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디딤돌 삼아 넘어가세요
 
어릴 적에 어머니가 선반 위에 올려놓은 먹을거리를 먹고 싶을 때 내가 엎드리면 동생이 내 등을 밟고 올라가서 물건을 꺼내 함께 나누어 먹었다. 점점 키가 자라면서 베개를 밟기도 하고 책이나 상자를 밟고 올랐다. 발판으로 위험한 것이 회전의자다. 의자가 돌아가면서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또 하나가 사람이다. 밑에 엎드린 발 받침 사람이 힘으로 버텨주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그를 딛고 위에 선 사람도 쓰러지게 되어있다. 든든한 발 받침은 누구나 원하는 생활의 도구다.   
 
그런데 오직 사람의 디딤돌이 필요한 곳이 있다. 사람의 등이나 어깨가 필요한 그런 디딤돌이 아니고 사람의 숫자가 필요하다. 최소 인원이 차야 떠나는 관광버스는 관광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간에 디딤돌도 되고 버팀돌도 된다. 사는 사람의 숫자로 행정구역의 명칭이 시, 군, 읍, 면이 된다. 학생 수가 너무 적으면 학교가 없어지고 열어야 할 강좌도 폐강이 된다. 시장이나 군수도 그렇고 대통령도 지지해주는 사람의 숫자에 따라 당선이 된다.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디딤돌이다.  
 
또 사람이 필요한 곳이 있다. 베이비부머라는 젊은 노인네가 은퇴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이들을 연착륙시키기 위해 지자체나 각종 사회기관에서 생애 전환기에 대해 이런저런 교육을 시킨다. 기술교육도 있고 인문학이나 봉사교육도 있다. 퇴직자들에게 재능기부라는 이름으로 강좌를 열고 수강생이 몰려들면 돈도 주겠다는 달콤한 강좌도 많다. 퇴직자들도 이런 강좌를 맡아서 강의를 해보고 싶어 한다. 주민자치센터나 마사회, 50+ 센터도 사회교육을 위한 여러 개의 강좌를 열고 있다. 강의할 곳은 많지만, 문제는 수강생을 모으는 일이다.
 
배우는 즐거움을 맛보며 살아가는 시니어도 많지만, 그까짓 것이 나이에 배워서 뭐해! 여행이나 등산이나 다니며 노는 것이 좋다고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반면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가르치는지 몰라서 수강 자체를 신청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강의를 어렵게 맡아도 수강생을 모으는 일을 전적으로 강사의 역량에 맡겨버리고 정한 수강생이 없으면 폐강시켜버리는 교육원도 많다. 정말 좋은 강의 테마를 갖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세상 사람 아무도 몰라주면 혼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텅 빈 강의장을 바라보며 강사는 발만 동동 구른다. 
 
세상에 맛있는 것을 ‘꿀맛’이라 한다. 꿀맛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꿀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어주고 ‘이 맛이 바로 꿀맛이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꿀을 먹어봐야 꿀맛을 알 듯 강의는 직접 들어봐야 하는데 누군가는 들어줘야 한다. 시제품의 물건이 흠결이 있는 것처럼 초보 강사도 서툴다. 이를 감안하고 들어주고 용기의 박수를 보내고 의견을 진술해 고칠 것은 고치게 해야 한다. 
 
오늘도 어느 강사가 인문학을 강의하려고 강의 계획서를 만들어 심사에도 통과했는데 수강생 모집이 어렵다고 나에게 도움을 청해 왔다. 이분은 인문학을 잘 가르칠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훌륭한 강사에 색다른 강의인데 제가 들으러 가겠습니다.’ 하고 일단 안심을 시켰다. 주위 몇 사람들에게 이런 강의가 있으니 함께 가서 듣자고 꼬드겼다. 한술 더 떠 끝나고 막걸리 한잔하자고 꿀물을 발랐다. 히히 웃으며 내 체면을 봐서 함께 들으러 갔다. 
 
세상에 허접스러운 강의는 있어도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강의는 없다. 허접스러운 강의도 그 강의에서 어떤 영감을 얻어 나의 상상력을 보태면 새로운 지식을 얻어낸다. 두부장수 종소리에 된장찌개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지만, 감옥에서 출소하는 죄수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 개를 알아듣는다는 말도 있다. 수강생의 그릇에 따라 강의 효과는 차이가 있다. 
 
강의는 좋았다. 무엇보다 강사가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다. 내 어깨를 밟고 강사의 무대로 나아가는 새나기 강사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즐거움이다. 발은 뻗었지만, 막상 디딤돌이 없어 멈칫하는 사람에게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시니어리포터 조왕래>

추천하기9
  • 페이스북 공유 트윗터 공유 Google Plus 공유
시니어리포터 조왕래 (언어코디네이터)
안녕하세요?가장 인간적인 사람입니다.따뜻한 사람의 정이 그립습니다.
Copyright ⓒ 시니어파트너즈 & Yourstage.com 저작권은 시니어파트너즈에게 있습니다.
나도 한마디
조원자 2월14일 오전 12:37
짝짝짝 박수드립니다. 대단하세요. 어릴적 꿀단지의 꿀을 몰래 먹고 단지 둘레에 고무 줄을 감아 놓은 것을 잊고 그냥 두어 그 다음날에 개미의 긴 줄이 꿀단지로 이어진 것을 본 엄마한테 혼이 난 생각이 납니다.
답글쓰기
조왕래 2월14일 오전 7:00
꿀단지 추억 재미있지요?
답글쓰기
임경남 2월13일 오후 5:55
새내기 강사님께 큰 힘을 얻게 해 주셨군요! 참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심에 그냥 박수만 쳐 드릴 뿐입니다.
답글쓰기
조왕래 2월14일 오전 6:59
사람부조 참 쓰일데가 많더군요 ㅎㅎ
답글쓰기
이송식 2월13일 오후 4:04
디딤돌이아니라 언덕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소도 언덕이 있어야한다잖아요? 말기술은 있는것 같아도 기회가없다는 것이죠, 다양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무지좋네요.
답글쓰기
조왕래 2월13일 오후 4:21
디딤돌과 비빌 언덕 다 필요한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쓰기
김상연 2월13일 오전 11:36
여러모로 이웃의 디딤돌이 되어주신 선한 의지와 활력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하고요, 모쪼록 강건하시어요.
답글쓰기
조왕래 2월13일 오후 4:20
고맙습니다.
답글쓰기
홍지영 2월13일 오전 10:44
디딤돌에 대한 이야기 부터 시작해서 교육시 강당의 분위기 등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잘 보고 갑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답글쓰기
조왕래 2월13일 오후 4:19
공감에 감사드립니다.
답글쓰기
이동호 2월13일 오전 9:13
조선생님은 여러 가지로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답글쓰기
조왕래 2월13일 오후 4:17
감사합니다.
답글쓰기
최고
사랑
기쁨
슬픔
응원
놀람
감사
선택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