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일 줄 모른다니요
 
시골서 농사를 짓는 처남댁이 학교 동창회를 서울에서 했다. 서울 사는 친구들이 많은가 보다. 처남댁의 나이는 72세로 비교적 건강한 할머니다. 동창 할머니 친구 몇 명하고 수다를 떨면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가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발을 헛디뎌 앞으로 굴렀다고 한다. 양쪽 팔이 부러져서 병원으로 직행했다. 생각지도 못한 큰일이 갑자기 닥쳐 온 가족이 비상에 들어갔다. 우선 환자의 치료가 급선무다. 팔 부기가 빠지자 뼛조각을 맞추는 수술을 하고 간병인을 구하고 법석을 떨었다.
 
환자에 대한 급한 불이 꺼지자 시골에 혼자 남은 처남 식사 문제가 당면 과제로 급부상했다. 처남댁과 동갑내기인 처남은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몸소 실천을 해오던 터였다.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김치찌개를 끓이는 데 물을 부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기가 막힌다. 라면을 한 번도 끓여본 적이 없다는 말에 대꾸할 말문이 없다. 뭘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을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숙맥(菽麥)이라 한다. 처남은 식사 준비에서는 영락없는 바보 숙맥이다.
 
아내와 처남 요리 교육을 하러 갔다. 처남은 나를 보더니 혼자 있어 보니 제일 어려움이 식사 문제라고 혼자 남은 남자들의 고통을 느끼는 소감을 말한다. 도시에서야 널린 곳이 식당이지만 시골은 다르다. 시골에는 면 소재지 정도에 가야 식당이 있다. 동네 식당이 없으니 사 먹는 것도 차를 몰고 나가야 한다. 이웃 친척들한테도 남자가 밥을 한다는 것이 창피해서 밥하고 국 끓이고 나물 무치고 뭐 이런 것을 물어보지도 못하고 해달라고도 못 한다. 남들한테는 며느리하고 딸이 와서 식사 준비를 철저히 잘해준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내가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는 법과 적당한 물 양 붓는 법을 가르친다. 냉장고와 냉동고 안에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가며 요리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자존심 강한 처남이지만 기울어진 사태를 파악하고 그나마 여동생이 설명해주니 창피하지 않은지 귀를 쫑긋하고 알아들으려 애쓰는 노인의 모습이 안쓰럽다. 
 
처남이 말하길 ‘남자가 먼저 죽어야 하는데’ 하는 의미를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종전에 남존여비의 사상이 투철하여 처남댁을 다스리려고만 하던 위풍당당에서 급격하게 기가 죽은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 처남댁 존재를 확실히 알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란 말이 맞는다. 다치지 않은 것보다는 못하지만 앞으로 내외가 살아가는 데 이번 고통이 화목의 계기는 되었으리라 믿어 본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다. 실험에 의하면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참기름병을 남자들은 잘 못 찾는데 여자는 금방 찾아낸다고 한다. 남자들은 냉장고나 냉동고에 뭐가 있는지 평소에 관심이 없다. 나 같은 경우도 아내가 여행을 떠나면서 먹을 것을 준비해 뒀다고 일일이 일러주지만 제대로 찾지 못한다. 아내 없을 때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고 고기를 준비하다가 맛소금 둔 곳을 못 찾아 포기하고 라면 끓여 먹고 끝내버린 적도 있다. 아내가 다음날 양념 통에서 마술 부리듯 금방 맛소금을 찾아내는 걸 보고 나는 어제 왜 못 봤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현대사회에서 자식 분가는 당연하다. 노년에 부부가 살다가 혼자되면 셀프 부양은 거스를 수 없는 일방 코스다. 여자도 남자의 일을 알아두어야지만 남자도 요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시니어리포터 조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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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영란 5시간 전
어머나, 어떻게 양팔이 다... 수술까지 하셨다니 하루아침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겠네요. 지난 여름 팔 부러진 어머니 때문에 고생을 해보니 이젠 '부러지다'의 ㅂ만 들어도 가슴이 덜컹 하지요.ㅎㅎ; 그래도 남자분들은 시대가 그렇게 만든 거라지만 요리 못하는 요즘 젊은 여자아이들은 더 대책이 없다고 봐요. 모두들 요리 잘하는 남자만 만나길 바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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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래 1시간 전
요리 잘 하는 남자? 그러니 생각이 났습니다. 딸네 집에가면 사위가 요리를 해요 딸은 아이만 끌어안고 애 본다는 생색만 내요. 밥먹고 나서 물이나 떠오는 정도로만 하더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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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12월8일 오후 7:55
남자 여자를 떠나 요즘은 부억도 방이나 마찬가지라서 요리하기가 재밋는데 ,,,
언젠가 티비에서 여자 연예인이 나와서 하는 말이 "호호호 저는 라면도 못 끓여요, 하는데 그게 자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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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래 12월8일 오후 10:37
ㅎㅎㅎ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지키던 시기가 불과 몇십년만에 참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다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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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12월7일 오후 11:06
그럼요. 남자도 요리를 할 줄알아야합니다. 저의 남편 참기름병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못 찾는 사람입니다.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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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래 12월8일 오후 10:36
ㅎㅎㅎ 남자들은 원래 잘 못찾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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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12월7일 오후 12:38
요즘은 요리하는 남자분들이 느는 추세이고 간편식도 많이 나와서 괜찮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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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래 12월7일 오후 8:11
햇반을 많이 사 놨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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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12월7일 오전 10:20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건사고는 남의 일 같아도 어느 날 자신에게 일어날 수도 있지요. 평소에 익혀두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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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래 12월7일 오후 8:10
앞으로는점점 더 자식들이 돌봐줄 수 없을것
같습니다.셀프 부양이 당연한 시대로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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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12월7일 오전 9:22
공감합니다. 남자들도 좋아하는 음식 한 두가지는 스스로 조리할 줄 알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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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래 12월7일 오전 9:59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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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12월7일 오전 8:43
菽麥.............이제 남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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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래 12월7일 오전 9:58
ㅎ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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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12월7일 오전 8:11
저도 베트남에서는 혼자 자취생활도 했지만 집에 오면 참기름이 어디있는 지 김치가 어디 있는 지 찾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본인이 할일이 아니라는 것이 뇌에 인식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 가 싶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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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래 12월7일 오전 8:25
이제 남자도 식사준비하는 시대입니다.공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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