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에세이] 환갑이 넘어서야 깨닫다
 
냉장고를 열었다. 늘 상비약처럼 있는 상비품, 달걀이 두 알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오늘은 아무래도 달걀을 사러 마트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날씨가 참으로 봄 날씨답다. 날씨 방송에서 15도까지 올라간다더니 정말인 모양이다. 아직 쌀쌀할 시기인데 올해는 봄이 일찍 오나 보다. 기분 좋게 사십 분 거리를 걸어 마트로 향한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 얼굴에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온 기쁨이 넘쳐나 발걸음이 조차 가볍다.
 
한동안 하늘 모르고 치솟던 달걀이 매장 한쪽에 쌓여 있다. 몸값을 부풀려 서민들을 울리고 웃겼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싶게 얌전히 놓여 있다. 달걀 포장이 제각각이다. 그에 따라 달걀값도 제각각이다. 어느 걸 살까. 괜스레 15개들이도 들어보고, 영양란이라 불리는 달걀도 들어보고 생생란도 들어본다. 닭이 아니라 병아리도 한 번 키워보지 못한 내가 아무리 포장을 잘한들 내 눈엔 다 그게 그거 같다. 들었다 놨다 몇 번 하다가 결국 올 때마다 샀던 일반란을 사들고 돌아선다.
 
기억 속의 아버지 밥상엔 날마다 날달걀 한 개씩 올랐다. 엄마가 마련한 이른바 아버지를 위한 특별식이었다. 아버진 달걀 꼭지 위를 젓가락으로 톡톡 쳐서 구멍을 낸 다음 한 번에 잡수시곤 했다. 때때로 작은 종지에 참기름 한 수저가 담겨 상위에 올라오면 달걀을 젓가락을 ‘탁’하고 깨트려 그 종지에 담았다. 젓가락으로 몇 번 휘휘 저어 마시기도 했다. 어느 땐 간장을 찾기도 했다. 그 무렵 시내 단 한 곳뿐인 간장 공장에서 사온 간장이다. 뜨거운 밥에 날달걀을 깨 넣고 그곳에서 사온 간장을 한두 숟가락 넣어 비벼 드시곤 했다. 이때 꼭 넣으시던 게 참기름이었다. 난 그 무렵 참기름이란 우리가 비빔밥을 먹을 때 넣는 참기름처럼 좀 더 맛있게 먹으려고 넣는 것처럼 단순하게 지금까지 생각하고 살았다.
 
달걀 요리를 자주 한다. 달걀찜도 하고 달걀말이도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라면을 끓이다가도 꼭 달걀을 넣는다. 이렇게 자주하는 달걀 요리지만 그다지 맛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달걀 특유의 비린내 탓이다. 그 비린내 때문에 한동안은 라면에 달걀을 넣어 끓이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내 몸을 위해서 비리지만 먹기 위해서 요즘은 자주 먹지만 늘 그 비린내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나름 애를 썼지만 한 번도 달걀 요리가 맛있다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다.
 
요즘 퇴직하고 한가해지니 때 아닌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대충 배를 채우는 게 목적이었다면 요즘은 ‘어떻게 맛있게 보기 좋게 해 먹을 수 있을까’가 관심사다. 내가 모르고 있던 갖가지 방법으로 해보는 게 요즘의 관심사다. 본격적으로 요리 실험 중이다. 당연히 요리 프로그램도 열심히 본다. 요리의 본질을 알고 거기에 맞게 요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것이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날도 그랬다. 방송에서는 어느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집 라면 요리가 방송되고 있었다. 식당이라고 하지만 1960년대쯤의 건물로 보이는 시멘트블록집이다. 겉에서 보면 그 흔한 간판 하나 없는 집이라 그 곁을 스쳐간다 해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그런 집이다. 그 집이 근방에서는 알 사람은 다 아는 맛집이란다.
 
그 집에서는 라면만 끓여서 판다. 그 흔한 라면 파는 집이 맛있으면...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라면이라고 다 라면 요리가 아니다. 화면으로만 봐도 군침이 돌아가는 라면이 요리로 재탄생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 군침이 넘어가는 라면 요리가 아니라 라면에 들어가는 달걀 이야기다. 참기름 조금, 들기름 조금, 그 속에 달걀을 깨 넣고 잠시 숙성 시켰다가 라면에 풀어 넣는다. 그게 달걀 비린내를 잡는 비결이란다.
 
