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취급과 어른 대접
 
가게 냉장고를 홀랑 뒤집어엎다시피 했다. 오래된 김치, 작년 가을에 담근 유자차 등등을 버리며 냉장고를 비워낸 것이다. 두부김치용 묵은김치가 너무 오래돼 군내가 나서 언제부터 버려야지 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실행에 옮겼다. 유자차도 맛은 괜찮은데 거무튀튀한 게 비주얼이 별로라 버려야만 했다.
 
손가락에 물집 잡혀가며 애써 칼질해서 담근 건데, 장사도 안된 데다 유자차가 많이 나갈 타이밍에 손 다쳐 입원해버렸으니 결국 버리게 된 것이다. 깡순이 동기 엄마가 애써 보내준 유자였는데 버리면서 엄청 스트레스받았다. 그 외에도 언제 담갔는지도 모를 각종 차가 많았다. 그만큼 장사가 안됐던 것이다. 내용물을 비워낸 김치 통과 유리병들을 씻느라 냄새가 진동하는데 손님이 들어온다. 
 
‘B, B&ㅂ’부터의 손님인 한 교수와 처음 보는 40대 초반의 젊은 교수였다. 한 교수는 유난히 목소리가 크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술도 호기롭게 마신다. 그런데 젊은 교수가 계속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술을 참 잘 드시네요.”라든지 “이제 웰다잉을 고민해야 할 때니 술을 좀 줄이시는 게 어떨까요.” 하며 말끝마다 ‘연세, 연세’ 하는데 굉장히 거북했다.
 
정년을 6개월 남겼다고 하나 이제 겨우 60대 중반인 한 교수. 대통령하고 같은 나이인데 너무 노인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 연세에도 어쩜 그렇게 훌륭한 논문을 써내시다니 놀랐어요.” “그 연세에 어쩜 그리 지치지도 않으신가요?” 계속 이런 식이었는데 칭찬인 듯 칭찬 아닌 칭찬 같은 디스였다.
 
2, 30대도 아니고, 내 보기에는 40이나 60이나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 같은데 너무 깍듯한 어르신 대접이라 한 교수의 표정에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화를 내기도 참 애매한 포인트였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였다. 저 나이에는 60대가, 우리가 90대 보는 것 같겠구나.
 
비로소 룸녀들이 아빠뻘인 남자들한테 ‘오빠, 오빠’하며 반말 찍찍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예의 바른 후배한테 받는 깍듯한 어르신 대접보다는 싹수없는 애들한테 젊은 오빠로 함부로 취급받는 게 훨씬 기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상상력을 발휘해 보니 김치 냄새 풀풀 풍기는 늙은 아줌마를 멀리서부터 찾아온 선배에 대한 얄궂은 복수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노인 취급과 어른 대접은 한 끗 차이라는 결론과 함께.
 

<시니어리포터 장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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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조원자 8월11일 오전 7:57
어른 대접을 받으려면 우선 어른다운 행동을 하라하는 데... 시원한 유자차를 생각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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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8월28일 오후 3:09
지나친 어른대접은 오히려 결례라는 걸 깨달았어요. 저판테도 연세가 어찌.되냐고 묻는 젊은이들이 있던데 별로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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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8월10일 오후 11:12
노인 취급과 어른 대접에 대한 구분이 확실하네요...유자차 아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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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8월28일 오후 3:11
지나치게 어르신 대접받는 거 놀림 받는 기분이에요. 저도 조심하려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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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8월10일 오후 3:46
어른대접을 받을수 있는게 중요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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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8월28일 오후 3:12
맞아요. 어른대접 받을 자격 갖추기도 쉽지 않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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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8월10일 오후 1:11
참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같은 호칭인"오빠"라는 애층도 상황에따라 다른 표현이니말입니다.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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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8월28일 오후 3:13
스무살 남짓한 아가씨들이 아버지 또래의 아저씨들한테 오빠 오빠 거리는 거 참 별로던데 당사자들은 개의치 않더라고요.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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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8월10일 오전 9:15
제 나이가 변하는데 따라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나이가 변하게 됐습니다. 저는 청춘이고 80은 되야 어르신, 노인이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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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8월28일 오후 3:15
제 기준으로도 80은 넘어야 어르신인데 막상 그 나이 되면 또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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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8월10일 오전 8:08
버리시면서 아깝다 우짜노 하셨겠습니다
비지찌개를 많이 해야 하는 식당주인이 묵은김치 버리는 분들은 갖다 달라는 말이 상각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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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8월28일 오후 3:16
아하...묵은 김치가 식당에서는 유용한 주재료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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