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밥
 
아들 아침 식사를 챙겨 내보내고 휴대폰을 본다. 아침 7시 17분에 들어온 문자가 있다. ‘어제 어머님 운명하셨습니다.’ 할머님이 먼 길을 가셨다. 터덕터덕 일백삼 년을 걸어 경계를 넘으셨다. 처음 만났을 때 할머니는 눈감고 누워계셨다. 엄마라고 불러도 반응을 하지 않으셨다. 옷을 갈아입히고 청소를 하고 할머니 등 뒤로 누웠다. 
 
두툼하게 덮인 이불에서 할머니 냄새가 났다. 팔을 뻗어 안고 토닥이며 가만가만 노래를 불렀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에헤에에~” 이럴 때 음치인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도아리랑 가사에 묻힌 인생살이가 절절이 풀어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체온이 내게로 내 체온이 할머니에게로 오갈 즈음 방을 나왔다.
 
다음에 만났을 때 엄마라고 부르니 눈을 뜨고 나를 보셨다. 말씀은 안 하지만 앉아서 천천히 간식도 드셨다. 스마트폰 화면을 열어서 할머니 얼굴 가까이 고정해놓고 또 아리랑고개를 넘는다.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강원도아리랑… 감긴 듯 뜬 눈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목욕을 시켜드리겠다고 하니 꿈쩍도 않으신다. 앙상하게 뼈와 가죽만 남은 할머니, 타일 바닥에서의 목욕은 나도 무섭다. 씻은 뒤 체온이 빨리 오르지 않을까 봐 신경도 쓰인다. 한참을 돌아누워 계시더니 슬그머니 몸이 풀어지신다. 골방에서 홀로 외로웠을 할머니의 마음을 따뜻하게 씻어드리고 싶었다. 아직 말씀은 한마디도 안 하셨다.
 
바나나 하나를 얇게 썰어 드리니 절반만 드신다. 더 드시라고 권하니 “안 먹어!” 하신다. 할머니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 엄마, 말 안 잊으셨구마안~~.” 손뼉 치며 호들갑을 떠는 나를 한번 보고 눈을 감으신다. 그날 나는 ID를 smile100으로 하나 더 만들었다.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100번씩 웃자고.
 
어르신들은 움직임이 적어 바닥이 따뜻하면 저온에서도 화상을 입는다. 전기장판 위에 누우신 할머니도 그랬다. 할머니의 몸을 닦고 약을 발랐다. 이젠 하의를 갈아입혀도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는 실랑이는 없다. 친밀감을 표현이 아니라 기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제는 어머님이 온방을 돌며 몸부림을 하셨어요.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며느리가 말한다. 몸을 살피니 골반 부분의 피부가 벗겨져 있다. 미음을 입에 대도 입술을 움직이지 않으신다. 이불이 약하게 천천히 들썩인다. 사람들은 말한다. ‘먼 길 떠나셨다’라거나 ‘강을 건너가셨다’거나 ‘고개를 넘어갔다’고. 할머니도 살갗이 다 벗겨지도록 온방을 기며 힘들게 고개를 넘고 계신 것 같다. 할머니를 꼬옥 안았다. 호스피스교육을 받던 때가 떠올랐다.
 
서른여섯 살의 나는 암 환자였다. 현재 치료 중인 암 환자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선발에서 제외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보살펴야 하기에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다. 18개월의 딸을 둔 엄마였다.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당신은 당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있으므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평화로이 죽을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합니다.” Cicely Saunders 여사가 직접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아 참 많이도 울었다. 위로도 받았다.
 
장례식장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사진 속에서는 60대의 무심한 얼굴로 바라보신다. 한발 물러나 밥을 먹었다. 늦은 저녁도 아닌데 맛있게 먹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온다. 하늘에 샐그러진 달이 떠 있다. 시월 초이레, 내 생일이다. 문득 드는 생각, ‘103세 할머니가 나에게 생일 밥을 주셨구나.’ 
 

<시니어리포터 기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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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기숙자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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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방정숙 12월9일 오전 10:52
좋은글 잘 보고갑니다 ~~
할머니의 마지막 손님이 따뜻한분이어서
저에게도 위로가됩니다~~ 차가운 날씨에 감기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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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자 12월9일 오전 11:06
요즘 만나기 쉽지않은 특별한 인연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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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1:13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때로는 아련한 추억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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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자 12월8일 오전 11:38
마지막을 집에서 맞이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할머니의 자연사가 마음에 남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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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12월7일 오후 6:57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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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자 12월7일 오후 8:3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겨울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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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12월7일 오전 10:35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나신 할머니셨던가요.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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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자 12월7일 오후 12:56
떠난 자리가 연필로 찍은 흐린 점 하나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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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12월7일 오전 8:20
할머니가 생일밥을 주셨네요. 인생의 갊의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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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자 12월7일 오후 12:51
담담하게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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