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국과 어머니 생각
 
전화기가 연달아 울린다. 어서 받으라고 성화다. 시계가 아침 10시를 조금 지난 시간을 달리고 있다. 써야할 글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마음으로 읽는 시' 칼럼에 넣을 원고를 쓰다 밀어놓은 터라서 조금 쫓기는 기분이다. 070 낯선 번호다. 이 시간쯤이면 늘 울리는 통신사 전화거나 대부업체 전화가 틀림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혼자 놀고 있어라. 서둘러 어젯밤 비가 다녀간 텃밭으로 갔다. 무엇보다 처음 심어본 아욱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키 자랑을 한다. 비에 쓸려 뽑혀나가진 않았을까 마음이 초조했는데 다행히 별 탈 없었다. 20여 cm씩이나 웃자란 아욱은 간격이 좁아서 이대로는 숨을 쉴 수가 없으니 어서 솎아 달라고 아우성이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고구마와 감자를 주로 심었다. 처음 해보는 장사, 그것도 귀동냥으로 걸음마에 불과한 일에 이문까지 두둑히 챙길 생각을 했다면 그도 천하에 큰 도둑일 터다. 단지 다 저문 나이에 갖고 놀만하게 만만한 장난감을 잃어버린 우리의 소일거리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방법들을 참고해 씨를 뿌리고 나서 단 며칠 동안 잊은 듯 내버려두었다가 불현듯 들여다보면 참 신기하다. 씨앗을 뿌린 자리마다 거의 예외없이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바쁜 저 신통한 채소들. 마음 없이 단지 세상의 얄팍한 눈으로만 보는 이들에겐 볼품없어 보이겠지만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갸륵하고 씩씩한 것들이다. 가히 위대한 생명을 증명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엊그제 옮겨 심은 호박 포기에 엉성하게나마 내 딴엔 재주를 부려 볕가리개를 만들어 주고 돌아서면서 구시렁거렸다. "너무 애쓰지 마. 햇빛과 바람 그리고 비가 알아서 너희들을 잘 키워 줄테니..."
  
작년과 달리 올해는 작물을 바꾸었다. 올해는 방울토마토, 상추와 쑥갓 대신 고구마와 감자를 많이 심었다. 내심 농사꾼 초년생 딱지를 떼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해 거기서 하라는 대로 흉내를 내는 데도 사실 쉽지 않았다. 2~3주 전부터 흙을 뒤엎어서 비료를 주고 검은 비닐을 사다가 흙을 밭이랑 위를 덮어놓은 지 2~3주쯤 지나 드디어 고구마를 심었다.
 
처음이니 심으면서도 불안했다. 그건 씨가 아니니 딱히 부르기가 만만찮아 '씨고구마'라고 했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핀 감자꽃을 우린 무작정 좋아라 감상하기 즐거웠는데 알고 보니 그것도 넌센스였다. 원래는 꽃피기 전 봉오리일 때 따주어야 땅속 감자의 씨알이 굵어진다는 것이다. 눈뜬 장님의 농사짓기란 갈수록 태산이다. 그제서야 허둥지둥 무참하다 싶은 마음을 무릅쓰고 가위로 꽃들을 잘라냈다. 
 
들고 나간 바구니 한가득 솎아낸 아욱들을 냉장고에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 옛적 강진으로 유배간 정약용(丁若鏞)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향리(鄕里)에 살면서도 과원(果園)이나 채소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천하에 그처럼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그는 두 아들에게 채소밭을 잘 가꾸는 요령을 구구절절 일러줬다. 채소밭은 평평하고 반듯하게 해야 하며 흙을 다룰 때는 할 수 있는 한 잘게 부수어야 되고 깊이 파서 분가루처럼 보드랍게 하라고 일렀다.
 
정약용은 제자인 황상(黃裳)에게도 마찬가지로 말했다. 채소밭을 수면처럼 매끄럽게 고르고 다듬어놓은 뒤 종류별로 채소를 잘 구분해 심으라고. 씨를 뿌릴 때에도 고무래로 흙을 곱게 부셔 놓아 싹이 날 때를 대비해 맨질거리는 비단 무늬처럼 되게 만들도록 소상히 귀띔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게 정성껏 만든 채소밭에 첫번째로 아욱을 심으라고. 아마도 그도 생전의 우리 어머니만큼 아욱을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며칠 전 텃밭의 잡초를 뽑고 있는데 지나가던 모녀가 멈추어 서서 '참 농사를 잘 하셨네요"라고 말을 건네며 유심히 밭을 보더니 "문 닫고 먹는다는 아욱국도 끓이시겠네요" 라며 웃었다. 중국의 시인 두보(杜甫)가 증손인 두재(杜濟)에게 보낸 '시종손제(示從孫濟)'에 나오는 시에도 아욱을 가꾸는 요령을 일러주는 구절이 보인다. 일가 친척과 돈독하게 지내라는 당부에 곁들여 담은 시의 서두를 이렇게 썼다. "아욱을 벨 때에는 손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 손을 함부로 놀리면 아욱의 뿌리가 상한다 / 아, 할아비는 게을러진 지가 이미 오래 / 어린 자네의 행동이 분명하게 느껴지는구나."
 
