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 교동면 읍내리 유적지 탐방
지난 3월 18일 ‘강화나들길 제9코스 교동도 다을새길–공자 선사시대를 만나다’에서 수형이 아름다운 느티나무를 소개했다. 그때 Yourstage 시니어 친구분들께 새싹이 나오면 아름다운 수형의 느티나무를 다시 포스팅해 드리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래서 지난 5월 12일에 현장에 가 보았는데 아직도 새싹이 잘 돋아나지 않아서 그냥 돌아왔다가 다시 6월 5일 현장에 가보니 사진과 같이 이파리가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교동읍성에서 자라고 있는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315년 수령의 느티나무]
 
그런데 이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20여 m 지점에 연산군 적거지(謫居址)가 있다. 또한, 교동부지,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씨를 위해 제사를 모시는 부근당(扶芹堂), 중국 사신들이 교동도 주변을 경유해서 한양으로 지나다녔는데 사신들이 드나들 때 안전을 위해서 제사를 지냈던 사신당(使臣堂) 등등 역사 유적이 몰려 있다. 이 지역에 이런 유적지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시면 여쭤보면서 역사 탐방을 해 보고 싶었다.
 
마침 골목에 나와 계시는 교동면 읍내리에 사시는 김영환(79) 옹(翁)을 만났다. 김영환(79) 옹(翁)께서는 읍내리에 얽힌 유적지에 대해 잘 알고 계셨고, 그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 주셨다. 사신당(使臣堂)과 그 위치를 알려 주시고 설명도 해주셨는데 설명해 주신 내용을 중심으로 탐방한 내용을 리포트해 보겠다.
 
모두(冒頭)에서 언급했던 수형이 아름다운 느티나무는 교동읍성 위에서 자라고 있다. 다른 산성을 둘러보면 산성 근처에서 자라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들도 모두 베어내고 있는데 이 느티나무만큼은 무슨 특별대우를 받는지 버젓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교동읍성이 바로 이 교동면 읍내리를 감싸고 있다.
 
교동읍성 안쪽으로 형성된 이곳에는 면사무소, 교동부지, 금융조합, 우체국, 지서 등 모든 관공서가 모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유지로 되어 있어서 유적지로서의 보존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고 유물들이 방치된 듯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강화도는 지붕 없는 노천 박물관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간단하지만 새로운 역사 유적지를 탐방할 계획을 세우니 새로운 힘이 솟아났다.
 
[교동도의 지형도]
 
유적지 탐방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강화도서관에 들러 교동도 유적지에 관련된 참고도서도 열람하고 자료도 수집해 왔다.
 
[교동읍성(喬桐邑城)]
 
교동읍성(喬桐邑城)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로 소재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577번지 일원이다. 조선 인조 7년(1629) 교동에 경기 수영을 설치할 때 돌로 쌓은 읍성이다. 둘레 430m, 높이 6m 규모로 세 개의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상루, 남문을 유량루, 북문은 공무루라 하였다. 영조 29년 (1753) 여장을 고쳐서 고종 21년(1884)에는 남문을 다시 고쳤다. 동문과 북문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남문은 1921년 폭풍으로 무너져 홍예문만 남아 있다. (출처: 안내판)
 
[연산군적거지(燕山君謫居址)]
 
연산군적거지(燕山君謫居址)는 향토유적 제28호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270번지에 있다. 연산군은 조선 제10대 왕으로 성종의 맏아들이다. 즉위 초에는 다소의 업적을 이루었으나 어머니 폐비 윤씨가 사사(賜死) 된 후 세자 시절을 불우하게 보낸 탓으로 이상 성격이 형성 점차 향락과 횡포를 일삼아 많은 실정을 저질렀다. 두 번씩이나 사화를 일으키는 등 성품의 광폭함이 드러나자 마침내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나 왕직을 박탈당하고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병사했다. (출처: 안내판)
 
[부근당(扶芹堂)]
 
부근당(扶芹堂)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255번지에 있다. 교동면 읍내리 주민들의 유배 오신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 씨에 대한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다. 부근당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교동에서 생을 마감한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 씨 화상으로 추정하는 탱화가 걸려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들 원혼을 달리기 위해 폐주가 죽은 11월에 당굿을 지냈으며 섬 처녀를 등명(燈明)하는 처녀 봉공을 하였다는 구전이 내려오고 있다. 최근까지 격년제로 제를 지냈다고 하나 지금은 제를 지내지 않고 있다. 부근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연산군적거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으나 관련 유적에 대한 정밀조사가 요구된다. (출처: 안내판)
 
[교동면사무소 터]
 
교동면사무소-1910년 일제 강점 후 교동은 4개면 13개 리(里)로 행정구획이 변경되었다가 곧이어 1914년 교동군이 강화군과 합군되면서 동서남북 면을 화개면과 수정면 2개면으로 나누었다. 당시 화개면 사무소는 읍내리 성내동에 두었고, 수정면 사무소는 현 난정리에 속하는 구정부래구정골에 두었다. 다시 1934년 화개면과 수정면을 합쳐 교동면이 되면서 화개면에 사무소를 수공하다가 1948년 대룡리로 이전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은 교동의 위세가 격하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사유지로 경작되고 있다. (출처: 최중기 외, 인천섬 총서1 교동도, 민속원, 2015)
 
