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는 엄마 노릇
깡순이가 반찬을 가지러 오겠단다. 그간 편안하게 하루 세끼의 식사를 제공 받았는데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다 보니 아침, 저녁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 한 달 만에 보는 깡순은 살짝 늙어 있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나름 고달픈 것이다. 오늘 밥솥과 전자레인지, 각종 주방기구들을 사러 다니는데 괜히 즐거웠다. 어려서 어른들이 자식을 따로 살림 내보낼 때 저금? 조금? 낸다고 하던데 딱 그 기분이었다.
 
 
깡순이가 숙소에서 가져온 짐들을 베란다 붙박이장에 넣는데 종이 상자가 눈에 띈다. 생도 생활하면서 선후배들한테 받은 쪽지와 편지들을 모아둔 것이었다. 내가 봐도 별 상관없으니 이렇게 놔뒀겠지 하며 차분하게 읽어봤다. 부모한테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힘든 시간의 기록들도 보였다. 혼내놓고 안쓰러워하며 달래는 선배의 메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힘내라는 격려 편지라서 울컥했다. 고마웠다. 일일이 찾아가서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깡순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같이 놀던 깨순이가 크게 다쳤다. 손가락 살이 거의 떨어져 나갈 것처럼 찢긴 것이다. 그 다급한 와중에 난 앞뒤 물어보지도 않고 깡순이를 후려쳤다. 당 연히 깡순이 때문에 다쳤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겁에 질린 깡순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깨순이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병원에서 손가락을 꿰매고 나서야 비로소 언니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깨순이. 언니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고. 그냥 뛰어놀다 보니 더워서 창문을 열다가 손가락이 끼어서 다친 건데 왜 언니를 때렸느냐고...
 
올 초에 손을 다쳐 입원해 있는 나를 간병해주던 깨순이가 과거의 비슷한 사례라며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난,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도 선명한 자국이 남아있는 깨순의 손가락을 보니 분명 있었던 사실인데 난 깨순이 다친 것도, 깡순을 때린 것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동생이 다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고 힘들었을 텐데 누명을 쓰고 맞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의 깡순이를 힘껏 껴안아 주고 싶어서 눈물이 난다. 병원에서 돌아온 내가 깡순에게 제대로 사과를 했는지가 궁금한데 깨순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엄마한테 맞고 파랗게 질려서 울던 언니만 두고두고 떠올랐다고. 누군가 억울한 경우를 당했다고 호소하면 그때 우리 언니만큼?하며 비교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작은딸이 손가락을 다쳐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데 빨리 병원 갈 생각은 않고, 그 원인을 제공했다며 큰딸을 단죄하는 행동부터 했다니 난 아무래도 엄마 자격이 없었던 것 같다. 왜 날 때리느냐고 대들지 않았던 깡순이. 그 후로도 종종 그런 일을 겪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처럼 혼자 잘 삭여 왔겠지?
 
깡순이가 처음으로 내게 먹을거리를 부탁하는데 산삼이라도 캐서 주고 싶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사서 주길 바랐을 텐데 웬일인지 직접 만들어 달라고 한다. 울 딸들은 내가 만든 반찬에 대해 점수가 박하다. 반찬 가게에서 사는 쪽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엄마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예쁘게 해석하는 사람들 많은데 내 딸들은 내가 잘 안다. 진짜로 사 먹는 반찬이 더 맛있어서이다.
 
깡순이가 반찬이 필요하다고 한 건 처음이었다. 사서 줄까 물었더니 그냥 집 반찬이 좋겠단다. 난 감격했다. 엄마가 만든 반찬을 먹고 싶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한 달 동안, 사 먹은 음식에 질려서 집밥이 그리웠던 것이다. 신나게 반찬을 했다. 멸치와 소고기 고추장 볶음도 하고 깻잎도 60장이나 양념해서 무쳤다. 친환경 인증 마크가 쾅쾅 찍힌 반찬 통들을 사서 깨끗이 씻어 말려 반찬들을 담았다.
 
그러느라 가게도 못 나갔다. 시제나 명절에 조상님들 음식대접 한다고 음식 만들 때는 피곤하다며 생색내기 바빴는데 딸을 위해 반찬을 만드니 즐겁기만 하다. 가게를 못 나가도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다. 종일 만든 반찬으로 늦은 저녁을 먹는데 깡순의 맛있다는 한마디에 행복해진다. 시제 때 만들어놓고 냉동실에 둔 서대찜과 새우까지 꺼내 먹으니 성찬이었다.
 
조금 전까지 음식들을 소분해서 싸고, 담고, 뒷정리를 했다. 친구가 준 묵은김치와 파김치와 매실 장아찌도 담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의 엄마 노릇은 난생처음인데 은근 체질인 듯 즐겁다. 가전제품과 반찬들을 들고 차를 몇 번씩 갈아타게 할 수는 없으니 깡순이를 데려다주려 한다. 이왕 가는 길, 시부모님도 모시고 깡순의 부대 근처에서 하룻밤 자고 오기로 했다.
 

<시니어리포터 장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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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장명신 (춘심이 혹은 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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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호연 4월17일 오전 5:25
엄마의 진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부디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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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4월18일 오전 10:19
엄마라서 행복합니다. 자랄 때 누구나 그렇듯이 말썽을 부렸는데 그조차도 소중한 기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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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라 4월16일 오후 5:40
자식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아리는 것같아요 아무리 해줘도 모자르는것 같고 따님과 같이 주방기구들을 사러다니시는 즐거운 모습이 선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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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4월18일 오전 10:20
날마다 내가 해준 반찬들이 얼마나 줄었는지 확인하곤 합니다. ㅎㅎ 버릴까봐 걱정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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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4월16일 오후 12:01
자식 키우다보면 왜 그리 후회가 많은지...부모거 처음이라 우리는 미흡했던거 같아요. 그래도 자식이라 이해해주고 감사해주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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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4월18일 오전 10:22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됐는데도 서툴었어요. 전 결혼에 어울리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이제 조금 각이 잡히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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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4월16일 오전 9:01
따님은 죽어도 영원한 내사랑이요 아드님은 머나먼 내사랑이라 했죠. 난 딸이없어 그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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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4월18일 오전 10:23
전 남의 집 아들들이 그리 예쁘더군요. 아들은 아들대로 얼마나 좋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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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4월16일 오전 8:48
누구나 부모자격증을 따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아는대로 했던 저의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엄마 모습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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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4월18일 오전 10:24
저도시험봐서 엄마 뽑았으몈 애저녁에 탈락했을 거예요. 그래도 제게 찾아와 엄마로 만들어준 딸들이 진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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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4월16일 오전 8:37
처음하는 엄마 노릇이라니요. 그동안은 엄마 노릇 안 했나요? 암튼 깡순이 축하하고 늘 좋은 일들만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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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4월18일 오전 10:27
솔직히 현명한 엄마는 아니었어요. 좌충우돌,우왕좌왕. 실수가 많았지요. 그래도 제가 복이 많아서 여기까지 무탈하게 왔네요.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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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4월16일 오전 8:15
깡순이의 마음에 들게 반찬이 만들어져서 다행이네요. 이제 한번 마음에 들기 시작했으니 이제 계속해서 마음에 들거라고 봅니다. 딸과의 대화 모습 잘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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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4월18일 오전 10:28
밥 해먹었다고 할 때마다 반찬이 쑥쑥 줄어들기를 바라게 됩니다. 버릴까봐 조마조마. 그리 애써서 만들어 보냈는데 버리면 안되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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