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문화 유산 답사기 2-진도

 
진도 대교를 넘어가면 바로 왼쪽에 있는 망금산 정상에 해남의 우수영 관광지 못지않게 이순신 장군을 테마로 하는 진도 타워 전망대가 세워져 있어 진도나 해남 모두가 함께 해전에 참여해서 승리를 이끈 명량대첩과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자부심을 남다르게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명량해협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높이 115m의 이곳 망금산에서 충무공께서는 울돌목을 굽어보면서 왜선의 이동 상황을 살피며 아녀자들로 강강술래를 추게 하여 왜군을 교란한 후 이들을 섬멸시켰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산 아래를 굽어 내려다보면 강강술래 터가 바로 보이고 왜군들의 주검으로 핏빛으로 변했다는 조그만 섬도 보인다.
 
진도는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라던가. 그 옛날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고려와 조선 시대 문인들의 유배지라 교통도 불편했을 거고 유배인의 영향을 받아 풍부하고 독특한 생활 문화도 독특하게 남아 있을 거 같다.
 
이곳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앞서 고려 시대 대몽(對蒙)항쟁의 아픈 역사까지를 안고 있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섬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관광지와 달리 진도만의 독특한 민속을 알리는 데도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강강술래(중요 무형문화재 제8호), 진도 씻김굿(중요 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 다래기나 진도 만가같은 진도만의 고유 민속을 볼 수 있고 진도아리랑 같은 남도 잡가 등을 들을 수 있는 공연을 정례적으로 열고 있다.
 
진도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각종 민속 공연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간 관계상 국가지정문화재 명승(名勝) 제80호인 운림산방(雲林山房)으로 내 달린다. 문화유산들을 보면 명승, 사적 그리고 사적과 명승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분에 대한 정의부터 살펴보자.
 
경치 좋은 경승지는 고려, 조선 시대 때 ~景(예: 관동 팔경 등)으로 불리던 곳이 많은데 문화재 보호법에선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적(史蹟), 史蹟을 갖지 않은 순수한 자연 경관지는 명승, 두 가지 모두 해당하면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한다. 참고로 명승 1호는 오대산 국립공원의 명주 청학동 소금강이다.
 
진도 분들은 珍島를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어 보배의 섬이라고 하고 여기 있는 운림 산방을 이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살아있는 미술관이라 한다. 연유인즉 소치(小痴)허련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거봉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이 일가 직계 5대의 화맥이 현재에 이르러서까지 200년 동안 그의 4대손 임전 허문까지 이루어지고 있어서란다. 옆 마을 해남에도 문인 화맥을 이어온 집안이 있으니 공재 윤두서, 그의 아들 윤덕희와 손자 윤영 일가다. 이래서 남도를 묵향(墨香)의 고장, 藝鄕(예향)의 고장이라 하는가 보다.
 
소치는 詩와 文을 초의(草衣)선사로부터 읽히고 書와 畵를 추사(秋史) 김정희로부터 전수받아 詩書畵 三絶로 헌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추사 김정희는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만한 사람이 없다고 그를 극찬하였다. 50세인 1857년 낙향하여 첨찰산 자락에 소허암 또는 운림각이라는 산방을 짓고 생활했던 터를 후일 손자인 南農 허건이 재건하고 ‘운림산방’이라 명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곳의 과거 모습은 1866년 부채에 그린 운림각도에 나오는데 안빈낙도의 삶이 절로 느껴지는 글과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조그마한 홍예교(虹霓橋)와 정면의 초가를 보고 그 당시의 풍경을 느낄 수 있다. 그 당시의 흔적을 또한 볼 수 있는 게 널찍한 뜨락에 대흥사 일지암에 기거한 스승 초의로부터 받은 일지매(一支梅)의 자손목이다. 원래의 일지매는 187년의 수명을 다한 채 스러지고, 뿌리 나누기로 기른 지목 한 그루가 대를 이어 세월을 지켜보고 있다.
 
초의 선사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의 소개로 운명적으로 추사 문하로 들어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으며 추사가 제주도 유배 시절 역관(譯官) 이상적처럼 직접 풍랑을 감수하고 건너가 얼마 동안 스승을 수발하기도 하였다.
 
초의선사를 통해 추사 김정희에 소개되기 전, 다산의 외가인 해남의 녹우당까지 걸어가서 그 집에 보관된 서화들을 보면서 모사(模寫)하면서 스스로 그림을 익혀 나갔다는데, 당시 터덜터덜 짚신 신고 그 먼 곳을 힘들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다음으로 사적 제127호인 남도(南挑) 진성으로 향한다. 이곳은 평탄한 대지 위에 돌로 축조된 성으로 남도포 수군 만호진성 이라 함으로 보아 이곳에 만호가 처음 생긴 때가 세종 20년(1438)이니 이후 쌓은 곳으로 추정된다.
 
저녁 5시경 찾는 이 하나 없고 여기저기 파헤쳐진 땅과 돌 담벼락의 썰렁함은 사적은 사적인데 전혀 관리가 안 되고 방치된 인상을 받았다. 여기 역시 보배섬 관광이라는 표어와 플래카드는 요란한데 인적이 뜸한 곳이라 관리의 손길도 뜸한 것 같다.
 