교동 지서-1911년 강화경찰서 교동경찰관 주재소로 설치되었고 당시 일본인 경찰관과 헌병 10여 명이 치안을 담당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난정리에도 주재소를 두었다가 1922년 철수하였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교동지서로 승격하고 8~9명의 경찰관으로 치안을 담당하다가 1948년 교동면 사무소가 대룡리로 이전하면서 교동지서도 이전하여, 현재는 파출소로 불린다. (출처: 최중기 외, 인천섬 총서1 교동도, 민속원, 2015)
 
[교동부지(喬桐府址)]
 
교동부지(喬桐府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에 있다. 조선 인조 7년(1629)에 남양 화량진에 있던 경기 수영을 이곳으로 옮기고 이후에 교동현이 교동도호부로 승격되어 설치한 관아 건물이다. 관아와 객사를 비롯하여 내아 외아 등의 관청 건물과 안해루, 삼문루 등의 누각이 설치되어 조선시대 일반적인 지방관아의 형태를 따르고 있었으나 현재는 안해루에 사용된 높이 2m 석주 두 개 많이 남아 있다. (출처: 안내판)
 
[교동 금융조합 터]
 
교동 금융조합-교동 구우조합에 관한 기록은 전무한 편인데, 교동 금융조합은 1920년경에 교동 읍내리 교동부사 자리에 설치되었고, 1955년 금융조합이 해체되어 강회농업은행 교동지서로 개칭되었다. 그 후 1959년 군농회와 축산농업조합을 통폐합하여 농업협동조합으로 개칭하고, 1973년 대룡리로 이전하였고, 현재는 연쇄점도 갖춘 규모로 성장하였다. 협동조합장은 교동에서 유일하게 직선제 기관장에 해당된다. (출처: 최중기 외, 인천섬 총서1 교동도, 민속원, 2015)
 
[황룡우물 黃龍井]
 
황룡우물(黃龍井)은 조선 태종(1418) 때 황룡이 출연했다고 전해오는 우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황색대룡(黃色大龍)이 교동 수군의 군영 앞에 있던 우물 안에 가득 차게 보였는데 허리의 굵기가 기둥과 같았으며 우물의 둘레는 12척 5촌(395cm)이요. 길이는 2척 3촌(73cm)이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윤하가 보고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출처: 안내판)
 
[사신당(使臣堂)]
 
[사신당(使臣堂) 내실에 게시되어 있는 탱화]
 
사신당지(使臣堂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에 있다. 고려 때 송나라 사신이 해로를 이용하여 배로 왕래할 때에 교동도 앞바다를 지나면서 무사태평하기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당집이다. 해변 바위에는 징으로 쪼아 만든 층계가 아직도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게 해준다. 6·25 때 당집이 없어졌던 것을 1969년 다시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안내판)
 
강화도는 지붕 없는 노천 박물관이다. 우리 역사의 시원(始原)인 마니산 참성단을 비롯하여 역사의 모든 부분이 면면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교동면 읍내리에 산재해 있는 유적지만을 둘러보았는데도 둘러보고 난 소감은 방치되거나 사유지가 되어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는 모습에서 개탄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필자는 2016년 전반기에 한 학기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역사학 특강을 수강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우리의 역사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유익한 특강이었다. 그때 들었던 강의 내용 중에 지금도 뚜렷이 기억되는 것은 중국의 역사관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중국의 한 자치구의 역사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 것인지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중국의 역사관에 비교해서 우리의 역사관은 어떤가? 아직도 통일된 역사관이 없다. 국정 역사 교과서 채택 하나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했고, 결국 없던 일이 되고만 사실 하나를 두고 보아도 우리의 역사관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루빨리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겠고, 산야에 흩어져 있는 유물이나 유적지에 대한 대대적인 유지 및 보수를 철저히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시니어리포터 이호연>

