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총각
 
“♪8시~통근 길에 대머리 총~각 오늘도 만~나려나 기다려지네♪’ 이것은 가수 김상희 씨의 히트곡 대머리 총각이라는 노래 가사의 첫 소절이다. 길을 지나는데 가게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와 불현듯 옛 생각이 났다.
 
요즘은 전철에 경로석이 있고 임산부석이 있어서 젊은 사람이 경로사상을 경로석에 책임을 돌려 자리 양보는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르신은 어르신끼리 경로석에서 해결하세요’ 이런 생각이다. 그래서 자리에 앉으면 자리 양보가 거의 없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나이 드신 분을 보면 자리에서 일어나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전철에 경로석이 없던 오래전 일이다. 나는 전철을 타고 안양까지 출퇴근하였다. 집이 마포구 대흥동이라 공덕역까지는 한 정거장이라 버스비가 아까워 걸어서 갔다. 늦으면 열차 시간 맞추러 뛰기도 하였다. 신길역에서 환승하고 명학역까지 갔다. 전철 운행 횟수가 많지 않아 늘 만원이었다.
 
겨울철엔 날씨가 추워 견딜 만했지만 여름철엔 정말로 지옥철이었다. 땀 흘린 몸이 서로 닿고, 짜증을 부리며, 심하면 싸움까지 해가며 그렇게 출퇴근을 했다. 지금은 6호선 대흥역이 있어서 안양 가기가 쉽지만, 그때 당시는 전철 노선이 많지 않았다. 1호선을 헐레벌떡이며 겨우 환승했다. 운 좋게 자리에 앉았다. 편안한 자세로 몇 정거장을 갔다. 
 
내 앞에 머리카락이 적은 어르신이 나에게 등을 보이며 서 계셨다. 어르신 앞에 앉은 청년은 일어나 좌석을 양보할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았다. 환자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사연이 있겠지. 꼭 어린 사람만 양보하라는 법 있나? 내가 양보해야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하며 좌석을 양보하였다. 
 
그런데 어르신은 못 들었는지 안 움직이신다.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했다. 아니 이럴 수가? 김상희 씨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딱 그 경우에 맞는 대머리 총각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 젊은 총각도 당황했다. 주위 사람들도 당황하고 일부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순간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를 재빠르게 생각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지며 이 상황을 수습할 방법은 머릿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어쩔 수 없이 목적지는 아직 멀었지만 할 수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최선인거 같았다. 누가 묻지 않았어도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립니다.” 하고 내렸다. 순간적으로 생각하기를 다음 열차를 이용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다음 열차는 한참 후에 오니 기다릴 수 없어 있는 힘을 다해 뛰어서 두 칸 앞에 탔다.
 
이제야 마음 편한 안도감이 돌고 생각할 여유도 생겼다. 사실 이런 곤란한 경우를 일으키려 한 것은 정말 아니었다. 그 총각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내가 생각을 해도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그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하였다.
 
한번 실수에 편히 갈 수 있는 좌석을 잃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 왔고 혹시 빈자리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까 내 앞에 있던 그 대머리 총각이 자리를 이동하여 내 앞에 다시 서 있었다. 그 총각도 그 자리가 그냥 있기에 불편하였을 거다. 그래서 나처럼 자리를 옮겼다. 반대쪽 열차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나와 같은 위치로 왔을까. 그 총각도 또 당황하고 나도 또 당황했다.
 
나는 또 두 칸 앞으로 다시 이동하였다. 이제는 앞으로는 더 갈 곳이 없었다. 만약 다시 이동한다면 뒤쪽으로 가야 한다. 이 무슨 죄 아닌 죄인가. 어르신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자리를 양보하려고 한 게 이렇게 큰 죄인가? 그다음 날 출근을 하면서 혹시 만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다행히 안 만났다.
 
그렇지만 ‘오늘은 혹시 만날 수도 있을지 몰라’ 이런 염려가 당분간 이어졌지만 만나진 않았다. 그 일은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지워져 갔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새 달력으로 바뀐 날 당황할 만남이 이루어졌다. 누구지? 안면은 있는데 저쪽 사람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은데 내가 내릴 역이 가까워져 오는데 누군지 생각이 안 났다.
 
문이 열리고 나는 내렸다.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때 그가 누군지 생각이 났다. 뒤를 돌아다 봤지만, 전철은 이미 속도를 높이며 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대머리 총각이었다. 내가 그를 빨리 못 알아 본 이유는 그의 머리에 가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발 쓴 그는 어르신이 아니었다. 훤칠한 총각이었다. “그때 정말 미안했어요.” 이미 수원 쪽으로 멀리 가버린 전철을 향해 나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젊은이들이여! 경로석이 있고 임산부석이 있어도 경로사상을 발휘하여 자리 양보 잘합시다.”
 

<시니어리포터 황 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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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황 영태
사랑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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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길성하 6월28일 오후 1:18
인연이시었나 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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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28일 오후 1:24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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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술 6월28일 오후 12:10
ㅎㅎㅎ 당황했다는 경험을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마 그 경험으로 그 대머리 총각은 가발을 쓰게될 동기가 되지않았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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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28일 오후 1:23
네 그런거 같아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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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현 6월28일 오전 10:19
요샌 젊은이들이 대중교통을 오를땐 먼저 빈자리부터 찾아요.아마 스마트폰 때문인거 같아요.그래도 제대로 된 젊은이는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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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28일 오전 10:26
맞아요 다는 아니지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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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6월24일 오후 10:25
재미있게 글을 읽고 갑니다. 가발이 있어 좋은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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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24일 오후 10:41
네 그렇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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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애 6월24일 오전 11:01
아 그런 일들이 가끔 있지요....살아가면서 그런 앙금 없는 웃음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으면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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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24일 오후 10:40
네 악의는 전혀 없었어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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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6월20일 오전 10:42
ㅎㅎ 당사지인 총각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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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21일 오전 9:14
사실은 제가 더 당황 했어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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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옥 6월19일 오후 11:03
황선생님 덕에 가발 총각이 되었습니다. 그 총각도 지금은 아저씨가 되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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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20일 오전 8:28
아마 그렇게 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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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6월19일 오전 10:49
두분다 멋쩍으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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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19일 오전 10:52
그당시는 죽을 맛 이었지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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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6월19일 오전 10:12
............지금도 8시에 출근 하시나요? 불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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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19일 오전 10:16
글쎄요? 구형이라 신형 하고는 좀 차이가 있을것 같아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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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6월19일 오전 9:27
ㅎㅎ 대머리이면 나이가 들어보여서 어쩔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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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19일 오전 9:30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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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6월19일 오전 8:06
하이고...참...얼마나 황당하셨을까요?
그런데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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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영태 6월19일 오전 9:29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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