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든 것에 관한 소고(遡考)

 

 

용문사 가는 날이다. 그곳에 여러 번 다녀왔어도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다. 어느 곳이라도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키니까. 거기에 푸른 기상으로 의연하게 서 있는 노거수를 만날 생각에 설렌 가슴으로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긴다. 손전화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뭔가 허전했다. 후다닥 가방을 샅샅이 뒤지길 몇 번째인지 모른다. 손전화가 없어진 것이다. 커버 안쪽에 끼워 둔 신용카드와 비상금까지. 침착한 행동과는 달리 머리는 제 기능을 놓아버린 채 널따란 허공을 헤맨다.
 
갑자기 까막눈이 되어버린 것처럼 답답하다. 시냇물이 흐르듯 맑고 경쾌한 마음에 탁류가 범람한다. 신록 예찬이 쑥 들어갔다. 용문사를 감상하는 눈길도 시들하다. 필요악인 문명의 이기에 휘둘린 일상을 실감한다. 진정으로 원하지 않은 것이 우정 비워둔 여백을 점령해서 삶을 구속하는 모순이다. 마치 강한 자의 지배를 받아 거기에 물들고 길들어 자기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두 해 전 여름이다. “상연아, 나 사고 쳤다” 낭패감에 젖은 친구의 목소리가 전선을 타고 흘러들었다. 난 순간적으로 남편과 해묵은 감정을 풀려고 애써 자리를 마련했는데 봉해진 채로 그냥 두느니만 못했노라고 하소연하던 일이 떠올라 ‘결국 끝까지 가고 말았구나.’ 하고 지레짐작했다. 어두워진 내 심경을 읽었는지 그녀는 푸드덕 웃으며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어. 겨우 네 번호만 떠올랐네. 사진이랑 그 밖의 것은 어쩌면 좋아?” 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주절주절 한숨으로 풀어놓았다. 그러니까 푸념의 요지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란 말인가.
 
헤르만 헤세가 그의 저서 <정원 일의 즐거움>에서였던가. 나무를 손질하는 가위를 잃어버리고 무척 아쉬워했던 대목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 헤세와 고락을 함께하는 동안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린 편안하고 고마운 애장품이었다. 수십 년 전에 읽은 내용인데도 그 심경에 흠뻑 젖어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친구도 그 기계에 길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으면서도 헤세의 전지가위만큼 안타깝고 소중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진심으로 나름의 의미를 담은 위로의 잔을 높이 들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한가로운 시간을 위하여……!”라고. 그녀는 시와 음악과 여행을 즐기는 전업주부라서 일체유심조가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의외로 시큰둥했다. 모든 것을 즉각 해결해주는 기계에 빠져 살더니 영혼 없는 가슴이 되었나. 지나친 반응이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 로봇 무리가 괴성을 지르며 몰려오는 장면이 뇌리를 강타했다.
 
나는 속으로 그랬다. ‘여태껏 알고 있는 정보도 마땅히 활용하지 않았고 수많은 인연을 맺었으면서도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한 굼뜬 행로였는데, 무엇을 더 보태려고 안달하겠는가. 빽빽하고 화려한 계절의 풍성함도 좋지만 다 벗어버린 계절의 고졸한 여백도 얼마나 좋은가’라고.
 
그런데 이제 모바일이라는 첨단 매체에 어느새 길들어 그때 친구의 심경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생각은 온통 분실의 경위를 헤집고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어디에 놓았을까. 친구가 용문역에 내려서도 손에 들고 있는 걸 보았다고 한다. 버스를 갈아타고 용문사에 내린 걸음부터 유추의 시작점으로 찍고 용문역까지 거슬러 멈추었던 곳을 머릿속으로 점검한다. 버스 안일까. 버스터미널 대기실일까. 아니면 용문 전철역 화장실일까. 불확실성을 되짚어보는 머리가 헝클어져 순조로운 작동을 거부한다. 왔던 길을 되짚어서 용문역으로 갔다. 짐작 가는 곳을 다 둘러보고 분실물 센터에 가서 확인해보았지만 허사였다. 일단 가족에게 알리고 폰과 카드를 분실 신고했다.
 
불과 수개월 사이, 국내외 배낭여행에서 포착해온 대량의 사진이 날아갔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안전장치라도 해놓을 걸 그랬다. 이쯤에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묶인 것에서 풀려난 해방감에 만세를 불러야 할 텐데. 길든 만큼 치러야 하는 고약한 심적 부작용이 여기서도 발발하는지 그게 아니었다.
 
