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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텃밭은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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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추와 무가 선생님이네?
2014.10.22 08:00

시골길 옆에 아무렇게나 밭을 만들어 씨를 뿌려 놓은 게 보였다. 자동차가 쉴 새 없이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가는 길 옆이다. 그래도 한 마디 군소리 없이 파란 잎을 싱싱하게 뻗어내며 자라고 있는 배추와 무다. 예전, 어렸을 때 아버지의 가르침에 의해 앞, 뒤에 있는 밭농사를 지었던 생각이 아득하게나마 떠올랐다.

  

봄이 되면 고추와 마늘, 당근, 쑥갓, 감자, 오이, 상추, 양배추, 토마토, 시금치, 호박 등등을 심었다. 우리 집 밭은 지금의 슈퍼 안, 식품 코너쯤에 속해 있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언제나 우리 집 채소들은 다른 집 채소들에 비해 싱싱하게 잘 자랐다. 거름도 잘 주었고 여러 가지 벌레들도 다 잡아 주곤 했다.

    

특히 양배추 벌레는 잎이 감쌀 때마다 주의해서 안 잡아주면 제일 깊은 속에서부터 위로 뚫고 나온다. 초록색 똥을 동글동글 싸 놓은 걸 보면, 우리가 게으름을 피웠다는 걸 바로 알아차려 아버지께 꾸중을 듣곤 했다. 나무젓가락을 들고 다니며 벌레를 잡아서 닭장으로 가서 던져주는 게 큰일이었다. 그렇게 여름 내내 이것저것 따 먹어가며 거두면, 그 다음에는 배추와 무 씨를 뿌려 김장 준비를 했다.

    

어느 날에 뿌린 씨는 비가 다 쓸어 가 버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또 다시 뿌렸는데 이번에는 너무 얕게 뿌려서 새들이 다 먹어치워 싹이 안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 다시 종자를 사 와야 했다. 걱정이 된 우리는 흙을 잔뜩 덮었다. ‘이 나쁜 새들아, 이건 사람들이 먹으려 준비를 하는 건데 왜 너희들이 다 파먹고 그래?’ 하며 나는 흙을 덮고도 모자라 손바닥으로 꾹꾹 눌렀다. 다른 집은 다 싹이 나왔는데 우리 집 밭에는 기별이 없었다. 정말 한참만에야 초록색 떡잎이 반갑게 나왔던 일이었다.

  

 

그 척박한 길옆 땅에서 자라고 있는 배추랑 무를 보니 나도 모르게 반가움과 그 옛날이 생각났다. 이 세상 어느 한 가지도 그냥 무심히 넘어갈 일이 아닌 거 같다. 나 한 사람, 아주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겠지만 나의 어머니에게는 누가 뭐라 해도 딸인 것처럼 말이다. 길에서 우연히 나에게 웃는 얼굴이 있다. 상대방이 웃는 얼굴이라 나도 같이 웃었다. 내게 점점 다가오지만 누군지 가늠이 안 선다. 멀리서는 내 눈이 나빠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는 눈이 나빠서란 변명을 할 수는 없는 거리가 되어버렸다.

    

내 손을 덥석 쥐면서, "잘 지냈어? 변하지도 않았네!?" 하며 사뭇 고조된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완전 치매? 하는 마음으로 "응, 그래? 어디서 살아?" 하니 "나 압구정, G는 가끔 만나는데, 넌 처음 만나네?" 마음속에 아마도 G의 친군가 보다 하는 가늠이 섰다. 그저 "넌 용케 날 기억해 주네? G와 내가 같이 다녀서 그런 거야?" 하고 넌지시 물었다. "그렇지! 우린 자주 만나겠네? 여기 자주 와?" 한다. 그렇게 헤어졌는데 그녀의 말대로 자주 만나게 되었다.

    

G는 대학 다닐 때 늘 같이 다니던 친구다. 입학해서 오씨 성(性)이 내 옆이라 그냥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 애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 다른 과에도 몇몇 아는 애들이 나보다는 많았다. 난 수원에서 온 손꼽아야 할 정도인 몇 명 속의 촌닭이라 언제나 외톨박이 신세였다. 아무하고 마구 얘기하는 성격도 아니라 바로 옆에 앉은 친구들하고만 다녔다. 내 주위에 있는 오, 유, 윤씨 정도에 조금 멀어지면 송, 신씨 성을 가진 애들이었다. 그러면서 그 애들하고 조금 친한 애들하고 사귈 기회가 이어지며 친구관계가 조금씩 넓어져갔다.

