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거래의 대가
 
손님을 보내고 나니 이미 한 시. 택시를 탔다. 집 근처 대로변이었다. 웬 할머니가 차도를 점령하고, 잔뜩 짐을 실은 캐리어에 뭔가를 쌓고 있었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 차를 서행시키면서 봤더니 쓰레기봉투였다. 기사님이 혀를 끌끌 차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택시에서 내린 나. 생계형으로 폐지 줍는 할머니치고는 너무 어설픈 게 조그만 캐리어 하나뿐, 물건을 묶는 끈 하나 없이 자꾸 땅에 떨어지는 봉투를 탑처럼 쌓아 캐리어에 싣는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시시포스의 바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단지 쓰레기봉투일 뿐이었는데 그걸 다섯 개씩이나 캐리어에 싣고 움직이려니 가능할 리가 없었다. 캐리어를 붙잡고 쓰레기봉투를 몇 개씩 싣는 것도 힘든데 그걸 끌고 이동한다며 기를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왜 쓰레기봉투에 집착하나 했더니 내용물 중에 일회용 종이컵과 과자 포장지 등이 눈에 띄었다.
 
그 앞에 있던 편의점에서 나온 쓰레기봉투였다. 몽땅 싣고 가서 종이류를 분류해 판다고 해도 그다지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아서 안타까웠다. 천하의 오지라퍼인 내가 “도와드릴까요?” 하며 다가갔다. 할머니는 얼어서 떨어지지도 않는 입술로 웅얼거리며 건너편으로 밀고 가자고 한다.
 
허리 높이의 두 줄 펜스가 가로막혀 통행이 불가한 대로변을 5층으로 쌓은 쓰레기봉투가 실린 캐리어로 무단횡단 하자는 것. 난 안된다고 했다. 유일하게 쓰레기봉투가 아닌 종이상자에는 누가 입다가 마당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에게 덮어준 용도로 썼음직 한, 더러운 수면 바지도 있었다. 그나마 가장 실속 있어 보이는 내용물은 계란판 하나였다.
 
호더 증후군인 듯한 할머니는 장갑도 안 낀 맨손이었다. 내 코트 주머니에는 한 짝이 도망가서 왼손만 남은 장갑이 있어 끼어드리려 했는데 할머니의 손은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자꾸 미끄러져 떨어지는 봉투를 주워 싣느라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서인지 바지가 내려가 허리춤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정신이 성치는 않아 보였지만 얼굴은 꽤 곱상한 할머니였다.
 
자식들이 이 꼴을 본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한겨울, 오밤중에 차도에서 쓰레기봉투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할머니를 모른 척할 수는 없어 묘안을 꺼냈다. 할머니와 거래를 한 것이다. “할머니, 이 쓰레기봉투 나한테 전부 팔아요. 한 개에 천 원씩 해서 오천 원 드릴게요.” 난 차곡차곡 쌓인 쓰레기봉투들을 끌어 내렸다.
 
주머니에는 마침 택시비 잔돈으로 거슬러 받은 오천 원짜리 지폐가 있었다. 나 같으면 얼씨구나 했을 텐데 할머니는 그닥 횡재했다 싶은 표정이 아니었다. 쓰레기봉투가 못내 아쉬워서 주춤주춤 뒤돌아보며 가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가는 걸 한참 지켜보다가 그 봉투들을 양손에 들고 몇십 미터 이동했다. 할머니가 되돌아올까 봐 일부러 골목 안까지 가서 버린 것이다. 살다 살다 이런 수상한 거래는 처음이다.
 
