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부모를 불편하게 하지 마세요!
[영화 ‘동경 가족’의 한 장면]
 
얼마 전 50년 이상 된 구참(久參)이 자궁적출 수술을 하기 위해 아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전철로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곳이지만 문병이란 피하거나 후일로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 늦은 나이에 환자복을 입고 병원 침대에 앉아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다. 그래도 수술은 잘 끝났고 용태는 그만그만해서 다행스럽게 여기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퇴원한 그를 집으로 보러 갔다.  
 
그런데 집안이 뜻밖에 썰렁하고 사람의 그림자라곤 친구와 그의 남편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사정을 듣고 보니 아들 며느리는 이미 다녀간 뒤였으며 간병인 아줌마는 낮 근무를 마친 터라 돌려보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나는 내 일도 아닌 친구 일에 이상하게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서 보았을 땐 막 수술실에서 나온 어머니를 더할 수 없이 자상하고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거로 보이던 아들과 며느리였다. 아들은 개인사업으로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고 며느리 또한 아이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 그다지 특별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상태라는 걸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새 며칠이나 지났다고 나이든 부모 곁을 비워놓은 채 돌아가고 말았을까. 영 마땅치 않았다. 
 
돌봐줄 간병인이 있는 주간에는 굳이 와있을 필요가 없겠지만, 손님처럼 다녀가 버리고 만 듯한 자식들이 좀 야속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쓰였다. 병이란 흔히 낮 동안엔 좋아 보이다가도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갑자기 나빠질 수도 있지 않은가. 병원도 닫힌 시간인 데다 약국도 물론 열려 있지 않다. 자식들은 아직 거기까진 살피지 못했으리라 이해가 되면서도 걱정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나이 든 부모와 자식 사이는 불편해지기 쉬운 관계인가 보다. 세대 차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거의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식의 의견은 부모와 다를 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최악의 경우엔 자신이 옳다는 자식의 신념은 본의가 아닌데도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단지 다르다는 의견 하나로 부모와 자식이 충돌하게 될 경우, 어떤 형식으로든 의견의 불일치라는 일종의 기 싸움은 둘 중 어느 한쪽이 완전히 멈췄을 때라야만 끝이 난다.
 
얼마 전 나와 딸 사이에도 며칠 전 주방에서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아침밥 대신 우동을 먹는다기에 냉장고에 양념해둔 고기를 냄비에 넣어주었다. 나중에 들으니 딸은 단순히 우동 다시만 넣은 맑은 우동을 먹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딸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대뜸 꽤 많은 양의 고기를 냄비에 넣어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편안해 보이던 딸인데 문제는 그 후였다. 눈치도 모르고 큼직한 당근 한쪽을 더 넣어주려다 사달은 커진 것이다. "엄마, 이건 아니잖아요?" 딸은 당근이라면 자다가도 경기가 날 만큼 끔찍해 한다는 생각이 났다. 평소 짜증을 내지 않는 딸인데 의외의 반응에 나는 그만 놀라서 주방에서 나오고 말았다. 
 
여간해선 큰 소리가 나지 않아 화목한 집안으로 알려져 있는데 식전에 이런 일을 벌이고 만 나로서는 남편 얼굴 보기도 민망하단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간단했다. '싫으면 싫다고 처음부터 거절했거나, 싫은 당근은 그냥 빼놓고 먹어줬더라면 이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았을 거 아니냐'고. 하지만 아침의 일은 일방적으로 나이 든 어미의 반 강요식의 행위였으니 내 과오가 분명했다. 
 
 
그때 문득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일본의 작가 기시미 이치로(岸見 一郞)가 이번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아들러 심리학을 적용해서 쓴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는 책이다. 내가 나이든 부모의 입장이고 보니,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켠에 찌르르, 통증이 왔다.
 
