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쌀의 추억
 
식구들이 봄인데 뭐 색다른 김치가 없느냐며 김장김치에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김장김치가 아직도 남았는데 김치전이나 김칫국을 해 먹어야 해서 비상으로 한 통은 남겨두고 봄김치를 담글 겸 재래시장에 열무와 얼갈이를 사러 갔다. 열무김치는 빻은 고춧가루보다 홍고추를 갈아서 담가야 더 산뜻한 맛도 나며 구수하기도 하다. 홍고추를 사러 시장 골목에 들어갔다가 작은 자루에 담긴 찐 쌀을 보고 옛 생각이 나서 무척 반가웠다. 한 됫박 살까 말까 망설이다 말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누구나 보릿고개를 겪었다고 한다. 보릿고개란 하곡인 보리가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가을에 걷은 식량이 다 떨어져 굶주릴 수밖에 없게 되던 4∼5월 춘궁기(春窮期)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전해 온다.
 
지금 어린아이들에게 보릿고개가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책에서 배운 대로 식량이 없어 어려웠던 시절이라고만 하지 실제로 겪지는 않아 잘 모른다. 그러나 내 나이나 우리 부모님들은 직접 보릿고개를 겪었다. 어려운 집안은 쌀이나 보리 등 식량이 떨어져 멀겋게 죽을 쑤어 먹었다. 
 
그 시절 각 가정에는 아이들도 보통 다섯 여섯으로 이보다 넘는 집이 많아 아이들이 배가 고파 우는 집도 많았다. 우리 집 그랬다. 피난 생활로 어려울 때 할머니는 이맘때면 멀겋게 팥죽을 끓이다가 직접 손으로 밀어 만든 칼국수를 조금 넣어 팥 칼국수를 만드셨다. 처음에는 맛있게 먹고 저녁에는 먹고 남은 잔뜩 불은 팥죽에 물을 더해 양을 늘려서 온 식구가 먹었던 기억이 난다.
 
찐쌀을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대구에서 살던 집은 위채 아래채였다. 아버지가 살림에 보태기 위해 아래채를 지어 부엌이 달린 방 3칸을 만들어 자취생을 두었다. 그중 한방에 아버지가 다니시는 학교의 나랑 같은 학년인 중학교 1학년생이 들어왔다. 키는 작았지만 야무지게 차돌 같이 생긴 학생으로 고향이 선산이었지 싶다. 
 
나랑 친구가 되어 거의 3년을 살았는데 학생의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아들이 먹을 여러 가지 쌀과 반찬, 간식 등을 가져왔다. 그리고 방학이 되어 학생이 고향에 내려갔다 오면 많은 것을 가지고 왔는데 그중에 꼭 고구마와 찐쌀이 있었다. 학생의 어머니가 주인집도 맛보라고 우리에게 나누어 주셔서 나는 그때 찐쌀을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쌀이 여물기 전에 타작하여 쪘기에 색깔은 좀 누랬지만 맛이 말랑하며 쭌득쭌득하여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모른다. 마치 약밥을 만들려고 찹쌀을 시루에 애벌로 찐 밥 같았다. 한입 잔뜩 물고 우물우물 씹는 맛은 무어라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학생이 주기도 하여 많이 먹었다.
 
그런데 이 학생에 대해 재미난 추억이 있다. 우리 집에 온 지 한 일 년이 되어 갈 무렵 학생 집에서 학생에게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라고 누나를 보낸 것이었다. 나보다 서너 살 위인 이 누나가 살림하는 모습이 얼마나 야무졌는지 모른다. 매일 학생이 학교에서 오기 전에 밥을 지어 놓고 기다리고 빨래도 폭폭 삶아가며 하얗게 말끔하게 잘하여 우리 집에는 시골 참한 색싯감이라고 얼마나 칭찬이 자자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학생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편찮아 고향에 내려간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은 이 누나가 집안에서 미리 정해놓은 며느릿감이라 했으며 얼마 지나 결혼했다는 소식이 전해 왔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허다했기에 놀라면서도 그리 놀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쩐지 하고.
 
