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예찬
 
우리나라의 텃밭 인기는 이제 최정상을 찍고 생활화되고 있다. 예전엔 은퇴 세대나 소일거리로 선호하던 텃밭이 젊은 세대에게도 하나의 생활이 되어간다. 그렇게 땅은 교육의 현장으로, 또 하나의 삶을 고르는 영역으로 친숙해지고 있다. 갈수록 땅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만큼 자연이 주는 혜택이 크다는 것과 자연과 인간이 일치한 삶을 살 때 자연에서 얻어지는 풍요로움이 행복을 준다는 얘기다.
 
<땅의 예찬>은 현대 사회에 대해 폭넓은 통찰력으로 날카로운 비판을 해왔던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한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출간한 책이다. 어느 날 땅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 저자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개인 정원을 '비밀스러운 정원'이라는 뜻의 '비원'이라 명명하고 식물들을 길렀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가 3년 동안 정원을 일구며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정원에서는 무엇보다도 몸으로 계절을 느낀다. 빗물받이통에서 떨어지는 물의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몸속 깊이 파고든다. 하지만 거기서 느끼는 고통은 좋은 것,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p.22)라고 말하는 한병철에게 정원은 가르침을 선사하고 감각을 되살려주는 공간이다. 따라서 정원이 온갖 정보와 쾌락으로 가득한 컴퓨터 모니터보다 더 많은 세계를 품고 있으며, 디지털 세계에서 잃어가는 현실감을 회복시켜 준다는 점도 정원의 매력이라 털어놓는다.
 
우리나라에선 정원이라고 하면 규모가 크고 주로 꽃과 나무를 키우는 마당의 의미로 국한해 생각하지만 여기에서의 정원은 말 그대로 정원 자체의 포괄적인 개념을 말한다. 물론 저자는 식물 중에서도 화훼에 열중인 모습이지만 식물을 가꾸고 기르는 그 모든 행위를 비롯해 땅에 대한 총체적인 예찬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 눈길이 이 책에 깊이 머문 건 솔직히 텃밭 덕분이었다. 3년 동안 텃밭을 가꿔오면서 부쩍 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텃밭을 가꾸기 전엔 마당의 꽃 가꾸기가 자연과의 소통의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이젠 배춧잎의 나비 애벌레를 잡아주고 민달팽이의 습격으로부터 끝까지 열매가 잘 맺도록 신경을 써주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땅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다가간 것이다. 해마다 시기를 가늠해가며 씨를 뿌리고 모종을 하며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는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그저 철학을 곁들인 멋스러운 정원 이야기쯤으로나 읽고 지나갔을 것이다.  
 
저자에게도 그의 겨울 정원은 죽음과 부활을 위한 상징적인 장소인 동시에 시련을 넘어서는 초월성의 상징어로 존재한다.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에서 새로운 생명이 깨어나기도 하고 비루해 보이던 식물도 찬미 받아 마땅한 아름다움을 뽐낼 때 그는 난생처음 땅을 팠던 3년 전엔 몰랐던 경이로움을 땅에서 얻고 영감과 행복감까지 그 땅에서 맛보게 된 것이다.     
 
 
꽃을 가꾸고 채소를 기르는 작업은 생명을 가꾸는 일이다. 또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새로운 생명이 충분히 자라도록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비료를 주며 정성과 사랑을 쏟는 일은 오롯이 내 일과 내 관심이 되므로 그들과 진심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사실 그 작업은 인류의 생존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막론하고 종교적 승화 과정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따라서 수도원이나 사찰에서는 기도를 통한 구도적 정진 외에도 일정 시간 텃밭이나 농토에서의 땀 흘리는 노동을 통해 자연과의 교감과 신비를 체험함으로써 그 실체를 느낀다.  
 
감각의 회복은 시간과 존재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식물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시기는 저마다 다르다. 오래 관찰해야 작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지만, 기다림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기다림이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때문에 여유를 배우고 시간을 배운다. 따라서 저자는 <땅의 예찬>에서 땅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고귀함의 품격을 찾아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정원을 구원의 공간으로 규정한다. 정원사의 사랑하는 눈길, 사랑을 담은 인식이 잊힐 수 있는 식물을 구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상은 내가 아닌 다른 대상, 즉 '타자'에 대한 관심을 끌어낸다. 한병철의 전작인 <타자의 추방>에서 현대 인류는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타자'에 대한 두려움에 둔감해진 탓에 위기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던 저자는 <땅의 예찬>을 통해 사회 문제의 해결책으로 정원, 더 나아가 자연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는 땅에 대한 경외심을 모조리 잃어, 땅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고 지적한 뒤 땅을 보호하는 것은 인류의 절박한 과제이자 의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며 뛰어난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칸트나 하이데거, 니체 등 철학자들의 글귀가 더해져 그저 정원사로서의 기록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만의 색깔을 담은 정원 일기를 탄생시켰다.
 