어쩌면 사람을 살렸을지도 모를 일을 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난 크게 발을 접질렸다.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오다가 그만 휘청한 것이다. 그대로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면 안 겪어도 될 일이었다. 깨순이가 일본에서 사 온 동전 파스를 붙이고 있는데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겠다. 신년 벽두부터 오지랖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시니어리포터 장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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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장명신 (춘심이 혹은 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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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임경남 1월15일 오후 9:22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 간절 하지만 일시적인 도움으로 해결 될 일 아니고 할머니는 누가 보살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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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7일 오후 12:47
병원으로 모셨음 해요. 추운 날씨에 사고라도 날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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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1월15일 오후 1:37
장선생님 글은 늘 좋은 에너지가 넘쳐납니다. 유쾌하게 사시니 주변이 밝아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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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1:56
우주 최강 오지랖퍼랍니다.타고난 기질 같습니다. 좋은 에너지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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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1월15일 오전 11:10
천사처럼~~~ 속히 快癒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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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1:57
ㅇㅇ는 지난 화요일에 퇴원했답니다. 아직 감기 기운이 있다는데 완벽하게 나을 날이 머지 않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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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1월15일 오전 10:53
좋은 일 하셨습니다. 착한 일 하다 다친 발이 빨리 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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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1:58
병원을 안 가고 버텼더니 잠 잘 때 약간 시큰거리네요. 하지만 님들 덕분에 예상 외로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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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자 1월15일 오전 10:34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접질린 다리 얼른 쾌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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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1:59
날씨가 풀리면서 급격히 좋아진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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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라 1월14일 오후 4:58
좋은일 하셨네요 그래서 그정도가 아닐까요 아님 더 크기 다칠수있가고 생각한다면요 좋은쪽으로 생각하세요 다치신발은 어떠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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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2:01
맞아요. 제가 수시로 발을 접질렀으니까요..고질병이랍니다. 그래도 아직 잘 움직이고 있으니 고마울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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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1월14일 오후 4:18
정말 하나님도 무심하십니다. 저도 힘을 보태 하나님께 항의해보게요. 그리고 발목 괜찮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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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2:01
아...항의해주셨군요. 어쩐지 빨리 낫더라고요. ㅎㅎ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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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순 1월14일 오후 1:16
에구...속상해라. 오지라퍼는 항상 이런다니까요 좀 좀 다치지 말지 말지 말지
호더 증후군은 돈이 문제가 아니고 그저 자꾸만 채우는 것이예요 쯔쯔
폐지 한달에 2만여원 되는데 5천원이면 1주일치는 되건만 ...후훗
속히 치료 되시고 따스한 마음은 전염성이 높은 질병이니 계속 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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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2:10
아하하...전염되라고 히터 틀어서 보냅니다. 그 할머니 돈 보다는 정신적인 문제인 게 돈을 그닥 반기진 않더라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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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1월14일 오전 10:27
에구...암튼...누가 말릴까요?
어서 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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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2:11
다 나아서 이번주 토요일의 아드님 결혼식 참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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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1월14일 오전 9:20
좋은 일을 하려고 하다가 한 것이기 때문에 곧 낮겠지요. 잘 하셨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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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2:12
생각보다 금방 낫더라고요. 다 님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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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1월14일 오전 9:19
ㅋㅋㅋ 드디어 찾았습니다. 제가 오지랍 대왕이거든요. 우리 함께 오지랍 펄렁거려 볼까요? ㅎㅎ
근대요 제 오지랍은 선생님 오지랍같은 착하지가 않아요. 그냥 잘난척하고 심술 부리고. 흉보고 ,,,뒷담화,,,
주로 그런짓을 하거든요. ㅋㅋㅋ 근대요 우리같은 오지랍 회원이 없으면 이 사회는 소금 빠진 음식이 되고 말껍니다. 우리 열심히 달려 봅시다. 다치지는 말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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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2:14
맞아요. 오지랖은 무미건조한 인생의 MSG같은 것 같아요. 제 오지랖도 늘 선한 건 아닙니다. 그런 경우는 어쩌다 한번이고요. 대부분은 민폐성 오지랖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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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호 1월14일 오전 8:43
가슴이 훈훈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그런 오지랖이라면,,얼마든지 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저도 아파트 단지 밖 이면 도로에서 길거리 행상을 하시는 나이든 어르신들을 볼때마다 괜시리 짠한 마음이 들어서 발걸음을 멈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같습니다...고작해야 따뜻한 어묵 한그릇 정도 밖에 드린적이 없지만,,다치신 곳 빨리 쾌차하실거라고 믿습니다,,아름다운 천사의 마음 곱게 담아갑니다,,대구에서 윤준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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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1월15일 오후 2:16
어휴. 감사합니다. 제가 선하지는 않은데 정은 좀 많은 것 같습니다. 훈훈한 덕담에 시큰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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