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집에서 산다면?
 
며칠 전 집 앞 전봇대에 세 번째 둥지를 튼 까치집 철거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둥지 안에 있던 다섯 마리의 새끼가 털이 듬성듬성 난 작은 몸으로 둥지와 함께 수거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쩐지 봄날 내내 까치 한 쌍이 종횡무진 날아다닌다 싶더니 새끼를 다섯 마리나 거둬 먹이려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그렇게 탈 없이 평화를 꿈꾸던 까치 가족에게 불현듯 들이닥친 주거철거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까치의 입장에서 말이죠. 이제는 익조(益鳥)라는 말도 사용하지 못할 만큼 까치로 인한 피해가 만만치 않아 해조(害鳥)로 구분되고 있는 현실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저 역시 마냥 그들의 입장만 편 들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지난번과는 달리,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철거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졸지에 벌어진 상황에 날지도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거나 둥지 안에 갇힌 채 굴러떨어지는 다섯 마리의 새끼 까치들을 보려니 마음이 편안치만은 않았습니다. 얼마나 겁을 먹었을까요? 그들이 아는 거라곤 곧 자신들의 엄마와 아빠가 먹이를 물어와 배를 채워줄 것이라는 행복한 동화 같은 사실이 전부일 텐데 무시무시한 존재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니 두려움에 몹시 떠는 모양이었습니다. 한 녀석은 그 와중에도 기지를 발휘해 길에 주차된 차 밑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지만 이내 철거맨의 손에 의해 둥지와 함께 트럭으로 옮겨지고 말았지요. 그렇게 그들의 불가항력(不可抗力)은 순식간에 막을 내렸습니다.
 
그들이 떠난 지 3분이나 지났을까요, 곧 그들의 부모 까치가 날아와 주변을 배회하더군요. 허탈했겠지요. 집은 고사하고 새끼들까지 간 곳 없이 사라져버렸으니 심장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허공에 대고 끝도 없는 울음소리를 내었습니다. 개들도 새끼들을 잃으면 시름시름 우울증에 걸려 식음을 전폐하고 앓는다는데 까치인들 제 새끼들을 아무렇지 않게 잊을까 싶어 제 마음이 심란하더군요. 
 
새로 형성된 동네에 이사 온 것까진 좋았는데 전봇대의 전선들을 땅으로 묻는 지중화 사업은 동네가 아직 형성 중이라는 이유로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해마다 까치들의 전봇대 집짓기는 이어지고 이렇게 보지 않았으면 하는 장면들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 같기만 한 제 마음은 며칠을 두고 파도를 탑니다. 
 
이럴 땐 차라리 더 깊은 시골로 갔더라면 이런 장면은 보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드니 까치보다도 나약한 인간인 걸까요? 어정쩡한 도시에서의 적응은 때로 번화한 서울 생활의 적응과는 또 다른 노하우를 필요로 할 때도 있더군요. 완전한 번화가도, 완전한 시골도 아닌 곳에선 그 나름의 살아가는 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도시 밖으로의 자연생활을 담은 책이나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만큼 도시 생활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혹은 해안가에서 나만의 집을 짓고 살며 하늘의 별을 벗 삼아 물소리에 위안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도시인들에게 일상에서의 일시적 탈출 그 이상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건 분명하니까요.
 
 
자연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삶의 단순성을 예찬하는 목소리는 전에도 있었습니다. 2년 동안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얻은 사색을 기록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962)의 ‘월든’이나 미국의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1883~1983)의 ‘조화로운 삶’과 같이, 현대 문명의 부박함을 피해 숲으로, 시골로 들어온 은자(隱者)들의 생활담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주목을 받고 있지요. 
 
단순함과 느림(Slow-life)을 추구하는 자연 회귀의 삶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도시적 일상이 가하는 피로와 속도, 경쟁과 스트레스에 대한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위안이자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 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일이 시작된 모양이더군요. 얼마 전 인기를 모았던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비록 시청률은 바닥을 쳤지만 신선한 시도로 숲속 생활의 가능성을 제시한 나영석 PD의 '숲속의 작은 집'이 그 예입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동명 원작에서 도호쿠의 작은 농촌으로 귀향해 자급자족하는 이치코의 이야기를 서울에서의 고단한 삶에 지쳐 귀농을 결심한 혜원과 고향에 남은 친구들의 전원생활로 옮겨 재탄생시킨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얻고 있는 반향은 오늘날 도시화된 한국 사회에서 보통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건강하고 여유 있는 삶과는 거리가 먼 피폐한 환경임을 반증합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자연 회귀 정서, 농촌에 대한 향수는 도시 소시민의 일상이 처한 병폐와 비인간성을 돌아보고 성찰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를 가져왔죠.
 
나영석 연출의 '숲속의 작은 집' 또한 제작 의도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 여 한 사람씩 자발적 고립 생활을 해나갑니다. 제주의 다른 숲속 작은 집에서 각자 전기와 물을 자생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오프 그리드(Off-grid) 라이프는 마트만 달려가면 수시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며 풍족하게 살던 그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하고 그들의 기본적인 소비생활부터 하루 24시간의 패턴을 변화시키게 되죠. 거기에 매일 컴퓨터로 미션 한 가지씩을 받아 실험적이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은 자못 부러움까지 불러일으키지만, 결과는 시청률의 저조함으로 나타났습니다. 공감은 하나 실제로 따라 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 겁니다. 
 
