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순대
 
 
5층인 아파트 복도에 서서 앞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분홍 꽃잎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던 화사한 벚나무가 어느새 꽃비로 흩날려 마당에 예쁜 꽃이파리가 가득하다. 벚꽃은 필 때도 예쁘더니 지고 난 후에도 예쁜 꽃 융단을 깔아주었다. 풍경을 보며 한참을 서 있는데 길 건너 도로에 생선 트럭이 왔는지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소리가 우렁차다. 
 
“오징어가 왔어요, 싱싱한 오징어~.”
 
나는 오징어를 매우 좋아한다. 오징어라면 마른오징어부터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채소를 듬뿍 넣고 만드는 오징어 볶음의 물오징어,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구워내는 반건조오징어의 쫄깃함이 너무 좋다.
 
오징어엔 타우린성분이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인체 세포 대사에 필수적인 희귀미네랄 원소인 셀레늄도 다량 함유되어 있고 단백질, 인, 칼슘도 많이 포함돼 있다는데, 고지혈증이 있는 사람은 오징어나 새우 등 해산물을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어 속이 상한다.
 
육류보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지혈증이 있다 해도 오징어나 새우를 멀리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마른오징어를 구워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걸 매우 즐겼는데 언젠가부터 치아가 약해져서 딱딱한 마른오징어 씹기가 불편해졌다. 
 
그렇게 맛있는 마른오징어를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픈 상황이 되었다. 사람이 나이 들어 늙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나이 들어 이가 나빠져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는 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오징어가 싱싱하다니 한 번 내려가 보았다. 커다란 오징어는 세 마리에 5,000원이고 작은 오징어는 한 마리에 500원이다. 한 마리에 500원이면 정말 싸다. 작긴 하지만 데쳐서 먹기엔 작은 오징어가 더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니 맛있다. 큰 오징어 세 마리와 작은 오징어 열 마리를 사니 양쪽 손이 묵직하다. 
 
손질해 줄 수 없어 싸게 파는 거라고 생선 트럭 아저씨가 말했다. 좋아하는 오징어가 가득하니 좋긴 한데 이제 이것들을 손질하는 게 큰 문제다. 이 많은 오징어를 언제 다 손질한담? 싱크대에 놓고 바라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그러다 큰 오징어는 배를 가르지 않고 통으로 손질해서 전부터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던 오징어순대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실은 한 번 시도해 본 적이 있다. 결과는 실패였는데 정성껏 준비한 오징어 속을 욕심껏 너무 많이 넣어서인지 찜통에 찐 오징어순대는 밑으로 다 흘러나와서 순대의 모양이 아니었고 뜨거울 때 썰었더니 오징어와 속이 다 분리되어 오징어순대라 할 수 없게 되었다.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엔 속을 꽉 채우지 않고 밑 부분도 나무 꼬치로 야무지게 마무리해서 좀 식힌 후 썰어보기로 했다.
 
오징어순대는 강원도 속초에서 처음 맛본 음식이다. 오래전 속초에 놀러 가서 아바이 마을이란 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북에서 피난 온 실향민이 모여 거주지를 이루었다는데 이북음식으로 오징어순대를 만들어 팔기 시작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아바이 마을에서 맛보았던 오징어순대는 맛있었다. 아바이 마을에 가려면 그땐 배를 타고 이쪽저쪽 쇠고리에 연결된 줄을 승객들이 잡아당기면서 건너가야 했다. 
 
배는 갯배라고 불렀는데 매우 신기했다. 속초 바닷가에는 예전에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던 ‘가을 동화’ 광고판이 그때까지 서 있었다. 그 옆에서 아름답고 슬펐던 드라마를 떠올리며 잠시 감상에 젖어보기도 했다. 지금도 멋진 배우인 송승헌과 송혜교의 풋풋한 모습과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당시 펑펑 울며 시청했던 추억이 있다.
 
오늘은 집에 있는 재료로만 하려고 냉장고를 뒤져 남아있는 양파, 당근, 깻잎을 꺼냈다. 당면을 삶아 잘게 썰고 오징어 다리도 속 재료로 넣었다. 찹쌀밥을 해서 썰어놓은 재료와 달걀 한 개를 넣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해서 버무려 오징어 몸통을 채운 후 찜통에 쪘다. 30분쯤 찌니까 와!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오징어순대가 이번엔 성공이다. 식구들이 모두 근사하다고 칭찬해 주니 어깨가 으쓱하고 신바람이 나서 자주 해주겠다고 공언을 해버렸다.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니 고맙고 즐겁다.
 

<시니어리포터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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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박혜경 (sunny1004)
시니어리포터, 저도 당당히 참여하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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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정술 5월5일 오전 4:03
순대보다 순대국은 좋아하는데 오징어순대는 한번도 먹어본적이 없어서 오징어순대국도 가능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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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현 5월4일 오후 10:11
이빨이 선천적으로 약한 나는 피대기라는 반건조 오징어와 순대를 정말 좋아했지요.지금도 오징어 요리를 즐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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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라 5월4일 오후 3:56
오징어순대 맛잇게 만드셨네요 저도 가끔해 먹는데 맛잇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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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성하 5월4일 오후 2:06
성공하셨군요.
식구들도 맛있게 드셨다니, 더 좋으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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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익 5월4일 오전 10:34
참 어렸을 때는 없어서 못 먹고 이젠 먹을만한 시대가 되었는데도 노화로 먹지 못하게 됨은 참 먹을복이 없는 세대 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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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애 4월21일 오후 8:36
오징어 순때까지? 요리를 잘 하나봐요.. 엄두가 안 나는 순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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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4월21일 오후 6:24
맛있겠어요~~
맛있는 오징어순대를 먹어 본 적이 없어서인지 한번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저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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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4월21일 오후 12:10
오징어순대가 맛있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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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4월21일 오전 9:20
ㅎㅎㅎ 오래 살림을 했어도 새로 배워야 하는 요리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성공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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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주 4월21일 오전 9:06
맛있겠어요~~~글로만 읽어도 먹음직스러운 오징어 순대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정성은 많이 들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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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4월21일 오전 8:48
강원도에 놀러가면 오징어순대가 눈에 많이 보이지요. 집에서 만들어 먹음 더 맛나게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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