방송을 본 직후, 바로 달걀말이를 시작했다. 참기름 조금, 들기름 조금, 소금 조금, 당근을 송송 채 썰어 넣고 대파를 썰어 넣고 늘 하던 대로 김을 부셔 넣을까 하다가 멈추었다. 이 정도로만 하면 달걀 고유의 달걀말이가 될 텐데 향을 더하자고 김을 부셔 넣으면 실험 요리가 망가질 것 같아 김은 빼 버렸다. 불을 켜고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달걀말이를 만들었다. 조금 식을 때를 기다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썰다가 참지 못하고 한 개를 집어 먹어 본다. 세상에 달걀말이가 이런 맛이었다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고소한 맛이 입 안을 지나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물론 달걀의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내 나이가 벌써 환갑을 넘은 지도 한참인데 이제 와서야 달걀 요리와 참기름 관계를 제대로 알았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한자성어(漢字成語)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요즘 요리를 한다 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왜 그리 들어가는 양념은 많은지 집에서 하는 요리로는 부담스러운 것이 많다. 음식의 재료 성질조차 제대로 모르고 무조건 따라하니 맛이 있을 리가 없다. 옛사람들이 음식 재료의 성질에 따라 더하고 빼고 하면서 전해져 내려 온 음식을 먼저 알 일이다. 우리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작은 종지에 참기름 한 수저 담아 아버지 밥상에 올렸던 지혜를 오늘에서야 깨닫고 이해하는 저녁이다.

 

<시니어리포터 조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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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조규옥
바람 부는 대로 구름 가는 대로 흘러가야하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잘 흘러가려면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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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육영애 3월28일 오후 5:00
어머나.... 저도 참기름 조금, 들기름 조금... 을 넣어서 달걀말이를 어서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저녁 반찬으로 해보려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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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3월25일 오후 2:08
달걀말이 예쁘고 간단하고 짱입니다. 참기름이 관건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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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3월24일 오후 6:01
요리를 이렇게 맛나게 해주셨네요
글을 맛잏게 읽었습니다
전 달걀말이 정말 좋아하고 요즘 새댁들이 신혼에 계란말이를 이쁘게 한다던데
여기 가르쳐 주신대로 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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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4일 오후 11:07
ㅎㅎㅎ 정말 맛있었습니다.
손자도 며느리도 이렇게 맛 있는 달걀말이는 처음 먹어 본다고
그래서 저도 처음 먹어본더고 햇지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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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3월21일 오후 7:36
달걀말이 반찬으로 최고입니다. 특히 예전의 아이들 도시락으로 이만한 게 없었지요. 저는 우유를 약간 넣습니다. 약간 가칠한 맛이 부드러워지기에... 저도 참기름 한방울로 넣고 해 보겠습니다. 꽃과 어루러진 달걀말이 너무 예쁜 요리로 변신한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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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48
저는 달걀말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ㅠㅠㅠ
제가 요리를 못해 맛 없었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은 좋아졌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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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희 3월21일 오후 7:12
꽃 한 송이가 오르니 이렇게 예쁜 요리가 되었어요...ㅎ 저도 참기름 한 번 넣어봐야 겠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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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48
참기름을 넣으니 향도 다르고 맛도 다르더이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야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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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영 3월21일 오후 2:07
달걀에 들어있는 비오틴이라는 성분이 탈모에도 좋다고 해요..달걀 하나로도 맛도 있고,영양가 높은 좋은 반찬이 될수 있으니 참 좋은 식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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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49
아~~
그렇군요. 아직 탈모 걱정은 안해서
머리털 복은 타고 난 모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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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3월21일 오전 11:29
그런 지혜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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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49
저도 뒤늦게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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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3월21일 오전 11:12
제가 아팠을 때 우리집에 오시던 분께서 달걀찜에 참기름을 넣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식구들은 썩 좋아하지않아서 한번 시도해보고 우리식대로 만들어요.
양파를 잘게 다져넣고 찜도하고 말이도 하지요.
저도 그 라면 집보고 다시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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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50
저도 양파도 넣고 특히 김가루 넣는 걸 좋아합니다.
그럼 훨씬 고소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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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3월21일 오전 9:29
달걀과 참기름의 궁합을 이제야 이해하게되네요. 늘 참기름을 넣으면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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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50
우와~~ 그러셨군요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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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3월21일 오전 9:16
온고지신 !..................배움에 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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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51
감사합니다. 더 배우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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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3월21일 오전 9:15
저도 달걀요리 좋아하는데 참기름 넣는건 생각도 못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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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51
죽는 순간도 배우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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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주 3월21일 오전 8:44
ㅎ ㅎ저도 참기름이 계란의 비린맛을 잡아주는지는 전혀 모르고 살았네요*^^* 죽을 때 까지 배워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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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51
ㅎㅎㅎㅎ 맞습니둑는 순간까지 ㅇ열심히 배워야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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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52
맞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배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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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호 3월21일 오전 8:16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배우면서 살아가는 게 삶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는 콩나물 라면을 참 좋아한답니다. 라면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고 먹고난 후에도 속이 참 편하답니다.
아침 요리단상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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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3월22일 오전 11:53
아하~~~ 한번 콩나물라면 끓여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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