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완성
 
며칠 전 여수에서 친구 J가 왔다. 전날 통화에서는 12시경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일찍부터 서둘러 일어나 그녀를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일단 스마트폰을 켰다. 하지만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하겠다니 갑자기 널널해진 아침이 돼버렸다. 이럴 때 ‘그럼 좀 더 자야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불행히도 내겐 그런 능력이나 자질이 아예 없다. 
 
3시간 남짓 동안 뭘 하며 보내는 게 제일 영양가 있을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 뒷날로 미루려던 청소를 시작한 것이다. 허겁지겁 청소를 마치고 샤워까지 하고 나니 J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내가 미리 일러준 대로, 터미널 도착 전인 우리 집 근처의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하차한 것이다. 
 
물기가 뚝뚝 흐르는 머리인 채로 집을 나서면서 택시를 잡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가 안 잡힌다. 미리 콜택시를 불렀어야 했는데 말이다. 시외버스 정류소는 우리 집에서 800m 정도의 거리였다. 하지만 그날의 나에게는 80km쯤으로 다가왔다. 잠을 설친 데다 요란하게 청소까지 한 늙은 몸뚱아리는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요통이 덮쳤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걸었다. 오랜만의 통증이었다. 최근에 요령이 생겨 몸을 살살 달래가며 썼기에 이렇게까지 격렬한 통증을 느낄 새는 없었다. 최단거리인 골목을 이리저리 관통해내고 대로변으로 꺾어 들었더니 드디어 멀리 서 있는 J가 보인다. 그녀는 나에게 옆모습을 보이면서 정면을 향해 꼿꼿이 서 있었다. 
 
저 애가 저렇게 등이 곧았구나... 나와는 확연히 다른 자세였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옷태가 사는 J였다. 요샛말로 핏이 좋은 것이다. 그게 얼굴이 작아 비율이 좋아서인 걸로만 여겼는데 꼿꼿한 자세 덕이었구나. 시외버스가 하차하는 곳이라 그렇게 보기 힘들던 택시가 죽 늘어서 있어 조금이라도 덜 걸어보려고 J를 애타게 불렀지만 기진맥진한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 역시 힘이 없었는지 J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몇 미터 앞에까지 가서 그녀를 불러 택시를 탔다. 눈부신 광명과 평화가 찾아왔다. 뭐니 뭐니 해도 요통에는 택시가 최고다. 경험해보신 분은 알 것이다. 아무리 허리가 아팠더라도 택시만 타면 씻은 듯이 사라지는 요통. 택시의 푹신한 의자 덕분인 것 같아서 오죽하면 폐차장이라도 가서 의자 구해볼 생각을 다 했을까. 
 
몇 년 전 사건이 떠오른다. C 화백의 아들과 친구 H의 아들이 같은 날에 결혼했을 때의 일이다. 새벽같이 성남으로 출발해서 H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고 바로 강남 터미널로 이동해야 했다. 하모니 아들 결혼식은 12시 경이었고 C 화백 아들은 오후 5시였다. 멀리서 올라오는 내가 두 탕을 뛰는 데 아주 맞춤이었던 것이다. 마치 두 혼주가 머리를 맞대고 나를 위한 배려로 애써 시간을 맞춘 것처럼. 
 
H 아들 결혼식에서는 컨디션이 나쁘진 않았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여고 동창들과의 수다에도 하등 불편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전철을 몇 번씩 갈아타면서 강남의 결혼식장을 찾아가는데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내 생전 그렇게 지독한 요통은 처음이었다. 광주라면 택시를 타면 되는데 도저히 택시비가 감당이 안 되는 거리라서 어쩔 수 없었다. 
 
구부정한 할머니 자세로 결혼식에 참석한 나를 본 M 씨. 거의 십 년 만의 만남이었는데 충격이 컸다고 한다. 얼굴은 말짱한데 완전 할머니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 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심하게 구부정한 자세였으니 그 옷 또한 오죽 치렁치렁해 보였겠는가. 미리 씨가 두고두고 그날의 내 패션에 관한 지적을 하는 데 문제는 패션이 아니라 바로 내 구부정한 허리였다는 증거가 있다. 
 
