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피는 찔레꽃을 보며

 

생전 아버지는 통일을 기다리셨고 엄마는 봄을 기다리셨다. 아버지는 고향이 황해도 해주이고 엄마는 서울이다. 두 분 다 서울서 공부를 하시던 중 엄마는 아버지를 만나 해주로 시집을 가셨다. 엄마가 봄을 그토록 기다린 이유가 있다. 찔레꽃이 보고 싶으신 것이었다. 해마다 보는 찔레꽃이건만 그래도 새봄에 피는 찔레꽃을 기다리셨다.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는 찔레꽃이 송알송알 꽃봉오리를 맺고 있다. 나는 엄마 보듯 보기 위해 베란다에 찔레꽃을 심었다.
 
이제 얼마 있으면 한국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이 돌아온다. 엄마가 평생 잊지 못하고 이날이 오면 해마다 우리 형제를 무릎에 앉히고 말하고 또 말하던 그 끔찍한 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처음에 엄마의 해주 시집살이는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놈의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그 행복이 달아났다고 했다. 한 아이는 등에, 한 아이는 손에, 배 속에 아이를 갖고 엄마는 가시 덤불길 38선을 한밤에 넘어왔다. 아버지는 그 당시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이유로 잡히면 총살감으로 지적되어 경기도 양주에서 서로 만나기로 약속하고 몰래 북한군 눈을 피해 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칠흑 같은 한밤에 그 가시덤불을 헤치고 넘어오긴 왔는데 어디가 어딘지 몰라 혹시나 아이와 헤어질까 봐 허리끈으로 묶고 그냥 앞만 보고 달렸다고 했다. 그리고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인 그 집을 행해 가서 싸리문을 열고 “여기가 남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한 할머니가 “예.”하는 소리에 그냥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엄마는 3일을 엄마와 오빠, 나를 극진히 보살펴주신 그 할머니를 잊을 수가 없다 하셨다. 그리고 정신이 났을 때 그 집 앞 울타리에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고 했다. 작지만 옹기종기 함께 모여 피어있는 하얀 찔레꽃이 너무 예뻤다고 했다. 그 후로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찔레꽃이었다. 대구에까지 피난 가서 살 때도 찔레꽃을 심었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도 찔레꽃을 심었다. 찔레꽃은 다년생 식물로 봄에 연둣빛 새순을 올리고 늦은 봄 아주 예쁜 작은 꽃을 피우고 가을에 빨간 작은 씨앗을 맺고 잎이 떨어지고 줄기로 겨울을 나고 다시 봄이면 새순이 나온다.
 
양주에서 아버지를 만났고 방공호 속에서 아래 여동생을 낳았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났고 대구까지 피난 가서 내가 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엄마는 어려운 피난 생활로 많은 고생을 해서 그런지 일찍 당뇨가 왔다. 오랫동안 고생하다 1990년부터 더욱 악화되었지만 해마다 봄이 와서 찔레꽃을 보는 희망으로 버티셨다. 아버지는 통일되면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시며 엄마에게 희망을 주셨다. 그러나 1993년 3월에 병원에 입원하면서 찔레꽃을 기다리다 그 꽃을 못 보고 3월 20일 70세로 돌아가셨다.
 
봄도 왔다. 베란다의 찔레꽃도 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찔레꽃을 기다리시던 엄마도 그토록 통일을 기다리시던 아버지도 계시지 않는다. 다시 그 잊지 못하는 6월 25일은 또 어김없이 온다. 그러나 다행인 일이 우리나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지금 같아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고향을 북에 둔 사람들은 믿는다. 엄마, 아버지가 살아계셔 이 사실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시니어리포터 조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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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조원자 (큰며느리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많은 이야기 나누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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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호연 4월16일 오후 10:44
봄과 찔레꽃 6.25 동란, 38선 방공호, 방공호에서 누이 동생, 대구 등등 험란한 삶의 여정 속에서도 꿋꿋하게 인동초의 인내심으로 오늘의 조원자친구님으로 상장하신 모습을 보면서 진흙탕 속에서 천상의 꽃 연꽃을 피워내는 고매함을 느낍니다. 찔레꽃 하면 이제 조원자 친구님이 생각날 것 같습니디. 남은 생 건강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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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17일 오후 9:36
감사드립니다. 해마다 6.25가 오면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 겪은 고생을 책으로 내면 수권이 될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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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남 4월16일 오후 8:31
그 와중에 가족들과 헤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끈으로 묶고 내려 오셨다니! 그러니 찔레꽃을 볼때 마다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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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16일 오후 9:02
네, 저의 베란다에 찔레꽃을 심었답니다. 고운 찔레꽃입니다. 찔레꽃은 거의가 흰 작은 꽃인데 분홍찔레꽃도 곱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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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라 4월16일 오후 7:53
찔레꽃 보실때 마다 부모님이 그리우시겠어요 찔레꽃은 처음 보는데 이쁘네요 잘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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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16일 오후 9:03
네, 흰 찔레꽃은 순박해서 곱고 분홍찔레꽃도 곱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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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선 4월16일 오후 5:31
찔레꽃은 그리움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더 애틋한 사연이 있는 꽃이군요 그리고 저는 붉은 찔레꽃은 지금 선생님이 올려주신 사진으로 처음 봅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하는 노래의 꽃은 해당화를 찔레로 잘 못 알고 썼다고 합니다 글 아니 사모곡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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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16일 오후 9:04
감사합니다. 작은 분홍찔레꽃도 있어 사와서 베란다에 심었습니다. 해당화는 많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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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4월16일 오후 3:49
봄이면 들에도 산에도 찔레꽃 향기가 진동합니다. 이맘때면 부모님이 더욱 그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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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16일 오후 9:05
네, 해마다 찔레 꽃이피고 6.25가 오면 생각나는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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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4월16일 오후 12:05
세월이 지나며 변화가 오도 있는데 좋은 방향 이기를 기도 합니다. 부모님 생각 많이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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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16일 오후 9:06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모두 믿습니다. 전쟁은 참혹해 절대로 일어 나면 안된다고 엄마는 하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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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4월16일 오전 8:44
역시이군요, 저도 6월이면(음력으로는 5월 )제가 사모곡을 쓰면서 펑펑울던 생각이나죠. 우리어머니께서도 "찔래꽃붉게피는 남쪽나라내고향"하던 생각에 또 눈시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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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16일 오후 9:08
네, 선생님의 어머님께서도 찔레꽃을 그리워 하셨습니다. 생각 많이 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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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4월16일 오전 8:43
꽃을 보며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아버지 고향이 황해도 사리원이랍니다. 아버지 대신 통일되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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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16일 오후 9:09
네, 신계면 사리원...많이 들은 이름입니다. 그럼요. 통일 되면 가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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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4월16일 오전 8:26
찔레꽃이 필적마다 어버님과 어머님이 그리워지겠네요. 통일이 그날이 기다려 집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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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4월16일 오후 9:09
네, 언제인가 통일이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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