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병원 생활
 
지난주 월요일에 다쳤으니 그새 열흘이 넘은 병원 생활이다.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요샌 날마다 파티하는 것처럼 즐겁게 지낸다. 이번 사고로 맨 먼저 든 생각이 ‘오늘이 22일이라 다행이다’ 였다. 20일이었던 배꽃 님네 혼사 이틀 전이 아닌, 이틀 후라서 결혼식까지 다녀왔으니 크게 걸릴 것이 없어서 더욱 마음 편할 수 있었다. 
 
수술이 끝나자 간호사가 무통 주사를 권했다. 20여 년 전 깡순이를 제왕절개로 낳고 무통 주사를 맞았는데 며칠 동안 어깨 통증으로 힘들었었다. 깨순이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유추해 보건대 무통 주사라고 통증을 완전히 없애주는 게 아니고 어딘가로 잠깐 숨겼다가 조금씩 조금씩 꺼내 놓는 게 아닐까 싶었다.
 
통증에도 총량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느낌? 무통 주사 비용은 15만 원이라고 했다. 내가 넣은 질병보험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겠고 손바닥 조금 꿰맨 걸로 배 째서 아이 낳을 때만큼 아프기야 할까 싶어서 그냥 견디기로 했다. 마취가 풀린 손은 욱신거렸지만, 도저히 못 참을 수준은 아니었다.
 
깨순이가 스마트폰으로 일본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했는데 썩 괜찮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순간순간 덮쳐오는 통증. 간호사가 엉덩이에 진통제 주사를 놓아준다. 깨순이가 "이제 좀 덜 아파?" 묻는다. "아니...이제 주사 맞은 엉덩이가 아프네... " 사실이었다. 주삿바늘이 들어오자 그쪽으로 우르르 몰리는 통증.
 
내가 그랬다. "통증 인자들은 투기꾼 같아. 주식 꾼들 뭐가 오를까 눈치 보고 있다가 어떤 회사가 뜨는 것 같으면 몽땅 투자하잖아. 땅 투기꾼들도 그렇고..." 말귀 빠른 깨순이가 아항! 하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 몸속에 있던 통증들이 주삿바늘 들어오는 거 보고, 야호! 이번에는 엉덩이 컴퍼니 전망이 밝겠군! 하고 몰려갔구나?" 하는데 한참 웃었다.
 
내가 있는 4인실은 전부 또래의 정형외과 환자들이라 팀워크가 아주 좋다. 후진하는 버스 뒷바퀴에 발가락이 깔린 여자(편의상 발가락 여사로 칭한다).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정강이뼈를 다친 여자. 냉장고에서 음식 꺼내다 주저앉아 골반을 다친 여자,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밤마다 족발에 치킨에 보쌈까지 호사를 누리고 있다.
 
정강이 여사의 남편이 매일 밤 먹을거리를 잔뜩 싸 들고 오니 이에 질세라 골반 여사의 남편까지 가세해서 날마다 파티를 벌이는 중. 먹고 자는 게 일인데 링거까지 맞으니 얼굴은 SUV 차의 빵빵한 타이어가 됐다. 풍선의 경지는 이미 넘어선 지 오래다. 
 
병원 밥을 이렇게 맛있게 먹는 환자는 엄마밖에 없을 거라던 깨순이의 지적이 있었을 정도로 잘 먹고, 불면으로 힘들어했던 내가 맞나 싶게 잠도 잘 잔다. 은근히 병원 체질이다. 게다가 발가락 여사의 조언대로 숨은 보험 찾기를 해서 40만 원의 수익을 거머쥐는 행운도 누릴 것 같다.
 
숨은 보험 찾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조회해 보니 20년 전에 넣었던 상해보험이 있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봤더니 진단비 30만 원에 입원 4일째부터 하루 만 원씩 나온단다. 휴일이었으면 두 배가 나온다니 하루 일찍 다칠걸. 올해 8월이면 유지가 끝나는 보험인데 참 아슬아슬하게 챙겨 먹는 것이라 여간 오진 게 아니다. 거의 매일 가게 앞이라는 손님들의 전화가 이어져서 속이 문드러지는 와중에 그나마 큰 위로가 됐다.
 
어제는 깨순이의 목욕 자원봉사가 있었다. 요령 없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깨순에게 두 팔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르는 자세의 엄마를 씻기는 건 상당히 강도 높은 노동이었을 것이다. 그대로 주욱 뻗어버린 깨순. 퇴근한 아빠가 들를 때까지 쓰러져 있었다. 남편이 그런 깨순을 보고 "너 여기서 뭐 하냐?"고 묻는다. 
 
