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그 속에 추억이
 
“어, 셀프주유소다. 기름 넣고 가자.” 여긴 좀 싸다 하며 들어간 주유소. 지난 주말에 김해로 가면서 지나다 주유소에 들러 주유도 하고 좀 쉬었다 갈 겸 이왕이면 하면서 셀프주유소로 진입. 우리 지역보다 기름 가격이 싸고 아주 그곳은 정말 분위기도 셀프였다. 우리 지역은 셀프 주유소다 해도 사무실이 있고 사람도 왔다 갔다 하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주유기만 몇 대가 있고 사람은 구경할 수 없었다. 주유를 다 하고 화장실도 갔는데 언제 관리했는지 너무 지저분했다. ‘아니다. 이게 셀프가 아닌데’ 하며 좀 더 신경 쓰면 좋을 텐데 싶었다.
 
주유하고 볼일을 보고 나오면서 이 주유소는 한번 가보고는 다시 안 가겠다 하는 생각이 들고 씁쓸했다. 우린 거의 셀프주유소를 이용하는데 우리의 셀프는 이것이 아니어야 할 텐데 싶었다. 나에게 오는 이들도 내가 찾아가는 이들도 모두 나한텐 셀프 주인공이지만 이렇게 씁쓸하지는 않을 텐데 싶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유하면서 기사님들과 주유소 직원 간에 오고 가는 말에 인심이 있는데 이건 그냥 주유하고 카드로 썩 긁고 영수증 출력되면 완료 그냥 말이 필요 없는 셀프 주유는 아주 적막하다. 그러니 인간미가 있을 수가 있겠는가.
 
난 1985년 2월에 학교를 졸업하고 주유소에 취업이 되었다. 그땐 주유소란 아주 바쁜 곳이었다. 주유도 하러 오지만 경주 지역은 가정 난방용 등유나 경유 배달이 많아 직원들 모두가 바빴다. 2월이었으니 아직 난방용 유류사용이 많아 직원들은 종일 배달을 하여야 했고 정말 바쁠 땐 직원이 다 나가고 사장님이 계시면 주유하러 오는 차에 주유해 주곤 했다. 정말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바쁘고 손이 딸려 겨울은 그야말로 아주 분주했다. 거기에 반해 여름철은 조용하니 주유하러 오는 차를 기다리는 좀 한가한 날들이었고 난 이곳에서 몇 년 근무했다.
 
근무한 지 6년이 지난 그때도 2월이었다. 난 주유소에 처음 입사했을 때도 주유소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거니와 대처도 참 힘들었다. 그래서 실수도 하며 일을 배웠는데 그것을 다 열거하려면 여기에 다 적기가 참 부끄럽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이 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하였고 어쩌면 하늘이 내려준 나의 선물을 만나기 위한 하늘의 작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 해도 난 웃음이 나에게로 온다. 
 
겨울엔 주유소와 정유 대리점은 그야말로 더 바쁜 시기다. 여느 때와 같이 근무하고 바쁜 일상이 되어가는 오후 시간에 포항 대리점에서 연락이 왔다. 평소엔 주문을 사장님이 직접 하시고 난 대리점과는 월말이 아니면 별로 연락은 안 하는데 그날은 바쁜 일이 있는지 직원이 전화가 와서 우리 주유소로 탱크로리가 가면 직원한테 대리점으로 전화를 해달라고 한 것이다.
 
요즘 같으면 개인 핸드폰이 있기에 그렇게 할일도 없었지만, 그땐 다 그렇게 연락을 취하곤 했다. 전화가 왔을 땐 ‘알았습니다’ 하고 전화를 받고선 막상 탱크로리가 우리 주유소에 왔을 땐 그것을 잊었고 당연히 기사님께 말씀을 드리지도 못했고 나도 생각이 안 났으니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탱크로리는 우리 주유소에 기름을 다 내리고 떠났다. 기름을 하차하는데도 30여 분은 걸리는데 왜 그것이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기사님이 사무실에 오셔서 기름 배달 오더장에 도장도 받아 가셨는데 전혀 그 생각이 안 났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지금도 난 웬만한 것을 다 기억하는데 이것은 정말 그냥 예견된 일 같았다.
 