아들러 심리학이란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인 노력으로 어릴 때 박힌 뿌리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극도로 불안한 심리 상태라도 긍정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장시간에 걸쳐 적응 습관을 익히면 고칠 수 있으니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방법으로 꾸준히 익혀가다 보면 아무리 부정적인 생각과 완강한 고집을 가졌다 해도 좋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좋은 인간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은 직장에서도 환영받을 뿐 아니라 존경받고 사랑받는다.’ 책은 비단 부모와의 관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만한 내용을 싣고 있다. 물론 무작정 타인의 말을 따르라는 게 아니다. 일단 마음을 열고 타자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권유한다. '상대방을 움직이고 바꿀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은 바꿀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것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우리나라의 많은 아들이 그렇듯이 저자인 그도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주먹으로 뺨을 몇 대 맞은 뒤 스스로 아버지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털어놓았다. 그 당시의 부자 관계는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였다니 최악의 최악인 셈이다. 그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5년 동안 간병하면서 최악이던 부자간의 관계가 오히려 점점 나아진 경험담을 각각 일화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들 스스로 그렇게 말할 만큼 최악이던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가 어떻게 100점으로 호전됐는지 궁금해질 즈음 시원하게 해답을 보여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간 지 6개월 만에 25세의 나이로 그가 결혼한 이유도 아버지와 같이 한집에서 지내야 할 고통이 컸기 때문이다. 사실 책은 그런 부자가 과연 어떻게 화해했는지에 대한 기록 그 자체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부자간의 관계 개선은 시니컬하게도 아버지의 치매로 기인했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가 말했다고 한다. "잊어버린 기억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그 덕분일까, 아버지가 임종할 때는 두 사람 사이가 100점이 됐다.
 
대체로 부모는 거의 모두 자식 앞에 키를 낮출 대로 낮추게 되어 있는 약한 존재들이다. 부모가 스스로 작아진 모습을 볼 때 자식은 회개하게 되어 있다. 기시미 이치로는 비교적 착한 아들이었다는 증거가 글 여기저기에 드러나 있어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한때 아버지가 한 신흥종교에 빠져 그 모임에 동행하기를 강요했을 때에도 거절하지 않고 선뜻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그 종교를 실제로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동참하는 것이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충고를 잊지 않았다. 상대방의 뜻을 존중해 보라는 이야기 외에도 특히 ‘나이든 부모님을 불편하게 하지 마라’라는 말이다.
 
지난번 나와 딸에게 생긴 사소한 트러블만 보아도 내가 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딸에게도 제 뜻을 밝혀 말할 권리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이따금 걸림돌이 되어오곤 한 의사소통의 부족을 이번 일로 돌아보면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되어 다행이다.  
 
