형님이 되시는 분이라서.."시"라는 제목이 붙은 "시"는 유달리 까다로운 식습관처럼 가려서 편애하듯 읽는 습관이라..대체로 영문학쪽의 시가 아니면 자주 읽지 않았습니다만..돌아가신 윤시인님의 시는 자주 접하고 암송하듯 몇 편은 머릿속에 들어있기도 합니다..어제가 성탄절인데 ,,서울에는 눈이 내렸는가 봅니다,,누구에게나 눈이 주는 감성은 숨기기 어려운 설렘일것입니다..머잖아 기해년 새해가 밝아오는데 세밑에 선생님께 송년 인사드릴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올 한해도 수고 하셨습니다,,다음 해에도 보다 더 건강하신 모습으로 소망하시는 모든 것 이루시는 해가 되시길 기도합니다,,,감사합니다,,안녕히 계십시요,,대구에서 요셉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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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2018년12월27일
고마워요. 윤준호님도 한해 동안 수고 많았어요. 오는 기해년에도 건강하십시다. 교회에서 예배보시느라 힘들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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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2018년12월25일
윤동주시인은 눈을 추운 겨울에 포근하게 이불로 표현했습니다. 저는 예전 어릴적 어려운 시절 배고픈 사람들이 하늘에서 하얀 쌀가루를 내려준다고 배운대로 , 흰눈을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밤사이 내린 하얀눈을 보고 맘껏 뛰놀던 생각도 하고요.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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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2018년12월25일
요즘 매우 바빠 보이시던데 댓글 고마워요. 성탄 기쁘게 맞으셨죠? 손자들은 쑥쑥 자라 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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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2018년12월25일
밤에 내리는 눈은 낮에 보는 눈보다 한결 새하얗지요. 이 시를 읽고 나서는 어두워지는 저녁 옥상에 올라가서 눈 내리는 마을을 좌우로 살펴보면 푹신한 카시미론 이불을 겹겹이 덮어주는 듯하지요. 올겨울 집이 있는 사람이나 남의 집에 사는 사람이나 모두 눈 내리는 날도 포근하게 지냈으면 해요. 시기에 딱 맞는 詩를 올려주셔서 저도 올겨울을 한결 따뜻하게 보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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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2018년12월25일
아이쿠~이렇게 이른 시간에 찾아주시다니...이제 걱정 근심 다 내려놓아도 졸을 것 같다고 가슴을 쓰러내리면서 생각합니다. 역시 선한 이의 간구를 놓치지 않으시는 생의 주인의 고마움에 대해서요. 오래 전에 써놓고 올리는 걸 잊었다면 얼마나 일과 생각이 푸짐하다는 증거일까요. 아무튼 옷깃을 새로 여미며 나루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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