베란다 정원에 보랏빛 서피니아 꽃들을 화분 한가득 피우고 햇빛에 반짝이는 사철 아이비를 늘어뜨린 집을 보면 그 주인의 마음이 읽힌다. 옥상 텃밭과 자투리땅에도 상추와 당근을 심는 사람들의 표정엔 건강한 햇살이 남기고 간 흔적이 보인다. 아침저녁으로 그들의 정원에 물을 뿌리는 그들의 사랑을 땅은 묵묵히 알아듣는다. 그래서 인간은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내년엔 땅을 조금 더 깊이 파야겠다. 그리고 땅이 좋아하는 비료도 듬뿍 주어야지. 내 가슴은 지금부터 설렌다. 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에서도 생각이 맞닿아 있는 모양이다. 저자가 땅에서 느낀 행복이 내 것이 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신비로운 충만함인가. 어쩌면 땅이란 오늘날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행복과 동의어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땅으로 돌아가기란 행복으로 돌아가기가 된다. 땅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행복의 원천이 아닐까.      
  

<시니어리포터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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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이영란 (레드)
작열하는 노란 태양이 오후 3시를 가리키는 시계바늘 위에 얹히는 이 계절,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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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조동성 9월15일 오전 7:14
단독에 살고 비질할 수 있는 좁은 마당과 꽃밭이 있어서인지 이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한병철 작가 쓴 글에 공감이 갔습니다. 먹을거리보다 주로 꽃을 심지만 화분에 심는 것과 땅에 심는 차이도 엄청 크지요. 사 먹으면 편하고 쌀 수도 있는데 왜 고생하면서 텃밭이나 주말농장 같은 걸 하겠어요. 이렇게 흙의 소중함을 경험한 사람만이 땅을 소유해야 하는데, 풀 한 포기 뽑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투기 목적으로 집이나 땅을 욕심내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시끄러운 일이 자주 생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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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5일 오후 11:34
네, 정말 그래요. 흙의 소중함을 경험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정성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 한다는 사실이죠. 쉽게쉽게 사먹고 남들 가꾸어놓은 모습만 보며 감탄할 수도 있지만 자기 손에서 흙냄새를 맡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동과 희열이겠죠. 근데 선생님은 굉장히 부지런하세요. 사실 저희는 세식구 다 그다지 부지런과는 아니거든요. 몸보다 머리를 쓰다보니 꾀부터 부리죠.ㅎㅎ 그래서 손바닥만한 텃밭 가꾸는 일이 어찌나 큰일인지요...ㅎㅎㅎ; 초고령화 가족만 아니어도 훨 쉬울텐데 지금부터 내년 농사를 걱정중이랍니다~ㅎㅎ.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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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남 9월14일 오후 4:49
인간은 땅에서 살다가 땅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젊어서는 땅이 주는 기쁨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나이 들면서 자연과 땅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거기에서 얻는 기쁨은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을 우리에게 선사하는것 같아요. 그래서 땅에서 나는 작물이 귀하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식량을 제공해 주는 귀한 존재입니다. 자연을 오염되지않게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후손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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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5일 오후 11:40
네, 그렇습니다. 저도 3년전 텃밭을 직접 하기 전까진 '정말 시간이 많은가 보다' 했답니다. 저희는 부모님이 꽃과 나무를 좋아하셔서 제가 태어나면서 자랄 때까지 주욱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랐는데도 나무에 물이나 영양제나 주었지 땅이 주는 기쁨까지는 생각도 못했죠. 정말 땅을 포함해 자연을 보호하고 보존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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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9월14일 오후 2:05
텃밭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격는 모습들을 보며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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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5일 오후 11:45
아, 정말 그래요. 인생농사도 농사니까요. 요즘 취업 일자리가 귀하다고 자꾸 농사를 권하는 추세인데 전 은근히 걱정이더군요. 농사가 하루아침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 실패까지 했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어쩔 건지... 분위기만 몰아간다고, 마음만 간절하다고 되는 게 아닌 게 인생이고 농사죠.^^ 고맙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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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9월14일 오후 1:17
<피로사회>를 쓴 한병철교수의 책이로군요. 텃밭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많은 시니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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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5일 오후 11:50
네, <피로사회>를 읽으셨군요? 이 책은 분위기가 제법 많이 다른데 역시 그의 철학이 들어있더군요. 3년동안 겨울에 피는 장미를 가꾸기 위해 꽤 연구를 많이 한 모양이예요. 꽃에 대해 박사가 돼있는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부담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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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덕 9월14일 오전 10:21
텃밭에서 꽃과 식물을 기르며 느끼는 기쁨이 글에도 충만합니다. 자연을 이렇게 사랑하니 글도 자연사랑이
넘치는 듯 합니다. 아마도 영란씨는 마음씨도 자연을 닮아서 순수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너무 순수하니
아마도 질투심에서 팔을 아프게 하진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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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9월16일 오전 12:01
순수...라는 말이 요즘은 칭찬이 아니라는데 제가 생각해도 너무 순수하죠. 그것도 이제는 제 개성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남들이 돈만 보고 달려가는데 혼자 보이지 않는 사랑만 하고 있으니 못지않게 갈등도 많고요. ㅎㅎ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생겼으니 할 수 없겠지요? 아마 이대로 늙지 않을까 싶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아, 손목은 지극정성으로 관리중이라 잘 버티긴 하는데 운동이 시급합니다. 어머니 체력보다도 약해지는 것 같아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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