대소를 막론하고, 호오(好惡)라는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 내 의도대로 상대에게도 따르길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자식을 이기고 싶은 부모는 많지 않다. 사실 이길만한 힘도 없다. 때로 그들에게 한없이 미흡해만 보이는 부모라도 자식은 그 부모의 나이가 되어 보아야 부모의 참뜻과 행동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옛말에 전생에 지은 허물이 많아 부모로 태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랴, 자식은 부모의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임을. 사랑은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인내다. 부모에겐 애물단지이면서 전부인 존재가 자식이라는 이 크나큰 모순, 불변의 이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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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이승필 (clara)
'우리' 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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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정술 4월27일 오후 11:18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있듯이 품안에 있을때 자식이지 머리 크지면 자식에게 져줘야 부모자식간에 원만해 지는 세상이 된것 같습니다. 슬프지만 어떻하겠습니까. 요즘 삶의 현실적인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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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8일 오전 10:10
영원한 볼모가 부모 아니겠어요? 그런데 실은 자청해서 섬기는 자라고 할 수 있으니 유구 무언이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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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익 4월27일 오전 9:54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이 참 많이도 바뀌었습니다. 옛날 제 외할머니 돌아 가셨을 때도 외삼촌이 3년상 할머니 산소
앞에서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큰일 이라면 농사였는데 지금은 3년상 한다면 일반 생활하기가 무척 어려울 겁니다.
어머니 대신한 누님이 서울에 혼자 살고 계시는데 걱정이 되어 부산에 함께 있자고 해도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걱정이 만약 응급 사항이 생기면 부산서 마무리 빨리 가도 3시간 반은 걸리는 거리입니다. 부산 같으면 1시간 이내 모든것이
정리 될것임도 불구하고........... 오즉하면 그 싫어 하던 휴대폰 하나 싸서 사용방법 기록, 통신비 동생이 내어도 알지 못하게
거의 무료로 준비 된것 같이 하면서 비상용으로 전달 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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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7일 오후 8:51
휴대폰 장만 해드리길 참 잘하셨습니다. 어머니 대신한 누님이니 오죽이나 심려가 크실까요? 그래도 일단 임기 응변용 연락이 가능해지셨으니 너무 걱정하시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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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순 4월22일 오후 7:16
나이들었다고 내 부모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잘 해드린 게 없고 애틋해서 눈물만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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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3일 오전 9:39
다 늦은 후회도 일단 후회로 치부될 게 분명합니다. 애틋한 눈물 많이 흘리면 감정의 정화작용에 도움이 크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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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환 4월21일 오후 10:24
자식과의 관계, 참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애들은 고집이 세다고 할까요, 자기주관이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자기들도 시집가서 애도 나보고 하니 이제는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다만 자식은 애물단지면서 전부인 존재란 말씀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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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11:11
어쩌겠어요. 부모는 영원한 볼모, 믈렁탱이 ... 스스로 가슴에 단 애칭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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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4월21일 오후 9:18
부모 자식 간이야말로 '사랑의 기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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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11:10
맞네요. '사랑의 기술', 거기에 '양보와 배려' 까지 더하면 Full Mark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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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4월21일 오후 2:33
나무는 서 있으려고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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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6:39
때론 그 바람을 따라 넘어지는 편이 났지 않나 여겨지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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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4월21일 오후 12:13
나이 든 부모님을 이해할 나이가 되고 보니 벌써 떠나고 곁에 안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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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6:37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 과오를 갚는다는 의미인 것처럼 우리는 오로지 자식만 위해 사는 모양새가 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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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애 4월21일 오전 9:47
참으로 어려운 관계지요 대강 지나다 보면 서운해지기 일쑤에 조금 더 맘 쓰려하면 선을 넘고마니...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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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6:31
왜 아니겠어요. 잘 나가다 싶다가도 덜컥 생기는 트러블들. 수련하는 기분으로 더욱 더 노력해야지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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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주 4월21일 오전 9:26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한 강자요, 짝사랑의 대상이지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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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6:29
영원한 강자란 말, 오늘 저는 영원한 승자?로 바꾸어봅니다. 두 사랑을 굳이 따지지 않고 주고만 싶은 마음인데 ...그걸 알게 하는 헌신적 노력이 저에겐 아직 미흡한 거죠. 봄날을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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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4월21일 오전 9:18
전생에 큰 빚을 진 관계가 부모자식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있지요. 그저 빚을 갚는 마음으로 참아주고 기다려주며 살아야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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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6:24
'채무자'라는 말,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ㅎㅎㅎ 갚아야할 빚 치곤 꽤 상당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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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4월21일 오전 8:44
위하여 해준다는 폼이 영 아니올시다로 되어버렸으니 참 애석합니다. 곁에 계셔서 힘이 되시는 어르신들... 불편하게 하지말라는 뜻은 심오한 영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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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6:16
대체로 그런 것 같아요. 원인은 각각 다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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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6:21
예, 내 뜻을 먼저 강요해서지요. 참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해주면 그보다 고마울 때가 없겠지요. 늘 서로 조심하는 게 수순인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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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4월21일 오전 8:42
자식이 가장 어려울때가 있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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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4월21일 오후 6:18
그런 것 같아요.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요. 원인도 각각 다를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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