 
사실 ‘월든’의 소로우도 명망가 출신이고, 니어링 부부 역시 학계의 경력과 명망 덕에 고정된 인세와 강연 수입이 있었습니다. 영화 속 혜원의 생활 역시 작물 재배의 지난한 과정과 시골의 폐쇄적 공동체 문화 탓에 정착에 실패한 경우가 많은 귀농의 어두운 현실은 정성 들인 음식의 빛깔과 차짐을 강조하려는 효과에 눌려 지극히 낭만적인 농촌의 인상만 남긴 결과가 되었지요. 영화와는 달리, 절대다수의 사람에게는 도시를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 기회가 생각처럼 열려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자연 속에서 조용하고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품위와 단순한 삶을 살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경제적인 부를 축적해두었거나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올 직업 기반을 다진 사람들뿐이라는 겁니다. '숲속의 작은 집'이 공감을 나누되 호응을 받지 못한 이유도 그들이 기본적으로 준비해온 식사 장면에서였습니다. 질 좋고 커다란 바나나를 비롯한 고급 식자재들과 매 끼니 커다랗고 두툼한 소고기 스테이크를 구워 먹는 오프 그리드 생활을 소시민들이 과연 얼마나 공감하고 따라 할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를 강조한 결과만 된 게 아닌지. 
 
번화한 서울도, 깊숙한 시골도 아닌 이곳에서 어제는 텃밭 주변에 남겨 두었던 비료를 도둑맞았습니다. 값으로 치면 2,000원 정도 치밖에 되지 않지만 아버지가 일산 장까지 가셔서 사가지고 오신 거니 그 수고를 다시 해야 한다는 부담과 이웃끼리 믿고 비료조차 내놓고 살 수 없는 현실의 각박함이 새삼 쓴맛을 주었습니다. 상상과 현실은 모습은 일치하나 정작 그 틀은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런 거려니 싶어 우리는 어색하게 마주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경(Eco)의 그리스어 어원인 오이코스(oikos)는 본래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의 총체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소수에게만 열린 자연으로의 도피, 찰나에 그칠 피안(彼岸)과 복고(復古)의 환상보다 중요한 건 콘크리트 도시에 처한 다수의 부박한 삶을 더 안정되고 풍요로운 환경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유의 전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옛날 유행했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의 자연 친화적인 집은 꿈속에서나 지어야 할까요? 어제의 꿈이 오늘의 현실이 되어볼 날을 기다려보는 것도 오늘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유의 전환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시니어리포터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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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이영란 (레드)
얼레지 한 송이 보랏빛 그늘을 드리우는 6월, 바람이 살그머니 그리움을 두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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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송식 6월13일 오후 8:48
자연이좋아 노후 주말쉼터를 마련키위해 오늘 양평이라는 소리를 듣고 갔건만 용문에서도 한참가야 닿는곳을 가본 후 기진맥진해서 댓글을 달고있는 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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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자 6월13일 오후 7:52
까치의 새끼사랑 저도 경험을 했답니다. 날기시작하는 까치 새끼가 그만 둥지에서 떨어졌답니다. 어미가 이나무 저나무를 날라다니며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 대던지 카피집 아가씨가 119에 전화했지요. 대원이 와서 무사히 새기를 올려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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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6월13일 오후 3:12
100세 시대를 살려면 숲속의 생활로 슬로우 모드라야 된다지요? 꼭 그 바람을 지닌 사람은 아니지만요. 잘 읽었어요, 푸른 바람이 생의 갈피갈피 저장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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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6월13일 오후 1:31
백 번 공감하면서도 현실이 어떻고...하는
합리를 내세워 도심에서 이렇게 어정쩡 늙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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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6월13일 오후 12:48
숲속에서의 생활이 그리 쉬운게 아니지요.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산 너머 산입니다.
지인도 산에 살겠다고 떠났다가 4년 후에 가까스로 집 팔고 돌아 왔습니다.

서울 한 복판도 시골스러운데가 있으니
그 쯤에서 사는 제가 요즘은 가장 행복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새소리 개구리 소리 등등 숲이 분주하답니다.
덕분에 나도 생기 돌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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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몽 6월13일 오전 11:35
에~고,,,안타까워라,,, 새끼들이 날아 갈수 있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철거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죽었겠지요? 어미 아비는 또 어찌 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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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6월13일 오전 10:22
숲속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을겁니다.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런지요.
도시와 숲의 경계선 쯤인 영란씨가 사는 파주 정도가 아마도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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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6월13일 오전 10:01
저도 서울안 아파트들이 싫다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멀어도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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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6월13일 오전 9:09
전원생활에 대한 생각도 나이를 포함한 자신의 상태에 따라 변합니다. 늘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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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6월13일 오전 8:53
環境(Eco: oikos)!... 저 푸른 숲속에 그림같은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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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6월13일 오전 8:45
삶은 라이프사이클에 맞도록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젊어서 숲속으로 들어거 살 수 없는 일이고 젊어서는 도시에서 많은 할동을 한 후 은퇴 후에는 한적한 숲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지내는 삶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교통수단이 발달해서많은 젊으신 분들도 숲 속 생할을 하고 있더군요. 감동적인 리포터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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