지난 6월 여수에서 만난 여고 동창 0숙이가 했던 말이었다. 0숙이는 H 아들 결혼식에서 만난 이후 처음이었다. "여고 졸업한 지 수십 년 만에 결혼식장에서 널 보고 하도 예뻐서 깜짝 놀랐는데 몇 년 새에 너도 많이 변했구나." 그러자 옆에 있던 누군가가 "왜? 아직도 봐줄 만 한데?" 하며 이의를 제기했고 0숙이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 
 
"얘가 그날은 결혼식이라고 옷도 신경 써서 얼마나 예쁘게 입고 왔는지 몰라. 얘가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튀는 얼굴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날 보고 진짜 놀랐어." (난 아마 내가 예뻐졌다면 그건 순전히 쌍꺼풀 수술 덕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때 확실히 느꼈다. 똑같은 날, 똑같은 옷이라도 자세에 따라서 얼마나 느낌이 달라지는지를. 
 
암튼 그날 대로변으로 접어들면서 50m쯤 전방에서부터 쭉 지켜봤던 J. 꼿꼿한 자세가 완성시켜준 그녀의 패션은 최고였다. 무조건 택시부터 타느라 그녀의 꼿꼿한 자세와 패션에 대한 칭찬의 기회를 놓쳐버린 내가 뒤늦게 여기에 부러움 섞인 칭찬을 늘어놓는다. 허리만 안 아프게 해준다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았던 기억은 일생에 딱 두 번으로 끝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은 안 겪고 싶다. 
 
추천하기9
  • 페이스북 공유 트윗터 공유 Google Plus 공유
시니어리포터 장명신 (춘심이 혹은 삼순이)
시니어 리포터? 시니어 리더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건가요?
Copyright ⓒ 시니어파트너즈 & Yourstage.com 저작권은 시니어파트너즈에게 있습니다.
나도 한마디
임경남 11월19일 오후 5:58
서울에서 허리 아픈 몸으로 지하철 두세번 환승 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더구나 지방에서 올라 오셔서 그런 고초를 겪으셨다니 얼마나 괴로우셨을까요? 지금은 통증이 완화 되셨는지 궁금하고 빨리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답글쓰기
김이라 11월14일 오후 5:29
허라 아파서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저도 허리가 아파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답니다 ..
답글쓰기
장명신 11월17일 오전 12:03
허리가 맨날 아프면 아예 수술하거나 특별히 관리를 하겠는데 괜찮을 때도 많아서 신경을 덜 쓴답니다.
답글쓰기
유혜경 11월14일 오후 5:11
허리가 그렇게 아프면 어쩐대요? 걱정스러워요~
답글쓰기
장명신 11월17일 오전 12:04
피곤하면 더 아프더라고요. 이젠 편히 쉬라는 신호인가봐요^^
답글쓰기
정용길 11월14일 오후 1:55
나이들수록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답글쓰기
장명신 11월17일 오전 12:05
정말 그렇더군요. 꼿꼿한 자세가 10년은 젊어 보이게 해요.
답글쓰기
김상연 11월14일 오전 10:42
허리 아프면 얼마나 힘들까요. 두 번 다시 겪지 마시고 훨훨 날아갈 듯 사시어요.
답글쓰기
장명신 11월17일 오전 12:05
아유..감사합니다. 날아갈듯 살라는 당부 새겨듣겠습니다.
답글쓰기
윤옥석 11월14일 오전 10:28
푸르고 푸르게~~~恒常 건강 하소서!!!
답글쓰기
장명신 11월17일 오전 12:06
감사합니다. 건강 꼭 지킬게요.
답글쓰기
신춘몽 11월14일 오전 9:35
??? 많이 아프신거에요? 보여지는 모습은 푸른 솔잎처럼 보이는대요? 아니시지요?
답글쓰기
장명신 11월17일 오전 12:07
푸른 솔잎이라니 번쩍 기운이 납니다. 시든 낙엽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래도 푸른 솔잎이고 싶군요.ㅎㅎ
답글쓰기
홍지영 11월14일 오전 9:14
패션에 대한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답글쓰기
장명신 11월17일 오전 12:09
감사합니다. 패션을 완성시키는 노력에 힘을 실어봅니다.ㅎㅎ
답글쓰기
최고
사랑
기쁨
슬픔
응원
놀람
감사
선택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