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도 빛나는 승리 ‘안시성’
 
 
친구들과 모임은 1시에 만나면 일어서는 시간이 적어도 5~6시다. 한 달 동안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보따리가 차고 넘치는 까닭이다. 거기다 약간의 정치 이야기나, 뒷말까지 넣으면 언제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른다. 하여 집으로 가는 길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일쑤다. 이래선 안 된다고 우리가 너무 펑퍼짐한 할머니가 되어간다고 누군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 이의를 받아들여 모임 시간을 좀 줄이고 모임 날엔 영화 한 편씩 보기로 했다.
 
영화 안시성을 보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론 전쟁 장면이 너무 많다는 평도 있어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대한 전쟁 장면을 담은 블록버스터 대작들이 대부분 흥행에 실패한 예도 많았으니 말이다. 기우(杞憂)였다. 웅장한 전투 장면과 고구려 군사 5천 명이 당나라 20만 대군을 물리친 민족사적 전쟁 스토리와 양만춘의 리더십에 매료되었다.
 
양만춘은 대장군이라는 고위 관료다. 하지만 자신이 보호해야 할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였다. 정적(政敵) 연개소문과의 정쟁(政爭)보다는 고구려를 지키고자 하는 대의를 중시하는 충실한 무장이었다. 정적인 연개소문은 양만춘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로 태학(소수림왕 2년에 설립한 국립 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사물을 보낸다. 사물은 안시성이 고향인 혈기왕성한 청년이다.
 
 
사물이 암살자임을 알면서도 양만춘은 그를 곁에 둔다. 그러면서 ‘지금은 죽일 기회가 아니다. 나를 죽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한다. 암살자임을 알고 있다면서도 지금은 나라를 구해야 하니 그건 나중에 하라는 소리다. 양만춘의 말에 사물은 그의 대범함에 놀라고 만다. 또 한 ‘너는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나?’ 라고 묻는다. 
 
지는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도 있다는 양만춘의 얘기를 사물은 이해하지 못한다. 지는 줄 알면 항복을 하지 왜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모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양만춘이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결국 사물은 연개소문이 지시한 '모반자 암살'이라는 임무를 포기하고 만다.
 
양만춘의 그 마음을 잘 아는 안시성 사람들은 그를 따르며 다짐한다.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군인들과 '고구려를 지키자’는 신념으로 똘똘 뭉쳤다. 양만춘의 여동생과 결혼이 예정된 기마부대장은 파소다. 파소와 군(軍)은 죽음의 길임을 알고도 당 태종의 목을 베기 위해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들어 산화했다. 여동생은 단신으로 당 태종이 있는 적진에 뛰어들었다 죽음으로 돌아온다. 그 광경을 목격한 백성들은 목숨까지 버리며 당 태종 이세민의 회심작인 안시성 높이의 토성을 무너트렸다. 토성을 무너트리고 그 밑에 깔려 죽은 사람들, 바꾸어 말하면 순수한 의병이다.
 
 
그들 덕에 당 태종 이세민의 20만 당나라 군대와 양만춘의 5천 명 군대와의 88일간의 치열한 전투는 끝이 났다. 비록 양만춘이 정적이지만 고구려 백성을 사랑하는 연개소문이 군대를 이끌고 달려온 덕이다. 연개소문이 군대를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사물의 힘이 컸다. 아무래도 지원군이 절실히 필요한 것을 안 사물이 당나라 군대의 눈을 피해 달려가 연개소문을 설득했다. 학생이라 싸울 줄은 모르지만 자기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던 사물의 용감한 행동 덕분이었다. 이 또한 의병이다. 
 
의병! 어쩌면 이 나라를 지킨 진정한 사람들은 이 의병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순신이나 연개소문이나 양만춘의 뛰어난 리더십이 빛났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이름 없이 쓰러져간 의병들이 없었다면 과연 이 나라가 지금까지 지켜져 왔겠는가! 어쩌면 이 영화를 보기 전날, 끝이 난 ‘미스터 션 싸인’이라는 드라마의 여운이 너무 길게 드리워져 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나라 주변 정세를 보면 심상치 않다. 국가 우선주의로 치닫는 미국, 점점 군비 확충에 열 올리는 일본, 중국의 점점 노골화되는 대국 굴기에 둘러 쌓여있다. 언제 어느 때, 비운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형국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 다시 이런 비운이 찾아온다 해도, 하루가 멀다고 상대를 헐뜯으며 싸우며 사는 우리지만 다시 똘똘 뭉쳐 일어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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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조규옥
바람 부는 대로 구름 가는 대로 흘러가야하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잘 흘러가려면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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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홍경석 10월11일 오후 2:22
참 후련한 영화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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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10월14일 오후 8:17
ㅎㅎ 감사합니다.
전쟁 씬은 정말 잘 만들었더라구요
초반의 좀 그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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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10월10일 오후 9:22
저도글을 썼는데 남한산성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 대작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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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10월14일 오후 8:18
ㅏ실 전 남한산성보다 짜증이 나서 혼났습니다.
어휴 속터져 그러다 끝났습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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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10월10일 오후 7:56
남한산성을 보면서 속이 터졌는데 안시성은 그래도 통쾌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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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10월14일 오후 8:19
감은 생각이었군요
정말 남한산성보다 심장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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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라 10월10일 오후 4:26
영화평과 나라를 걱정하시는 모습이 ..... 이름없는 의병들이 우리나라에 아직도 많이 곳곳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글에 공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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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10월14일 오후 8:20
그럼요
우리 국민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나라는 정치인들이 말아 먹고 나라는 우리가 구하고
그렇게 오천년을 이와 왔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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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10월10일 오전 9:47
필자의 생각에 큰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영화를 통해 국민통합 분위기가 조성되길 기원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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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10월14일 오후 8:20
이 나라는 아마 비상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는
헐뜯고 계속 싸울 겁니다. 울어야 하는지 웃어야 하는지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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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10월10일 오전 9:29
ㅇ나시성 영화를 통해 국민 통합에 자신하시는 필자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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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옥 10월14일 오후 8:21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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