찐쌀을 보니 그때 그 학생과 누나 아닌 누나가 생각이 난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보아도 몰라 볼 정도지만 아마도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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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조원자 (큰며느리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많은 이야기 나누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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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신영애 5월25일 오전 10:08
아득한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오는 소설의 한귀절 같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국민학생 시절 가장 먼저 찐쌀을 가져오는 농갓집 친구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답니다. 찐쌀이 날때쯤엔 항상 어머니를 졸라 찐쌀을 사서 잇몸이 아플때까지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조원자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항상 정겹고 어린 시절의 고향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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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25일 오전 11:16
신영애님, 읽어주셔 감사하고 잠시나마 찐쌀에대한 추억을 가지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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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성하 5월21일 오후 8:57
저는 찐쌀의 기억은 없네요.
추억으로 남아있던 그 시절을 꺼내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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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22일 오후 5:41
네, 제가 경상도 대구에서 잘라서...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 갖고 와 먹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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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선 5월21일 오후 7:20
찐쌀은 한 볼 가득 넣고 먹어야 맛이 있지요 찐쌀은 남부지방에만 있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나락이 덜 익어서 수확은 할 수 없고 차례는 지내야 하는데. 남부지방은 벼가 만생종이라 늦게 익기 때문에 덜 익은 벼를 그냥 해 먹으면 다 부셔저서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솥에 쪄야 부셔시지 않고 먹을 수가 있어서 찐쌀(올벼쌀)이 생긴 것입니다 지금은 별미이지요 추억이 우러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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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22일 오후 5:40
네, 맞습니다. 선산은 경상도입니다. 경상도 친구들이 찐쌀을 많이 갖고 와 먹곤했습니다. 쭌득한 찐쌀이 얼마나 구수하였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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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술 5월21일 오전 9:50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보릿고개 시절이 이 글을 읽어면서 그때 그시절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배곱았던 그시절이 오히려 정이 많았고 그때의 친구들이 더 그리워 지며 찐쌀은 아직 먹어보지 못해서 그때의 추억은 없어 아쉽습니다. 옛추억을 생각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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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21일 오전 10:54
네, 감사합니다. 때로는 오손도손 부모형제, 이웃끼리 지낸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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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5월16일 오후 9:12
그 학생 일찍 장가 간 거네요. 제 동창도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장가 간 아이 있었어요. 종손이라고...그애 생각이 나네요.
재작년인가 청도 주왕산에 갔다가 찐쌀 사와서 남편이 아주 맛있게 먹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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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16일 오후 10:11
네, 그뒤로는 못 보았답니다. 일찍 장가간것이 좀 그랬나봅니다. 다음에 찐쌀을 보면 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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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5월16일 오후 4:14
찐쌀을 볼이 터져라고 입안에 넣고 책을 읽으면서 오물오물 했던 옛날이 아련하게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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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16일 오후 6:16
네. 그랬지요. 입안가득넣고 우물우물 오랫동안 씹었지요. 구수한 맛이 그만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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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5월16일 오후 2:50
부자셨네요, 저는 6.25때 인민군과 중공군의 미싯가루를 얻어먹고 미군 짬밥끓여먹고 살았고 종전때는 잡풀뜯어 풀떼기죽으로 연명했는데요. 끔찍스런 추억 다시는 없어야 할텐데 요즘 매우 불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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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16일 오후 6:17
아니에요. 아버지가 학교에 나가시면서 형편이 좀 나아졌답니다. 네, 반드시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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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5월16일 오전 11:20
저희들은 어렸을 때 올갯쌀이라해서 먹었는데 참 구수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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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16일 오후 6:20
올개쌀과 찐쌀이 같지 않나 싶습니다. 지역마다 말이 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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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 5월16일 오전 10:36
저희 어머니도 간식으로 찐쌀을 즐겨 드시곤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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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16일 오후 6:21
네, 예전의 어머님들은 모두 맛보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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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5월16일 오전 9:57
예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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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16일 오후 6:22
감사합니다. 에전에는 시골에서 도회지로 올라와 자취를 많이 했습니다. 그 시절의 추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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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5월16일 오전 9:37
,,,님! 아련한 지난날의 잔잔하고 00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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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16일 오후 6:22
무슨 이야기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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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5월16일 오전 8:29
진쌀은 옛날에는 어려웠던 시절에 먹었던 것 같은 데 지금은 그것이 더 비싸고 귀하게 느껴지네요. 진쌀에 대한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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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5월16일 오후 6:23
네, 쌀이 흔하닌까요. 음식이 흔해서 보릿고개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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