퇴근 시간이 되어갈 무렵 사장님께 결재를 받고 있는데 포항 대리점에서 전화가 왔다. 받다 마자 여보세요도 못하고 ‘감사합니다 **주유소입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받아야 하는데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아가씨 집이 어디고? 오늘 밤에 가서 머리에 불 질러버린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하고 생각하니 아뿔싸 내가 잊어버렸네. “어머 제가 잘못했습니다.”고 해도 그 직원은 막무가내로 더 크게 ‘어떻게 하려고 아가씨가 연락을 안 해 주었느냐’고하며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 안 그러겠습니다.”고 해도 상대방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계시던 사장님이 전화를 받아 몇 말씀을 하시고 힘들게 마무리가 되었다. 마음이 찜찜하게 결재를 다 받고 퇴근을 하는데 이걸 어쩌지 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갔고 그날 밤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다음날 출근하여서도 내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그렇게 며칠 지나고 월말이 다가와 연락을 할 일이 있었는데 잊으려 하다 내가 먼저 죄송하다고 하니 그냥 말로 되느냐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하죠?’ 하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요?’ 하며 말하는 답에 난 어렵게 ‘경주 한 번 오세요. 밥 사드릴게요.” 하니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더니 며칠 후 경주로 오겠다고 한 것이다. 난 만나기 전에 통화로 나이를 몇 살 더 적은 것으로 이야기했는데 막상 만나서 그 직원이 나를 보더니 정말 아가씨 나이가 그러냐고 되물었다. 처음엔 그렇다고 하다가 그것도 들통 날까 봐 실제 나이를 말하니 어머나 동갑이었다. 만남의 장소는 그때 흔히 말하던 경주역 다방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어찌 그리 재미가 있었고 꾸밈이 없었을까.
 
난 나의 자존심도 있고 해서 식사 자리를 경주에서 그때 가장 높은 건물 레스토랑으로 정하고 그곳에서 가장 비싼 함박스테이크로 주문하고 어색한 자리이지만 첫 만남이 그렇게 진행되었다. 이야기 중 그때 나의 실수가 정말 큰 실수였다고 한 것이다. 나야 뭐 실감이 안 나지만 대리점은 그야말로 촌각을 다툰 일이었다나. 그래도 난 웃음으로 그리고 비싼 함박스테이크로 실수를 막아 버렸다. 그리고 그 직원은 나에게 씁쓸하게 밥 한 그릇에 다 용서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스운 건 그 날 밤 밥을 먹고 나서 나를 데려다준다고 한 거리에서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손을 잡았고 그때부턴 우리 사이가... 그리고 또 엄청난 추억들과 재미난 에피소드까지 남기고 일 년 만에 결혼하고 27년째 아들딸 낳고 잘살고 있다. 나의 실수가 이렇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더랍니다.’ 하는 아주 행복한 노래처럼 함께 잘살고 있다.
 
셀프주유가 혜택도 있고 잘 이용하는데 주유하며 옛날의 실수담을 회상했다. 그래도 지금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왜 그랬지 하며 말이다. 그래도 추억을 넘나들게 하니 감사하다. 이것보다 더한 즐거움과 추억이 자꾸자꾸 쌓여가고 있다. 지금의 삶도 30년 후엔 또한 추억으로 기억하겠지.
 

<시니어리포터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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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21일 오후 10:58
짝짝짝....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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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4월21일 오후 12:19
아주 재미난 인연으로 부군을 만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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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주 4월21일 오전 9:36
어머나~~~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재미있고 신기한 인연이네요! 해피엔딩이라 더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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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4월21일 오전 9:28
ㅎㅎ 재미난 인연으로 결혼에 골인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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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4월21일 오전 9:24
옛날 이야기 하니까 정말 스토리가 영화같네요. 지금 잘살고 있으니까 참 좋습니다. 앞으로도 더 행복하게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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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4월21일 오전 8:57
영화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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