듣고 보니 이처럼이 영양가가 많으면서도 도시에서는 자칫 구하기 쉽지 않은 채소가 또한 아욱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조선증보구황찰요>에서는 "아욱은 채소 중에 으뜸이며 1년 내내 반찬으로 소비한다. 잘 자라는 데다 가뭄을 잘 타지 않아서 맛이 달고 독이 없어 흉년을 방비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춘천은 생각할수록 유년의 시간을 더없이 풍요롭게 살찌워준 고마운 곳이다. 그 때 비가 자주 내리는 장마철이면 어머니는 아욱국을 끓이시곤 했다. 나는 곁에 앉아서 어머니가 아욱 줄기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시는 걸 도와드리곤 했다. 어머니는 "이걸 벗기지 않으면 맛이 없다기보다 질겨서 먹을 수가 없다"고 일러주시던 기억이 마치 조금 전 일처럼 생생하다. 그렇게 오래 전 어머니의 된장 아욱국엔 내가 짐작하기론 멸치를 넣으신 걸로 알고 있다. 손으로 아욱을 잘 치대야 먹기 좋게 줄기들이 부드러워진다는 것과 아욱 특유의 풀냄새와 약간 떫은 맛도 없앨 수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해준 어머니다.
 
큰언니가 시집가서 처음 아욱국을 끓였다고 어머니께 전화하던 일을 떠올리며 아욱국을 끓인다. 하나하나 메모해둔 것들을 챙겨가며 국을 끓였어도 초보 신부였던 언니는 아욱 줄기를 벗기지 않은 채 넣었다고 어머니께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조선 된장을 넣어야 하는데 일반 된장을 넣었다고 한 번 더 주의를 들었다는 것이다.
 
솎아온 아욱을 다듬어 넣으며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아욱국을 끓인다. 마치 처음 보는 아욱국처럼 식구들이 들떠 보이는 이유도 단 한 가지다. 이 아욱이 올해 우리 집의 첫 수확이기 때문에 유독 의미가 큰 것이다. 멸치 대신 보리 새우를 반 컵 넣었을 뿐 나머지는 옛적 어머니가 하신 그대로 끓인다. 두번째 받은 쌀뜨물로 끓이는 것도 잊지 않았으니 아마도 70~80점짜리는 충분하지 않나 싶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어째 국 맛에서 우리 막내 냄새가 나더라 했지"라고 하셨을 것 같다.
 
마침 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식탁 한 켠에 어머니 몫의 국 한 대접을 퍼놓을 생각에 가슴이 벌써부터 방망이질을 한다. 아욱국은 서리 내린 뒤 가장 영양가가 높다지만 이맘때 아욱국도 그에 못지않게 좋다고 하니 미리 먹어두고 다가올 삼복에 대비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름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르긴 하지만 말이다.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아욱 된장국이 달래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시니어님들께도 문 닫아 걸지 않고 아욱국의 진미를 대접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뜨겁다, 이 아욱국처럼 말이다.
 

<시니어리포터 이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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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이승필 (clara)
'우리' 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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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장현덕 6월24일 오후 11:08
저도 아욱국을 참 좋아해요. 이 글을 늦게서야 보네요. 선생님 글을 무척 기다렸는데 우연히 발견해서
선생님 글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네요.
선생님 무릎은 어떠신지요? 부지런히 무릎강화 운동을 하셔서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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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6월20일 오전 8:58
사진 속 파릇한 아욱 잎에서 왜 한 번도 뵙지 않은 영란님의 모습이 떠오르죠!? 그래서 영란님의 글 읽는 재미가 더 쏠쏠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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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6월19일 오후 12:51
아유! 아욱이 예쁘게도 자랐네요. 보기만해도 건강해지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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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6월19일 오전 10:59
저희 엄마도 아욱국을 아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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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6월19일 오전 10:30
菜蔬중에 으뜸 아욱!!!..........시어머님께도~~~ 훌륭한 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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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6월19일 오전 9:53
바쁘신 중에도 아욱을 잘 키우셨습니다. 아욱에 이렇게 영양가가 많은 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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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6월19일 오전 8:17
아욱을 예쁘게도 키우셨네요. 아욱국 끓이면서 어머니 생각 많이 하셨군요. 그나저나 장마 오기 전에 감자도 캐야 하고 아욱도 미리 잘라다 살짝 데쳐 놨다가 된장국도 끓이셔야 하는데 팔을 다치셔서 어쩐대요. 더위에 고생되겠지만 게으름도 피우면서 빨리 완쾌되도록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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