스마트폰으로 바꾼 시기와 연유는 친구의 권유로 유어스테이지 회원이 되고 난 올 연초 무렵이다. 젊어서부터 유독 산과 오지 여행을 좋아하고 골방에 들어앉아 무엇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유롭게 살아온 성정 탓인지 그동안 첨단기기를 멀리해왔다. 특별한 고집이나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이 가는 길에 편승하지 않아도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어떤 약속이나 시효가 있는 사안이라면 몰라도 천천히 생각하고 유행에 무관심한 게으름뱅이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해가 중천을 벗어난 오후 세 시다. 다시 용문사로 향한다. 해학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사천왕과 눈 맞춤을 하고 경내를 차분히 돌아보며 심호흡을 한다. 뒷산의 높이를 의식한 가람배치가 넉넉하고 가지런하다. 그 심오한 그늘에서 마음을 빗질하며 심신의 평안을 가로막는 상념을 지워간다. 한층 길어진 그림자를 밟으며 돌아서는 길. 스마트폰을 다시 생각한다. 어차피 사회적인 동물인데 문명의 이기를 원천봉쇄할 수는 없는 일. 무엇이든 이왕 함께할 것이라면 역기능은 가지치기하고 순기능을 잘 살려서 여생을 활기차게 걸어가는 도구로 삼아도 좋으리라. 수백 년 비바람 속에서 노거수가 된 은행나무가 푸른 옷소매를 팔랑인다.
 

<시니어리포터 김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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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김상연
2017년 새내기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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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조태현 7월20일 오전 9:49
하루가 멀게 새로운 통신수단이 나오고 개발되니 한걸음 물러서서 보게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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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20일 오전 10:27
저는 따라가기가 숨이 차서 아예 멀찌감치 물러서서 편안하게 지낸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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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기 7월19일 오전 9:24
휴대폰 없이 외출..불안하기만 한세상이지요. 용문사 산행 멋진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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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20일 오전 10:25
저는 지극히 아나로그적 성품인데 막상 엄청 속상하고 불편하더라구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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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호 7월18일 오전 6:43
휴대폰 ... 맨날 허구헌 날 곁에 두고 생활하는 우리들의 모습들입니다.
거리에서나 버스에서나 어디든 우리의 그 모습들을 쉬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개인의 모든 것이 그 안에 다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데 ...
아픈 마음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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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18일 오전 10:30
네. 위로가 되는 댓글, 진실로 고맙습니다. 건강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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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7월17일 오후 11:32
중요 사진을 개인 카페에 보관하세요. 폰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까 돌아오지 않을겁니다. 요즘 커뮤니티 코너에 빠져서 여기는 잘 안오네요. 늦은 귀가로 댓글 쓸려니 띵똥 할까봐 걱정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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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18일 오전 10:29
돌아오지 않아서 새로 해서 가지고 다니는데 신경이 바짝 쓰이는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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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7월17일 오후 10:23
속이 많이 상하셨겠습니다. 힘내세요. 요즈음 스마트폰 집어 던졌다고 아쉬워 다시 집어드는 물건이된지 오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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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17일 오후 10:27
네. 그럴게요. 밤 늦었는데도 댓글 다시는 성의가 대단하십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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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7월17일 오후 1:46
푸른 기상!..............푸른 옷소매도 팔랑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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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17일 오후 4:55
댓글이 늘 활기찬 기운이 넘치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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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7월17일 오후 1:03
우리가 편리하게 사는 대신 챙겨야할 게 늘었지요. 특히 글과 사진은 사라지면 기억 나지도 않고 그날로 끝이지요. 설마하지 말고 귀찮아하지도 말고 만약을 위해서 글과 사진은 비공개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어 저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더라요. 오래도록 속상하시겠지만 잊고 더 좋은 사진 찍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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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17일 오후 4:54
따뜻한 댓글 위로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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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옥 7월17일 오전 10:53
잠깐 상가에 가더라도 휴대폰을 두고 가면 서둘러 일 보고 걸음이 빨라집니다. 휴대폰이 없다는 상상을 하면 암흑과도 같을 거라 여겨집니다. 이제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찰싹 붙어 다니는 이 문명의 이기를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그나저나 그 많은 추억 보따리를 몽땅 날렸으니 안타깝네요. 중요한 파일은 따로 '클라우드' 등에 보관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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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7월17일 오후 12:15
정말 속상하고 또 폰이랑 카드랑 다시 만드느라 번거로웠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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