城內엔 어찌된 일인지 민간인 가옥이 한 채 있어 주변 채마밭도 널려있고 묶여진 진도견이 낯선 과객을 보고 짖어댄다. 그 성내가 사유지인지도 궁금할 뿐 아니라 우리의 귀한 문화재가 이렇게 방치된 민망한 모습에 씁쓸함을 뒤로 하고 일몰(日沒) 시간이 다 된 지라 일몰 명소인 세방낙조 전망대를 급히 찾아 나선다.
 
아침 뉴스에 남도에까지 미세 먼지 주의보가 있더니, 역시나 강렬한 일몰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아스라이 스러지는 남도 끝 해넘이를 주변 간판의 사진으로 대신하고 나서 시내로 나가 허름한 여관방에서 피곤을 누이며 진도에서의 하루를 파한다.
 
다음 날 아침 다시금 행장을 꾸려 오래전부터 꼭 방문하여 확인 하고 싶은 곳이 있어 가보니 내부 사정으로 휴관이라 하여 어쩔 수 없이 발머리를 해남으로 돌린다. 그곳이 어딘가 하니 장전미술관(진도 관광문화과에서 발행한 토요민속여행 내 지도에는 남진 미술관으로 되어있는바 수정이 필요하다)이다.
 
다산의 매화도 중 하나인 매화 병제도(매화 쌍조도)는 고대 박물관에 소장되고 현재 남양주 실학 박물관에 대여 전시 중에 있지만 또 하나인 매화 독조도를 어디선가 분명히 보긴 봤는데, 자꾸 진도 어디 일반 가옥과 같은 허름한 개인 미술관에서 봤던 듯하다.
 
10년도 넘던 때 집사람과 여행 시 무심코 들렀던 그곳. 당시 시골 마을에 별로 찾는 이도 없던 그곳에 빼꼼히 열린 대문을 기웃거리며 들어가서 머뭇거리며 구경해도 되냐고 물으니 갓난애를 업으신 村婦가 알아서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분은 안주인이었던 것 같고, 놀라운 것은 외관은 가정집 같았는데 범상치 않은 작품이 많았던 것 같고, 다산의 매조도(매화 독조도)를 보면서 집사람에게 아는 체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조예가 없어 매화도가 2가지 존재하는 걸 몰랐었고, 왜 고대 박물관에 있는 것이 여기에 있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모조품이 아닌가 생각했던 기억이다. 인터넷 여기저기 뒤져 보니 이 그림은 10억 원대를 호가하며 개인 소장으로 나와 있어서 옛날 기억을 더듬어 혹시나 개인 소장자가 미술관 주인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직접 가서 확인을 해보려 했지만, 휴관이라니 상당히 아쉬웠다.
 
이 두 번째 매조도는 1813년 8월 19일 딸에게 보낸 첫 번째 매조도를 그린 지 35일 뒤인 8월 19일 그렸으나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9년 뒤인 1822년 친구 이익위(이인행)에게 전해진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2009년 9월 서울 공화랑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소장자는 전 경우 씨라 한다. 그의 부인은 이인행 집안의 宗女이며 전 씨 네와 이 씨 네의 인연이 깊다고 정민 교수는 그의 책 다산의 재발견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10년도 전에 본 것은 착각이었을까? 어쨌든 지금은 제대로 된 미술관으로 거듭난 듯하고 관람료도 있는 것 같다.
 
진도군 안내서에 미술관 주인인 장전 하남호 선생의 작품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한석봉, 흥선대원군,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등 유명인의 희귀 서화 작품과 도자기와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니, 진도를 가시는 분들은 한 번 들러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시니어리포터 김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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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김용기 (바렌김)
후반기 삶을 멋지게 살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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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정용길 3월22일 오전 7:26
여행을 통해서 역사를 배우는 좋은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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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3월21일 오후 7:55
가보고 싶다하면서도 아직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가보고 싶은 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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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3월22일 오후 4:57
기회 되시면 진도로 강진으로 해남으로 가까이들 위치하니 죽 돌아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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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3월22일 오후 4:59
보배로운 섬이라는 이름처럼 우리의 문화들이 녹아 있는 곳이니 여건되실때
방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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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희 3월21일 오후 7:07
지난 겨울에 남도로 갔었는데 운림산방이랑 세방낙조 모두 놓치고 와서 몹시 아쉬운 여행이었답니다...ㅎ 자세한 설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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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3월22일 오후 4:5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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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3월21일 오전 9:36
진도에 예술가와 위인이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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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3월22일 오후 4:55
소전 미술관의 소전 손재형씨는 추사 이래 최고의 서예가라 하며ㅕ 그와 그 제자들
작품들이 있다하는데 들러보지 못했습니다. 이분 역시 간송과 마찬가지로 땅부자로서
일본으로 넘어간 추사의 세한도를 전 재산을 주고 되찾아오려 했으며 , 이에 감동한 일본인
소장자가 돈을 받지않고 그냥주어 미군 폭격에 사라지지않고 우리 박물관에 보관 된 경우
처럼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지킨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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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주 3월21일 오전 9:20
아직 진도는 가 보질 못했습니다. 미술품도 진위여부가 큰 논란거리이지요. 사욕을 채우기 위해 날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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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3월22일 오후 4:20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돌아 다니면 참 볼곳이 많은듯 합니다.
1박 했지만 오고 가며 보낸시간 빼면 얼마 보지를 못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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