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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텃밭은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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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집을 떠나며
2013.05.01 09:36

 

 40년간 정들었던 집을 떠나는 날이다. 새벽에 눈을 뜨니 어슴푸레 동창이 밝아온다. 뒷창문을 활짝 열었다. 상큼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뒷동산에서 새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4월이면 새들의 성음이 유난히 곱다. 새봄에 짝짓기하려고 사랑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오늘은 새들의 소리가 슬프도록 가슴을 저몄다.

 

국가시책으로 강제 이주를 하게 되었다. 게다가 반값 보상을 주며, 등을 떠미니 너무하다 싶어 1년간 시위도 하고 투쟁도 해보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작년 가을 이주명령을 받고 적당한 둥지를 찾지 못해 미루다가 이제야 모든 것을 수용하기로 하고 떠나려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정든 집에서 마지막 밥상을 받고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서울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시집왔을 때는 남편이 직접 찍어 만든 블록으로 벽을 쌓고 슬레이트를 얹어 지은 허술한 집이었다. 결혼 7년 만에 내가 인부들의 밥을 직접 해주며 이 집을 짓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당시는 마을에서 손꼽히는 양옥이었다. 그런데 집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겉모습은 그럴듯한데 속은 낡을 대로 낡아 버리고 단열이 시원치 않아 겨울에 몹시 추웠다. 우리는 이곳에다 진즉 노후대책을 해 놓았기에 개발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 닥치지 않았다면 새집을 짓고 살다가 자손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노후 설계도 다시 해야 할 판이다.

 

작년 겨울은 기상 이변으로 50년 만에 큰 추위가 덮쳤다. 첫 추위에 보일러가 터지고 하수도가 얼어서 막혀버려 혹한 속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내 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곳에서 살았으니 말해 뭐하랴. 친지들한테 사실을 말했더니 믿질 않았다.

 

시집간 딸애가 겨울 동안 저희 집에 와 있으라고 했지만 그대로 겨울을 났다.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였고, 황무지를 개간해 살던 신혼 때는 이보다 더 고된 삶을 경험했기에 인내할 수 있었지 싶다. 게다가 꽃피는 봄이 오면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된다는 희망이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

 

곱게만 자란 아들 녀석이 안쓰러워 잠시 따뜻한 고시원에라도 나가 있으라고 했더니 부모님께서 계시는데 군대도 다녀온 젊은 제가 못 참겠느냐고 막무가내 했다. 또 지금은 예전과 달리 따뜻한 옷이 있고 전기장판이 있고 석유난로를 피울 수 있어 냉방이라 해도 어느 정도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어 예전 추위에 비하면 약과였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던가. 인생의 노을 길을 활기차게 걷기 위해 잠시 극기 훈련을 하는 셈으로 여겼다. 사람으로 치면 병이 깊게 든 집을 곧 헐리게 된다며 고쳐주지도 못하고 함께 견뎠다는 자체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 장성했고, 우리 내외의 젊음을 고스란히 묻은 집이다. 이곳은 아이들의 본향이며 우리 내외한테는 제2의 고향이다. 멀리 떠날 수 없어 건넛마을 신도시로 옮겨 앉기로 했다. 전망 좋은 아파트 10층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되지만 이곳에서 누리던 아름다운 삶은 맛볼 수가 없다.

 

산이 멀리 있으니 새들의 노래는 환청으로나 듣게 될 것 같다. 온갖 씨앗을 뿌려 무공해 채소를 넉넉히 심어 먹던 텃밭, 젖소들과 30여 년을 함께 지냈던 축사와 천여 평의 터전이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모두가 포맷되어 상전벽해가 될 것이다. 아쉬움에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시는 못 볼 정든 집, 우리의 생활비를 대주던 축사 건물, 개나리 울타리를 두르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독대 항아리들, 겨우내 맛있는 김치를 퍼다 먹던 김치 광, 어느 곳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외딴 집이지만 도둑 한 번 들지 않았고, 허술한 울타리에 대문이 있으나 항상 열어놓고 살았으니 우리도 자연과 다를 게 없었다. 아쉬움 속에 40년 전원생활의 추억을 안고 미지의 세계, 아파트 숲으로 향하는 마음은 서운함과 설렘으로 어수선했다.


<시니어리포터 최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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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 청암(靑岩)
    2015.09.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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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텃밭 다녀갑니다.
  • 초록
    2013.05.0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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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서동애 님, 육영애 님, 오영희 님의 댓글을 이제 보았네요. 고맙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 초록
    2013.05.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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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옥희 님, 이용훈 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파트에 익숙치 않아 좌충우돌 하면서도 편리함에 길들여져 갑니다.^^*
  • 소봉
    2013.05.0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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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을 산 터전을 떠나는 그 마음밭은 얼마나 스산했을까요? 하지만, 비록 공동이긴 해도 경비에 청소부에 관리인이 다 있으니 편한 면도 있는 게 아파트랍니다. 저는 아파트에 길들여져서 이제는 단독주택에 못 살것 같아요. 새 보금자리에서 행복하소서
  • 안단테
    2013.05.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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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계획했던 곳으로 떠남도 아니고 개발에 의해 남에게 등 떠밀려 떠나게 된 집이어서 더욱 아쉽고 미련이 남을 듯 합니다. 그곳에 남은 추억은 고스란히 지워지지않을까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새롭게 정해진 곳에서 또 다른 삶을 기대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ㅎ
  • 후리지아
    2013.05.0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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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년의 삶의 터전을 떠나기가 무척 서운하시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곳에서 초록님 가족의 행복한 터전 만들기를 기대해 봅니다.^^
  • 벗이좋아
    2013.05.0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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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곳에는 또 다른 행복들이 기다리고 있을거예요~~
  • 오동꽃 소녀
    2013.05.0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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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동안 살아오신 보금자리를 떠나시는 마음이 절절히 전해옵니다. 선생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다른 행복을 엮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