추천하기9
  • 페이스북 공유 트윗터 공유 Google Plus 공유
시니어리포터 이호연 (afterglow)
좋은 친구 분들과 이웃하고 있는 Yourstage는 저의 제 2 고향입니다.
Copyright ⓒ 시니어파트너즈 & Yourstage.com 저작권은 시니어파트너즈에게 있습니다.
나도 한마디
조규옥 6월13일 오후 12:28
저 느티나무가 내 눈을 사로 잡았습니다.
내 컴 화면에 저정하려고 했더니 안 되네요 ㅎㅎㅎ
그래서 한참 바라보다 발길을 돌립니다
답글쓰기
이호연 6월13일 오후 1:49
조규옥 친구님! 반갑습니다. 신보경 친구님께서는 이 느티나무에서 신령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셨어요. 이메일 아이디 알려주시면 원본 파일을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답글쓰기
조규옥 6월13일 오후 3:00
감사합니다. gyuok2002@hanmail.net 입니당. ㅎㅎ
답글쓰기
이호연 6월19일 오후 4:35
오늘(6월 19일) 교동읍성 느티나무 사진파일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답글쓰기
유혜경 6월12일 오후 9:40
교동읍 읍내리를 함께 다녀 온 느낌이에요.
정성어린 포스팅 감사합니다.
답글쓰기
이호연 6월12일 오후 9:55
유혜경 친구님! 감사합니다. 길을 걸으며 역사를 논하다라는 느낌으로 걸은 나들길입니다. 이런 길이라면 끝없이 걸을 것 같습니다. 동행인이 유혜경 친구님이라면 맛있는 군고구마도 사드리고 말입니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답글쓰기
조원자 6월12일 오후 9:24
강화도는 지붕없는 노천 박물관이란 말이 딱 맞는 듯합니다. 폭군 연산군이라하지만 마음 속은 아마도 아니였을 듯합니다.
답글쓰기
이호연 6월12일 오후 9:53
조원지 친구님! 역시 정이 많으신 말씀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그렇게 여의고 마음 오죽했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입니다.
답글쓰기
이송식 6월12일 오후 8:37
명예강화군수님! 교동정보는 좋았구요, 정말로 세상은 넓고 좁아요 비록만난지는 얼마되지않았지만 박봉하씨는 정말로 가귈분인데 어떻게 아시게되었는지 반갑더라구요, 이싸이트에서나마 종종 만나요.
답글쓰기
이호연 6월12일 오후 9:51
이송식 친구님!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제가 처음 박봉하님을 뵈었는데 이송식 친구 잘 부탁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부탁 받아야 하는데요. 그렇게 된 것입니다. 좋은 분 만났으니 좋은 교분 나누기로 하십시다.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답글쓰기
이호연 6월12일 오후 6:46
교동도 교동면 읍내리 유적지 탐방
https://www.yourstage.com/reporter/reporter_newsview.aspx?thread=111881
답글쓰기
박옥희 6월12일 오후 4:17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 교동도에서 복무하기도 했답니다...ㅎ 강화도, 영종도, 교동도 아들은 언제 한 번 가 보고 싶다던데요...ㅎ
답글쓰기
이호연 6월12일 오후 6:39
박옥희 친구님! 반갑습니다. 아들이 교동도에서 근무했군요. 잘 됐습니다. 교동도 대룡시장에 가셔서 70년대 시장 구경하시고 찹쌀 꽈배기로 출출한 기운 달랜 후에 강화나들길 제9코스를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역사 스토리 흥미진진합니다. 아들이 가이드하면 되겠습니다. 귀한 방문에 댓글까지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답글쓰기
김은아 6월12일 오전 11:42
강화도 한번 가고 싶은데 아직도 못가고 있습니다.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쓰기
이호연 6월12일 오후 6:37
신촌역 1번 출구로 나오셔서 3000번 강화행 직행 버시 타시면 1시간 30분 소요됩니다. 다시 그곳 강화시외버스터미널에서 70번 버시를 타시면 교동도 가는 버스입니다. 교동도에는 강하나들길 제9코스가 있죠. 그 길을 권해드립니다. 기회 되시면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가이드 필요하시면 불러주시고요. 감사합니다.
답글쓰기
신춘몽 6월12일 오전 10:00
이런 맛에 혼자서 길 떠나는걸 즐기시는군요. 근대요 연산군이 강화로 가서 죽었나 보내요?
에고~ 어머니가 그렇게 사사됐으면 자식입장에서 아프겠지만 보란듯이 성군이 되여 죽은 어머니에게 자랑스런 아들이 되였다면 어머니도 그 영광을 함께 했을탠데 말입니다.
강화는 몃번 가 본것도 같은데 ,,,
답글쓰기
이호연 6월12일 오후 6:34
연산군이 강화도로 유배와서 죽었더군요. 보는데서 어머니가 사사되었으니 오죽했겠어요. 아마 십중 팔구는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우리의 근대사입니다. 이렇게 길에서 배우는 역사공부 정말 재미있어요. 강화도는 지붕없는 노천 박물관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역사공부 산실입니다. 귀한 방문에 댓글까지 올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감기 빨리 나으십시오.
답글쓰기
신보경 6월12일 오전 8:55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다 모여있는 곳이 강화도지요. 첫번째 사진의 나무는 신령한 기운이 들어 있는 듯 보입니다.
답글쓰기
이호연 6월12일 오후 6:31
신보경 친구님! 이 느티나무 때문에 이곳을 세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교동읍성에 버젖이 자라고 있습니다. 곁에서 보면 말씀하신대로 구근이 용틀임하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걸 느끼셨군여. 길에서 배우는 역사공부 정말 재미있는 나들길이었습니다. 귀한 방문에 댓글까지 올려 주시에 감사드립니다.
답글쓰기
최고
사랑
기쁨
슬픔
응원
놀람
감사
선택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