    

그런데 G가 결혼하면서 만나지질 않았다. 나에게 못할 거짓말과 비겁한 일을 몇 번 한 뒤로 나는 그녀 만나는 것에 산경을 안 썼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그녀는 G의 여고 동창인 거다. 요금도 자주 만나진다. 그녀는 늘 웃으며 다가온다. 나는 왜 그런지 민망스럽다. 더 웃기는 건 아직도 그녀를 잘 기억 못하는 거다. 언제나 웃으며 덥석 내 손을 잡으면 놀라서 아는 체를 하곤 한다. 내가 지금 길옆 채소를 들여다보며 반기듯 그런 어색함의 계속이다.

    

아무 것도 아닌 풀도 그리워지고 예뻐 보일 때가 있는데, 몇 년을 함께 웃고 재잘대던 친군데 이제는 다 지우고, 또 다시 내 손을 덥석 잡으면 우리 다 같이 한 번 만나자고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젊은 마음에 혼자 주눅 들어 내게 한 잘못에 만나자고 못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문득 배추랑 무가 내게 좋은 교훈을 안겨 주는 거 같다. 옛 친구를 만나 오해일지 모르는 그 얘기들을 풀라고 하는 것 같다. 5+5는 열 받는다 하지 않는가? 1+1은 이해라 하고, 2+2는 사랑이라 하니, 나도 실천해봐야겠다. 옛일을 그립게 만들어 준 배추와 무를 보면서 잘 못하는 일을 해 보게 만들어 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스치고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조금만 마음을 쓰면 숨겨져 있던 오해를 풀 길도 열리는 법인 거 같다. 오늘은 배추와 무가 선생님이네?   

 

<시니어리포터 육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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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4)
  • 청암(靑岩)
    2015.09.0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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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텃밭 구경 잘하고 다녀갑니다.
  • 밀키
    2015.08.0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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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와 열무가 참 예쁘네요. 아버님께서 낙농계의 거목이시군요. 좋으시겠습니다. 텃밭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 벗이좋아
    2014.10.2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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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생님~~감사합니다~~
  • 보 셕
    2014.10.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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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1, 2 + 2 , 늘 이해하고 사랑하소서! .....^^^
  • 벗이좋아
    2014.10.2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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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생님 며칠전에 창고 속에서 아버지가 일본에서 개최하는 홀스타인협회에 매회 가셔서 인터뷰하던 사진 등등을 보고 마음 속이 이상해졌어요~ㅎ
  • 오차드
    2014.10.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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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영애씨 선친께서는 우리나라 낙농계의 태두이신데 원예에도 일가견을 가지셨군요.
  • 벗이좋아
    2014.10.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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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거 같아요~ 김 선생님. 내 맘 먹기에 달렸겠죠? 감사합니다~
  • 하하호호
    2014.10.2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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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풀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 벗이좋아
    2014.10.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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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춘몽 씨~~정말 순박한 예쁨이죠...그 빛깔이 순학하고 곱죠~~좋았겠어요^^
  • 벗이좋아
    2014.10.2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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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생님 부러워요~~
  • 신춘몽
    2014.10.2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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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에 시청앞에서 도시농군 자랑잔치에 갔었는데 정말 아름답더군요, 나는 배추가 ,무가,,그렇게 아름다울 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어느 꽃이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을 줄껀지 상상도 안가요,ㅎㅎ
  • 안단테
    2014.10.2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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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무도 맛나지요? 어제 콩나물밥 하면서 무 좀 넣고 했는데 달콤하고 좋았어요...ㅎ ..저 오늘 아침에도 배추벌레 4~5마리 잡고 나왔습니다...ㅎㅎㅎ
  • 벗이좋아
    2014.10.2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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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맞아요~ 그 싱싱한 잎사귀가 자라나는 걸 보면 정말 그냥 힘이 솟았던 기억이 납니다~~감사합니다^^
  • 빛나래 vitnarae
    2014.10.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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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는 배추 무가 유일한 야채였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