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안개가 자욱한 날 생각나는 그때

 

11월 26일 일요일 오전 내내 창밖은 온통 짙은 안개로 자욱하다. 남편은 운동을 하러 나가야 하나 마나 망설였다. 이런 날은 안개가 개면 날씨가 좋으니 점심 식사 후에 가자고 하니 그러자며 모자를 벗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남편 입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부르다 만다. 계속해서 부르라니 곡은 아는데 가사를 잊었다고 한다. 찾아 일러주었더니 그만한단다. 잘하던 일도 멍석 깔아주면 하지 않는다더니 그 격이다. 젊어서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라고 한다. 그리고 장충공원은 친구들과 자주 가던 공원이라 한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 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에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있는데/외로움을 달래가면서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29세에 요절한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다. 아마도 이런 날은 많은 분이 배호의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노래에 앞서 어제 일요일도 일이 많아 출근해야 한다는 작은아들이 걱정되었다. LG에 근무하는 아들이 오늘은 일찍 구로공단에서 제품 완성하는 과정을 보아야 한다고 저녁을 먹으며 말했기 때문이다. 한강을 낀 강북로는 겨울이면 운전하기에 위험한 날이 많다. 문자도 할 수가 없다. 이런 날 문자를 받거나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렇게 안개가 심한 날이면 꼭 생각나는 일이 있다. 2000년 산호세에서 LA로 가는 길이었다. 여동생이 산호세에서 살 때 1995년 큰아들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그리고 아들과 큰 질녀는 스탠퍼드 대학생이라 그냥 산호세에 남았고 동생 가족은 1999년 LA로 이사했다. 나는 아들을 만나러 산호세로 갔다. 그런데 동생은 이사한 집에 다녀가라고 했는데, 그 당시 달러의 환율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처음 7~800할 때 갔는데 우리나라의 IMF로 1800에서 2000에 육박할 때였다. 그 당시 한국에서 아이들을 유학시키는 가정에서는 얼마나 큰 부담을 가졌는지 상상 못 할 정도였다. 외환은행에 가면 송금하러 온 사람들의 한숨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미국에 간 학생들도 학비 부담으로 그 당시 아르바이트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할 정도이다.
 
남편과 같이 갔기에 비용도 많이 들었거니와 산호세에서 LA까지도 비행기로 가려면 적어도 몇백 불은 들어야 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늦게 들어오는 아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는 그냥 돌아가고 다음에 가겠다고 하니 나의 마음을 안 아들과 질녀가 주말에 차로 다녀오자고 하였다. 미안도 하였지만 질녀가 집에 가서 가져올 물건도 있고 여기까지 왔다가 엄마를 못 보고 가면 서운하다고 설득해서 그러기로 했다.
 
아이들은 일요일에 돌아와야 하기에 금요일 저녁에 차 두 대로 출발했다. 늦게 출발해야 빨리 갈 수 있다고 했다. 앞뒤로 차는 달렸다. 중간쯤 갔을 때이다. 이름을 잊었지만 차로 가려면 꼭 이 산 고개를 넘어야 했고 일 년 내내 안개로 자욱한 길이라고 했다. 앞은 길을 잘 아는 질녀가 가고 아들은 뒤를 쫒았다. 중간쯤 산 고개를 넘을 때였다. 길은 물론 앞에 달리는 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자욱할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미국의 고속도로는 가로등도 없고 그저 평지를 달리는 우리나라의 시골길 같다. 모든 차는 앞차의 후 등만 보고 갈 따름이다. 아들과 질녀는 핸드폰으로 연락했다. 어느 정도 가면 주유소에서 잠깐 쉬었다 가자고. 아이들은 얼마만큼 가면 주유소가 있고 얼마만큼 가면 무엇이 나오는 것을 머릿속에서 가름한다. 잠시 주유소에서 화장실에 들르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두 대는 달렸다.
 
아마도 내 평생 이런 안개는 처음이다 마지막이었다. 아이들은 겁 없이 운전하지만 남편이라면 감히 생각조차 못 할 일이다. 이렇게 나는 LA를 갔다. 그리고 일요일 아들과 질녀는 다시 돌아가고 나와 남편은 동생과 제부의 안내로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 캐니언을 다녀왔다. 아직도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함과 그랜드 캐니언의 웅장함도 머리에 생생하지만 그 짙은 안개 속을 달렸던 기억은 아마도 소름 돋게 평생 생각나게 할 것이다.
 

<시니어리포터 조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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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조원자 (큰며느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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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정호영 12월7일 오후 5:44
배호 노래 가사를 보니 그런것이였군요.참 즐겨불렀는데.이젠 바보가 된듯해요 .전부 잊고사니.99년 초에 20년 만에 한국갔다가 공기가 너무 탁해서 일주일 내내 아프다 미국엘 다시 오니 싹 나은 기억이 납니다. 그랜케년. 라스배이커스 갈때마다 감동스럽지요.차분 차분 잃어버린 기억 돼살리게 해줍니다.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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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1:02
미국에서 다니러 온 분들을 다 공기가 나쁘다고 그러긴 합니다. 우리나라도 언제인가 산호세나 시애틀처럼 맑은 공기를 가진 나라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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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12월7일 오후 12:39
저도 어릴적 아빠가 "발길을 돌리려고~바람부는~~"이노래를 자주 부르셨어요. 꽃피는 동백섬이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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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1:00
모두에게 추억이 있는 안개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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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12월7일 오전 10:47
저도 지독한 안개 속을 달리면서 조마조마했던 일이 있었어요.
정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대관령 길... 안개를 보면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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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0:59
대관령도 그렇지요. 날씨를 잘 못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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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12월7일 오전 10:32
저는 제주 산간도로에서 엄청난 안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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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0:59
저는 제주도에 갔는데 사방이
뿌였는데 그게 구름속이라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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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12월7일 오전 10:14
안개에 얽힌 제 추억을 불러 일으킨 글입니다. 안개가 걷히면 날씨는 쾌청해지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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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0:58
네, 그래서 안개낀 날도 때로는 좋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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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12월7일 오전 8:29
안개 낀~~~..........누구를^^***옛 追憶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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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0:57
다시는 안 갖고 싶은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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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12월7일 오전 8:19
안개 하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먼저 떠오릅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윤희중. 하 선생, 후배 박 선생과 세무서장과의 이성 관계. 결국 안개는 해가 뜨면 걷히듯 복잡한 관계에서 다시 고향을 떠나 상경하는 윤희중. 삶은 안개 속에 살다 걷히는 과정인 듯합니다. 그래도 그 심한 안개 속에서 불상사 없이 건재하시니 다행이지요. 우리의 앞길에 짙은 안개는 없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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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0:57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안개낀 날은 다음이 화창하니 ... 희망이 있기는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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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12월7일 오전 8:14
안개가 많이 낄 때는 앞길이 막혀 운전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 짙은 안개 속을 달렸다고 하니 대단하십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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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0:56
아찔했답니다. 알았으면 가지 않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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