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갠 날 아침, 이제하 詩人의 노래를 들으며
몇 날 흐린 끝에 모처럼 해가 갠 아침, 햇볕이 빤히 창문으로 들어오는데, 웬일인지 문득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오디오 시스템엔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다. 마란츠와 파이어니어, 그리고 월시의 옴(Ohm), 모두 예전에 아끼던 것인데 잊고 살았다. 마란츠와 파이어니어는 그래도 살아있는지 불은 들어온다. 
 
 
플레이어 안엔 CD가 들어있다.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563번. 기돈 크레머, 요요마, 킴 카시카시안의 협연 판이다. 이걸 언제 들었는지 먼지가 앉았다. 1년은 훨씬 넘었을 것이다. 먼지를 좀 닦아내고 다시 켜 본다. 옴 스피커는 잠시 큭큭 거리더니 제 방향을 잡아간다. 좋다. 역시 모차르트다.
 
생각난 김에 CD들을 살펴본다. 한장 한장 정성들여 사 모은 것이다. 나름 명반도 몇 장 있다. 1994년 프라하에 갔을 때 산 브람스. 스메타나. 야나체크의 CD가 있다. 체코 민주화의 상징인 바츨라프 하벨 당시 체코 대통령의 사인이 들어있는 음반이다. 운 좋게도 그걸 살 수 있었다. 그걸 산 그날 밤, 호텔 앞 '테레지아'라는 카페에서 집시들과 어울려 브람스의 '로맨틱 피스'를 들으며 와인을 마셨다. 
 
 
좀 길쭉한 케이스에 담긴 CD가 나온다. 낯익지 않은 CD다. 뭔가 봤더니, 이제하 선배의 노래가 담긴 음반이다. 이걸 여태까지 모르고 놔두었던 것인가.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마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선배로부터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2016년 5월경 선배의 개인전이 인사동에서 있었는데, 아마도 그 무렵 선배가 하시는 명륜동 '마리안느'에서 한잔하면서 받았던 것 같다. 그때 개인전 카렌다도 함께 받았는데, '물의 여인' 그림이 표지인 그 카렌다는 여태 내 책상 위에 놓여있다. 그런데, 그때 받은 CD는 까먹고 있었다는 얘기다. 
 
 
모두 10곡의 노래가 담겨있다. 모두 선배가 지은 노래다. 노래 글도 두 편, 서정주의 것을 제하고는 모두 선배 시들이다. 조영남이 불렀던 '모란동백'도 담겨있는데, 원제는 모란동백이 아니라 '모란, 동백, 김영랑, 조두남'이다. 노래는 쉽고 평이해 듣기에 좋다. 음유적인 게 레너드 코헨의 느낌이 묻어 나오는 노래다. 선배의 음색은 약간 허스키하다. 그게 거친 느낌을 주면서도 뭔가 마음을 당기게 하는 이끌림을 준다. 선배 그림에는 말이 잘 등장한다. 허스키한 목청의 말. 선배는 나에겐 그런 이미지다. 
 
오랜만에 대하는 반가운 선배의 글도 있다. '청솔 그늘에 앉아'라는 글이다. 선배는 마산고등학교에 다닐 때인 1950년대 초부터 시를 썼다. '청솔...'은 1, 2학년 때인가에 써 당시 '학원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편지로 알게 된 서울 친구를 생각하며 쓴 글인데, 그 친구분은 몇 해 전 별세한 유경환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다. 10곡 중 유일하게 이 시에 곡을 붙인 노래는 장순아라는 여자분이 부르고 있다. 청아한 목소리의 이 곡은 동요 같은 느낌을 준다. 
 
 
선배의 CD노래를 다 들었다. 갑자기 나도 옛날처럼 노래를 다시 불러볼까 하는 생각을 준다. 리듬은 단순하다. 그러나 노래 글은 심오하다. 이게 어우러져 뭔가 생각에 젖게 하는 노래들이다. 선배의 이 CD도 나의 명반에 포함시켜야겠다. 그나저나 선배의 근황이 궁금하다. SNS에서 그림과 글로 왕성한 활동을 하시다가 어느 날 문득 사라졌다.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지만, 얼마 후 어떤 후배로부터 인사동에서 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CD를 우연하게 만났고 노래도 들었으니, 명륜동 '마리안느'로 가 품평(?)이라도 한번 해 드려야겠다. 
 
다시 한번 말해야겠다. 오늘 모차르트를 듣고 이제하 선배의 CD도 보고 노래를 듣게 된 계기가 있다. 순전히 아침 햇살 때문이다. 몇 날 우중충한 잿빛 하늘이 오늘 아침 맑고 밝은 햇살을 내려 준 덕분이다.
 
 

<시니어리포터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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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김영철
반갑습니다. 많은 지도편달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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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유혜경 9월14일 오후 9:14
이제하 선생님 요즘 페이스북에 한번씩 글 올리시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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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9월14일 오후 9:21
이즈음 페이스 북 활동은 하질 않고 있습니다. 한 1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 근황과 관련해서도 여러 얘기가 있습니다. 제주도에 내려 가 계신다는 전언도 있습니다. 명륜동 마리안느엘 한번 가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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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9월14일 오후 6:48
좋은 취미를 가지셨습니다.
마란츠...
저도 취미로 가지고 있는데, 더 좋은 명기에 욕심이 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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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9월14일 오후 6:51
뭐 별로 좋은 거는 아닙니다. 한 30년 쯤 갖고 있는 건데, 성능에는 별 이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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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9월14일 오후 2:01
아~오랫만에보는 LP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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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9월14일 오후 6:53
LP 판이 예전에는 꽤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아는 분들께 나눠 드리다보니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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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9월14일 오전 10:08
가을 햇살 덕분에 추억여행을 하셨군요. 전에 카메라에 대한 글도 쓰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디오도 잘 아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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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9월14일 오전 10:39
그저 취미 수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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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9월14일 오전 8:47
멋진추억여해하셨네요, 지금은 볼 수 없는 장비도...저도 태풍이라는 소형TV와 라디오 카셑 등이 있는 다목적 장비를 얼마전에 치워버렸는데 아쉽더라구요. 옛것이 좋은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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