깨순은 "초대하지도 않은 기진이랑 맥진이가 다녀갔어."라고 대답하는데 그닥 말귀가 빠른 편이 아닌 남편은 "기진이랑 또 누가 왔다고?" 한다. 씻을 때마다 찾아오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만 아니라면 나름 견딜만한 슬기로운 병원 생활이다.
 

<시니어리포터 장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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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장명신 (춘심이 혹은 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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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김이라 2월14일 오후 2:09
즐거운 병원 생활을 하시네요 아프실턴데 이렇게 글을 재미있게 쓰시고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겠지요
다 나으셨어도 너무 무리 하지마시고 건강에 주의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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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0:59
이제 슬슬 일상을 회복하고 있어요. 님들의 위로와 격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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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2월14일 오전 9:40
선생님 글을 읽으면 항상 기분이 좋아집니다. 병원 생활 너무 좋아하지 마시고, 빨리 쾌차하셔서 퇴원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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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1:01
병원에 있을 때가 차라리 좋았던 것 같아요. ㅎㅎ해주는 밥 가만 앉아서 받아 먹었던 때가 그립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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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2월14일 오전 12:21
어쩌면 아픈 환자가 환자가 아닌 사람이 되어 다른 환자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것처럼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하여간 잘치료되어 지금은 다 나으셨는지요? 보험은 정말 다행입니다. 역시 엄마옆에는 딸이 있어야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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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1:03
퇴원해서 출근도 하고 가사도 떠맡아 고생길에 접어들었답니다. 저때가 좋았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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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2월13일 오후 8:21
ㅋㅋ 읽으면서 많이 웃고 갑니다. 긍정적인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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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1:05
집에서 가사에 치이다보니 짜증도 나고 여러모로 병원에 있을 때만 못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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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2월13일 오후 6:45
암튼... 고생했어요. 다 나을 때까지 모쪼록 조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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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1:07
어제부터는 걸레나 행주 짜는 게 되더군요. 손목을 비트는 게 가능해졌답니다. 아직 샴푸나 로션 펌핑은 안됩니다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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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2월13일 오후 4:09
선견지명이있으셨네요, '보험'그런데 요즘에는 간병이 없는 병원이 점차늘어나고 있데요, 특히 정형외과 환자는 전문 간호코디가 맡아주니 너무 편리하더라구요, 나이가들수록 낙상이 많아지니 조심하시기바랍니다.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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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1:09
보험으로 병원비는 해결이 됐는데 장사 못한 손해는 어쩔 수 없네요. ㅎㅎ당분간 지출을 줄일 수밖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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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2월13일 오전 11:42
ㅎㅎㅎㅎ 이렇게 유쾌한 내용일 줄 알고 냉큼 들어왔습니다.
깨순양이 예쁜 껌딱지가 돼주었군요? 목욕봉사가 절대 쉽지 않은 건데 과로까지 해가며...^^
전에 병원근무때 들었는데 병원 밥처럼 맛없는 그 밥을 젤 반기는 사람들이 주부래요. 맨날 밥을 직접 해야하는데 누가 해준 밥을 앉아서 받아먹으니 그것처럼 행복한 순간이 없다고 한다나요? 우리 여자들한텐 개그가 아니라 다큐인 거죠~ㅎㅎㅎ 퇴원하셔서 또 냅다 부지런 떨지마시고 얼마동안만이라도 대충 사세요. 기진이와 맥진이가 오면 곤란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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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1:12
집에서 식구들 끼니 챙기다보니 병원 생활이 그립더라고요. 먹고 자고 싸고. ㅎㅎ 할 일이라곤 그 셋밖에 없었던 그때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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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2월13일 오전 11:05
병원생활도 유쾌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이든지 긍정으로 대처하시니
회복도 빠르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유머감각 뛰어난 따님과 더불어 어려움 중에서도 웃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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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1:15
깨순이에게 효도할 기회를 제공한 게 보람이었어요. 제가 언제 딸이 씻겨주는 경험을 해보겠어요. 먼 훗날에 또다시 닥칠 일이지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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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남 2월13일 오전 11:01
통증으로 고생하는 글이 아닌 매일 파티 얘기네요 ㅎㅎ 등장 인물이 정말 너무 많아서 글 읽는 내내 머리에 누가 누군지 도무지 ㅎㅎㅎ 이제 완치되셔서 통증이 없으시리라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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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1:17
통증에서는 해방됐는데 다른 애로가 많네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어쩔 수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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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2월13일 오전 8:56
아주 씩씩한 병원생활이네요. 다행히 같은 병실에 입원하신 분들과 잘 맞으셔서 천만다행입니다.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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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월25일 오전 11:20
퇴원하고 기브스 풀 때 병실을 찾았는데 발가락 여사 빼고는 다 퇴원해버려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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